사람 들이 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동네에 목소리도 짱짱하시고 기운도 넘치시고 매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그분을 우연히 처음 만난 건 언젠가 이케아에서 남편과 집에
필요한 이런저런 자질 구레 한 것 들을 사고 있을 때였다.
왠 낯선 할머니가 한 손에 그림을 들고 말을 걸어오셨다.
"저기 이 그림을 넣기에 요 하얀색 액자가 좋을까? 나무 액자가 좋을까?"
처음 보는 사이에 하기에는 좀 생뚱맞은 질문 이였지만
얼마나 갈등이 되면 그러시랴 싶어
그림을 자세히 보니 컬러풀 한 꽃이 잔뜩 그려져 있어서
"아 이 그림엔 하얀색이 깨끗하고 더 잘 어울리겠네요 "
하고 대답해 드렸다
그랬더니"아 이게 실은 내가 그린 그림인데..."로 시작해서
할머니는 밀고 다니 시던 커다란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본인이 그렸다는 그림을 주섬 주섬 죄다 꺼내고 계시는 거다.
시간 없어 더 이상 은 못 보겠다 할 수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붙들려 알듯 말듯한 수십 장의 그림 들을 보아 드리는 동안
남편은 같이 가다 사라진 마누라를 찾아 헤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했지만 저 할머니도 참 많이 외로운 분 인 가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또 그 할머니를 만났다.
우리는 동시에 " 아 이케아... 여기 살아?"
했다.
이케아가 동네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많은 데서
우연히 말 몇 마디 주고받은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살 경우가 그리 흔한 일도 아니고
우리는 이런 인연 도 다 있네... 하면서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언제 한번 커피 한잔 하기로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 할머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스쳐 지나가듯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인 할머니를
매번 기억하고 살기에 나는 애들도 많고 일도 많다.
그렇게 자연스레 잊혀졌던 할머니에게서 주말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그것도 평범한 전화 통화에서처럼
내가 누군데 누구와 통화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받자마자
"아유 이제야 연락이 되네 나야 나 이웃집 114번지 "
하는 거다
낯선 목소리의 황당한 전화 매너.. 잘못 온 전환가?
게다가
독일 집의 번지수는 길 양쪽으로 홀수 짝수로 나뉜다 우리 집 쪽은 홀수 다.
그 이야기는 우리 집 근처에는 모두 홀수 번지수라는 거다.
그리고 길 건너 짝수는 한참 낮은 숫자 들로 이어진다.
누굴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할머니가" 아 그때 이케아 "하신다.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아 기억나요 "했더니
"내가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는데 그 집에 놀러 갈려고... 내일 갈까?" 하시는 거다 내 대답은 들을 새도 없이 말이다.
그 할머니가 누군지 기억은 났지만 그렇다고
잘 모르는 사이에
언제쯤 그 집으로 놀러 가도 될까? 도 아니고
뭐 맡겨 놨던 거 찾으러 온다는 듯이 대번에
집으로 놀러 갈게 라고 이야기하시니 순간 당황했다.
그렇다고 딱 잘라 안돼요 절대 안돼요 할 수도 없고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나마 이번 주 오전 중에 시간이 되는 화요일을 골라냈다.
나는 "제가 이번 주 애들 학교 개학이라 내일은 힘들고요
화요일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라며 많이 바쁜데..라는 뉘앙스를 마구 풍기며 말했다.
바쁘면 다음에 갈까?라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를 전혀 괘념치 않으시던 할머니는
"화요일?.. 그럼 8시? 9시? 하시는 거다"
나는 뭔가 말려드는 기분 이였으나
"아니요 한 10시쯤 어떨까요?"
라고 순순히 답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
"그래 화요일 10시 그때 보자고 "
하시면서 전화를 뚝 하고 끊는다.
전화를 끊고 한참.. 나는 보통의 독일 할머니 들 같지 않게
일방통행으로 진격해 오시는 할머니에게
얼떨결에 당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왜 굳이 오시라 했을까?
내가 미쳤나 봐.. 왜 된다고 했지? 내가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라며 후회의 메들리를 불러 재꼈다.
약속은 덥석 잡아 놓고 아니 등 떠밀려해 놓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찜찜 함으로 한동안 끙끙 대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일 할 때 보면 아주 칼 같은 구석이 많은데 왜 할머니들한테는 그렇게 약해? 그냥 바쁘다. 다음에 보자 하고 끊었으면 될걸"
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나는 왜 할머니 들한테 이렇게 약할까?
