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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1. 2016

  독일의 고등학교 졸업식 스케치

특별했던 아들의 졸업식

지난 6월 24일은 독일도 무더위 속이던 때였다.

나는 아침부터

아들의 양복에 색을 맞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입고 나갈 남편과 나의 옷을 손질하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머리도 정성껏 만지며

오늘이 뭔 날은 날인가 보네 라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바쁜 걸음으로

이제 막 2교시가 끝난 막내를 학교에서 조퇴시키고

동네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사 들고 

그동안 꽃단장을 끝내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향했다.

그날은
우리 집 큰 아들이 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 인 김나지움을 졸업하는 날이었다.

졸업식은 우리 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 미리 준비를 한다고 했음에도

막상 당일 이 되고 보니 몸도 마음도 몹시 분주했다.


그렇게 서둘러 졸업식 장에 도착하니

식이 시작되는 시간보다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식장 안은 앉을자리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남아 있는 뒤쪽 자리에 식구대로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아 손에 들려 있는

왠지 꽃 한 송이는 사야 할 것 같아 동네 꽃집에서

급하게 들고 온 빨간 장미를 쳐다보며

손이 시리게 춥던 2월 어느 날의 오래된 기억이

그날 흩뿌리던 입김처럼 뿌옇게 떠오른다.  


학교 정문 앞에서 이름 모를 꽃들로 만들어진

비싼 꽃다발을 양손 가득 들고 팔고 계시던 아주머니 들과

그 앞을 재잘거리며 등교하던 학생들....

오늘도 지각 이라며 뛰어들어가던 졸업생들..

삼삼 오오 꽃다발을 손에 든 학부모 들과 가족들

우리네 졸업식, 입학식 이면 늘 보던 그 익숙한 풍경 말이다.


그런데 이곳 독일의 졸업식에서는

학교 정문 이랄 것 없는 곳에 꽃을 파는 사람들도 없을뿐더러

졸업식 시작도 한참 전에 미리 식장에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들로

학교 앞은 한산했으며

졸업식에 온 사람들 손에 꽃다발도 보이지 않는다.

추운 2월  있던 우리의 졸업식과

더운 6월에 하고 있는 독일의 졸업식은  

계절 이 다른 만큼이나 분위기 또한 달랐다.


문이 활짝 열려 있던 졸업식장  
멋진 조명 아래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숫자의 의자들이 정렬되어 있으며

무대 중앙에 오케스트라 자리까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평소 아이들이 배구, 농구 등의

체육 수업을 받는 체육관의 멋진 

변신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덥디 더운 여름 날씨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조차 없는

실내 체육관 안은 가득 메운 사람들의 체온과 호흡까지 보태어져

찜통이 따로 없었다.

졸업식 프로그램이 적혀 있는 종이는 이미 부채가 된 지 오래 요.

여기저기서 자기도 모르게 푸후 푸후 불어 대는 입바람으로

공기는 점점 탁하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막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시작도 하지 않은 졸업식이 얼마나 기다리면 끝이 나느냐고

계속해서 묻고

대답해 줄 기운도 없어지고 있던 나는

아직도 멀었어하는 의미로 열 손가락을 펴 보였다.


막내의 한숨 소리를 뒤로 하고

어느새 실내 안은

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잔잔히 음악이 울려 퍼지며

졸업식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한곡의 연주가 끝나고

이어지던

첫 순서는 교장 선생님의 축사..


프로그램 이 찍힌 종이 첫 장 에도 나와 있던 현대 화가의

그림이 무대 중앙의 화면을 가득 메우며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시고는

이 그림을 보며 졸업이라는

또 다른 시작의 첫발을 내딛을 아이들을 생각했노라

이야기하시더니

졸업생 들은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마치 지도 없이 정글을 탐험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일 테지만

인생은 누구나 그렇게 확실한 무언가를 손에 쥐지 않은

체로 어디론 가로 향하고 있는 순간의 연속인 것이다.

라는 다소 철학적인 말씀을 남기셨다.

끝으로

오늘 사실 굉장히 짧게 축사를 마칠 예정 이였다는

말씀으로 좌중에게 웃음을 선사하셨다.



그리고 또 한곡의 음악이 흐른 후에

교장 선생님 은 마치 열린 음악회 같은 콘서트의

사회를 보시듯이 음악과 음악 사이에

순서 들을 진행 하셨고

그다음 순서로는 졸업생 대표의 답사로 이어졌다.

졸업생 중에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얼떨결에 맡게 되었다는 남학생의 너스레로

한번 더 큰 웃음이 터지고

떠오르는 여러 가지 추억 들과 긴장되는 지금의 순간을 잘 표현 한

졸업생의 답사를 뒤로

학부모 대표로 나온 어느 어머니의 축사가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아들이 처음 입학식을 했을 때

바로 위에 학년 이라며 무대에서 합창을 하던 아이들도

아직 한참 어려 보이던 아들에 비해 커 보였고

학부모 들 에게 케이크와 커피를 대접하며

졸업반 이라던 아이들은 어른 같아서

우리 애가

저렇게 클 날도 오겠지 했었는데...

어느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되었노라 담담히 전하며

살짝 떨려 오던 그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 한 자락이 살며시 들리며

울컥해 왔다.

그러게... 그 작던 아이가 자라 벌써 이렇게 졸업을 하네..

아마도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엄마의 마음이

같지 않았을까?



누군가 졸업식장의 중간 문을 열어 놓는 덕분에

바람이 통하는 졸업식 장은 한결 시원해지고

있었고

길고 길어 보이던 졸업식 순서는 하나하나

끝이 나 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졸업장 증정 시간이 왔다.

선택 과목별로 나누어진 그룹 별로 담당 선생님들을

선두로 졸업생들이 한 명 한 명 단상으로 올라가

졸업장을 손에 받고 학교에서 준비한 꽃 한 송이 씩을

들고 서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내려갔다.

졸업식 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 들은 사실상

각자의 아이들이 단상에 올라가는 단 몇 분의 시간을

위해 이 더운 날 긴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독일 말로 진행되는 졸업식

내내 힘들고 지루 하셨을 두 할머니들은

"아이고 저기 우리 큰애 올라간다."

"양복 입혀 놓으니 인물이 훤하네 "라시며

기뻐하셨다.

 마치 손주가 졸업장이 아닌 국민훈장이나 노벨상

이라도 받는 것처럼 뿌듯해하시던 두 할머니 덕분에

우리 아들 에게는 처음으로 이곳의 아이들처럼

부모 외에 할머니들이 함께 해 주신 특별한 졸업식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이 입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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