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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31. 2016

못말리는 일방통행 할매

사람 들이 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동네에 목소리도 짱짱하시고 기운도 넘치시고 매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그분을 우연히 처음 만난 건 언젠가 이케아에서 남편과 집에

필요한 이런저런 자질 구레 한 것 들을 사고 있을 때였다.

왠 낯선 할머니가 한 손에 그림을 들고 말을 걸어오셨다.

"저기 이 그림을 넣기에 요 하얀색 액자가 좋을까? 나무 액자가 좋을까?"

처음 보는 사이에 하기에는 좀 생뚱맞은 질문 이였지만

얼마나 갈등이 되면 그러시랴 싶어

그림을 자세히 보니 컬러풀 한 꽃이 잔뜩 그려져 있어서

"아 이 그림엔 하얀색이 깨끗하고 더 잘 어울리겠네요 "

하고 대답해 드렸다

그랬더니"아 이게 실은 내가 그린 그림인데..."로 시작해서

할머니는 밀고 다니 시던 커다란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본인이 그렸다는 그림을 주섬 주섬 죄다 꺼내고 계시는 거다.

시간 없어 더 이상 못 보겠다 할 수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붙들려 알듯 말듯한 수십 장의 그림 들을 보아 드리는 동안

남편은 같이 가다 사라진 마누라를 찾아 헤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했지만 저 할머니도 참 많이 외로운 분 인 가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또 그 할머니를  만났다.

우리는 동시에 " 아 이케아... 여기 살아?"

했다.

이케아가 동네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많은 데서  

우연히 말 몇 마디 주고받은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살 경우가 그리 흔한 일도 아니고

우리는 이런 인연  다  있네... 하면서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언제 한번 커피 한잔 하기로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 할머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스쳐 지나가듯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인 할머니를

매번 기억하고 살기에 나는 애들도 많고 일도 많다.

그렇게 자연스레 잊혀졌던 할머니에게서 주말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그것도 평범한 전화 통화에서처럼

내가 누군데 누구와 통화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받자마자

"아유 이제야 연락이 되네 나야 나 이웃집 114번지 "

하는 거다

낯선 목소리의 황당한 전화 매너.. 잘못 온 전환가?

게다가

독일 집의 번지수는 길 양쪽으로 홀수 짝수로 나뉜다 우리 집 쪽은 홀수 다.

그 이야기는 우리 집 근처에는 모두 홀수 번지수라는 거다.

그리고  길 건너 짝수는 한참 낮은 숫자 들로 이어진다.

누굴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할머니가" 아 그때 이케아 "하신다.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아 기억나요 "했더니

"내가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는데 그 집에 놀러 갈려고... 내일 갈까?" 하시는 거다 내 대답은 들을 새도 없이 말이다.

그 할머니가 누군지 기억은 났지만 그렇다고
잘 모르는 사이에

언제쯤 그  집으로 놀러 가도 될까? 도 아니고

뭐 맡겨 놨던 거 찾으러 온다는 듯이 대번에

집으로 놀러 갈게 라고 이야기하시니 순간 당황했다.

그렇다고 딱 잘라 안돼요 절대 안돼요 할 수도 없고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나마 이번 주 오전 중에 시간이 되는 화요일을 골라냈다.

나는 "제가 이번 주 애들 학교 개학이라 내일은 힘들고요

화요일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라며 많이 바쁜데..라는 뉘앙스를 마구 풍기며  말했다.

 바쁘면 다음에 갈까?라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를 전혀 괘념치 않으시던 할머니는

"화요일?.. 그럼 8시? 9시? 하시는 거다"

나는 뭔가 말려드는 기분 이였으나

"아니요 한 10시쯤 어떨까요?"

라고 순순히 답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

"그래 화요일 10시 그때 보자고 "

면서 전화를 뚝 하고 끊는다.

전화를 끊고 한참.. 나는 보통의 독일 할머니 들 같지 않게

일방통행으로 진격해 오는 할머니에게

얼떨결에  당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왜 굳이 오시라 했을까?

내가 미쳤나 봐..  왜 된다고 했지? 내가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라며 후회의 메들리를 불러 재꼈다.


약속은 덥석 잡아 놓고 아니  등 떠밀려해 놓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찜찜 함으로 한동안 끙끙 대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일 할 때 보면 아주 칼 같은 구석이 많은데 왜 할머니들한테는 그렇게 약해? 그냥 바쁘다. 다음에 보자 하고 끊었으면 될걸"

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나는 왜 할머니 들한테 이렇게 약할까?