독일에서 일하면서 시간 관리뿐만 아니라
자기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고
예스 또는 노우로 구분해 주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맺고 끊는 것이 꽤나 정확한 편이다.
그래서 원래 나는 내 상황이 안될 때 딱 잘라 "노우"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왠지 외로움이 가득 해 보이는 특히나 우리 친정 엄마 또래의
할머니들 한테는 마음이 많이 약 해 진다.
그래서 종종 일 벌여 놓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 내고는 한다.
화요일 아침 10시 약속 시간 10분 늦게 우리 집 문을 두드리신
할머니는 우리 집이 한 블록 위쪽인 줄 알았단다.
어쩐지 동떨어진 번지수에 이웃집 이라 칭하실때 부터 뭔가 좀 이상 하다 했다.
게다가 10분 일찍 오셨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던 할머니가
약속 시간 10분 이 넘어가는데 안 오시길래 혹시 잊어버리셨나? 흐흐흐
잘 됐다 하고 있던 참이였는데
오는 길에 우체부 아저씨와 주소 이야기를 하시느라 늦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정원 밖에서 쩌렁쩌렁 울려 대는 목소리에 누군가? 설마.. 했었는데...
76세의 이 할머니는 마이크 없어도 목소리가 저
골목 끝까지 들릴 만큼 쩌렁쩌렁하시다.
햇빛 좋은 날 정원에 마주 앉아 커피 한잔 나누며 조곤 조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성량 이요 여전히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와
그럼 에도 나는 시종일관 대화라는 것을 시도했다.
대화 란 무엇인가? 서로 같은 내용을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큰 목소리로 금방 병원 이야기했다가 장 보는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다음에 인터넷
그리고 휴가 떠난 친구 이야기와 주방 용품 이야기가 순서 없이 쏟아져 나오고
페이스북 그리고 이케아부터 카지노 이야기가 뒤섞여 나온다.
내 대답은 들을 새도 없고 답 나오기 기다릴 맘도
없어 보이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치 단체 카톡 방에서 한 자 한 자 눌러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카톡 이 정신없이 밀려들어오는 상황 같다 고나 할까?
어쨌거나 정신없었던 할머니와의 대화를 대략 종합해서 정리해 보자면
76세의 할머니는 이 동네 보눙 한국의 아파트 같은 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지 10년이 넘었고 취미는 매일 본인이 그린 그림과 사진을 페이스 북에 올리는 것이고 좀 더 원활한 인터넷 사용을 위해
시민센터에서 컴퓨터 무료 강습을 받고 계시며
일주일에 두 번은 이케아 또 두 번은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 신다는 거다.
그런데 76세의 할머니가 인터넷으로 페이스북을 하시고
이케아로 요일 정해 놓고 놀러 가신다는 것 까지야
그럴 수 있다 싶은데 커피 마시러 카지노 가신 다는 건 참 특이하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카지노에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요? 거기 커피가
특별히 맛있나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니 싸서 라테 마끼아또 한잔에 50 센트면 되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게임하는지 구경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는 큰 관심이 없으면서 남의 집에 놀러 오고 싶고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고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다른 사람들이 게임하는 것을 사람들 속에서 구경하고 보통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가는 이케아를 요일 정해 놓고 매주 간다.... 라.
문득 이 할머니는 그렇게 라도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오기 시작했다
그때 길 건너 쪽 에서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슈발름 씨 부부가 시장에 가시는지 장바구니 들고 우리 집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날씨가 화창 해요 손님이 오셨나 봐요" 라며
언제나처럼 내게 정다운 인사를 건네던 슈발름 씨 부부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어머나 안녕하세요?" 하자
"좋은 시간 되세요"라는 인사를 던지듯 전하며
가던 길을 부리나케 재촉했다 누가 붙잡을 새라 말이다.
어쩐지 뭔가 평소 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로 사라지시는 슈발름 씨 부부를 멍하니 쳐다보는 중에도
할머니는 오늘 저녁은 수프를 끓일 것이라는 것부터 식단이 건강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함께 보는 페이스북에 자기 사진 들로 도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과
본인의 집이 인형의 집 같이 아기자기 예쁜 다는 것
그리고 친구가 필리핀에 휴가를 가 있다는 것 까지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관성과 순서 상관없이 한꺼번에 풀어놓으시고는
버스 시간 다 되었다며 씩씩하게 일어나셨다.
나는 순간 정신 이 홀라당 나가게 생긴 티타임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게 된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그럼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전하는 내게 할머니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 나 또 놀러 올게"
왠지 슈발름 씨 부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신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