독일에서 일하면서 시간 관리뿐만 아니라
자기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고

예스 또는 노우로 구분해 주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맺고 끊는 것이 꽤나 정확한 편이다.

그래서 원래 나는 내 상황이 안될 때 딱 잘라 "노우"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왠지 외로움이 가득 해 보이는 특히나 우리 친정 엄마 또래의

할머니들 한테는 마음이 많이 약 해 진다.

그래서 종종 일 벌여 놓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 내고는 한다.

화요일 아침 10시 약속 시간 10분 늦게 우리 집 문을 두드리신

할머니는 우리 집이 한 블록 위쪽인 줄 알았단다.

어쩐지 동떨어진 번지수에 이웃집 이라 칭하실때 부터 뭔가 좀 이상 하다 했다.

게다가 10분 일찍 오셨어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던 할머니가

약속 시간 10분 이 넘어가는데 안 오시길래 혹시 잊어버리셨나? 흐흐흐

잘 됐다 하고 있던 참이였는데

오는 길에 우체부 아저씨와 주소 이야기를 하시느라 늦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정원 밖에서 쩌렁쩌렁 울려 대는 목소리에 누군가? 설마.. 했었는데...

76세의 이 할머니는 마이크 없어도 목소리가  저
골목 끝까지 들릴 만큼 쩌렁쩌렁하시다.

햇빛 좋은 날 정원에 마주 앉아 커피 한잔 나누며 조곤 조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이요 여전히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와 

그럼 에도 나는 시종일관 대화라는 것을 시도했다.

대화 란 무엇인가? 서로 같은 내용을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큰 목소리로 금방 병원 이야기했다가 장 보는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다음에 인터넷

그리고 휴가 떠난 친구 이야기와 주방 용품 이야기가 순서 없이 쏟아져 나오고

페이스북 그리고 이케아부터 카지노 이야기가 뒤섞여 나온다.

내 대답은 들을 새도 없고 답 나오기 기다릴 맘도

없어 보이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치 단체 카톡 방에서 한 자 한 자 눌러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카톡 이 정신없이 밀려들어오는 상황 같다 고나 할까?

어쨌거나 정신없었던 할머니와의 대화를 대략 종합해서 정리해 보자면

76세의 할머니는 이 동네 보눙 한국의 아파트 같은 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지 10년이 넘었고 취미는 매일 본인이 그린 그림과  사진을 페이스 북에 올리는 것이고 좀 더 원활한 인터넷 사용을 위해

시민센터에서 컴퓨터 무료 강습을 받고 계시며

일주일에 두 번은 이케아 또 두 번은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 신다는 거다.
그런데 76세의 할머니가 인터넷으로  페이스북을 하시고

이케아로 요일 정해 놓고 놀러 가신다는 것 까지야

그럴 수 있다 싶은데 커피 마시러 카지노 가신 다는 건 참 특이하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카지노에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요? 거기 커피가

특별히 맛있나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니 싸서 라테 마끼아또 한잔에 50 센트면 되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게임하는지 구경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남의 집에 놀러 오고 싶고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고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다른 사람들이 게임하는 것을 사람들 속에서 구경하고 보통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가는 이케아를 요일 정해 놓고 매주 간다.... 라.

문득  이 할머니는 그렇게 라도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오기 시작했다

그때  길 건너 쪽 에서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슈발름 씨 부부가 시장에 가시는지 장바구니 들고 우리 집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날씨가 화창 해요 손님이 오셨나 봐요" 라며

언제나처럼 내게 정다운 인사를 건네던 슈발름 씨 부부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어머나 안녕하세요?" 하자

"좋은 시간 되세요"라는  인사를 던지듯 전하며

가던 길을 부리나케 재촉했다 누가 붙잡을 새라 말이다.
어쩐지 뭔가 평소 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로 사라지시는 슈발름 씨  부부를 멍하니 쳐다보는 중에도

할머니는 오늘 저녁은 수프를 끓일 것이라는 것부터 식단이 건강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함께 보는 페이스북에 자기 사진 들로 도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과   
본인의 집이 인형의 집 같이 아기자기 예쁜 다는 것
그리고 친구가 필리핀에 휴가를 가 있다는 것 까지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연관성과 순서 상관없이 한꺼번에 풀어놓으시고는

버스 시간 다 되었다며 씩씩하게 일어나셨다.

나는 순간 정신 이 홀라당 나가게 생긴 티타임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게 된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그럼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전하는 내게 할머니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 나 또 놀러 올게"

왠지 슈발름 씨 부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신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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