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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22. 2018

시험보다 썰매 타는 게  먼저인 독일 아이들


눈.. 네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 겨울에 독일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있다.

특히나 중부 지방인 우리 동네는 간밤에 눈이 찔끔  왔다가도 아침 이면 흔적도 없어지거나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다 땅에 닿기 무섭게 질척 질척 흘러 녹아내리기를 몇 번....

추운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러 가야지 하고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엔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오늘 아침 밤새 제법 눈이 쌓였다.

지붕 위에도 나무에도 길 위에도 하얀 눈송이 들은 이제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을 알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부터 들뜬 막내는 빨리 썰매를 타러 가고 싶어 엉덩이들썩였다.


그러데 얄궂게도 내일이 수학 시험이다. 4학년이 졸업반인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이번 시험을 포함해 매겨지는 중간 성적표의 점수가 다음 학교 추천서를 받는데 주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정리하자면 4학년 1학기 성적표로 그 아이가 대학을 목표로 하는 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을 갈 것인지 직업을 목표로 하는 상업계 학교인 레알슐레로 갈 것 인지 가 결정된다 하겠다.

그러니 지금 보는 시험들은 여로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도 썰매 타러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막내가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내일이 시험이라 당연히 다른 친구들도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겠지.. 는 어디까지나 한국 엄마인 내 생각이었고 다른 엄마 아빠 들은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러 가겠노라 나서는 것이 아닌가?



내일이 시험인데 썰매 타러 간다.

이 집 저 집 서로 전화를 주거니 받거니 해가며 결국 당첨? 된 시몬네 엄마 아빠가 호엔 그라스라는 산 동네 눈썰매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타러 가기로 했다.

우리야 추운 날 썰매 탈것도 아닌 데 따라가서 덜덜 떨며 기다리느니 다른 엄마 아빠가 참새떼처럼 조롱조롱한 아이들 몰아서 데리고 다녀와 준다니 감사할 따름이었지만 내심 내일이 시험인데..라는 것이 걸렸다.


그래서 눈길 끈 감고 막내를 스키 탈 때 입는 바지 입히고 모자에 장갑 씌우고 완전무장? 해서는 썰매까지 들려 데리러 온 시몬네 차에 태운 후 손을 흔들어 보내 면서도 그래도 내일이 시험인데.. 하는 마음 한구석 찜찜함은 계속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나는 따뜻한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했다.

"독일 엄마 아빠들 참 대단하다 내일이 시험인데도 아이들 놀리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

그러다 문득 떠오른 우리의 어린 시절... 쌍코피가 터지게 공부를 한 것도 아니건만 우리는 시험 전날이면 의례 책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비록 머릿속에는 딴생각으로 가득하고 몽롱한 눈으로 졸며 앉아있던 시간이 더 길었지만 서도 말이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 그시간 동안 우리는 마음 놓고 놀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힘들게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어쨌거나 시험 전날은 비몽사몽 간에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부모가 되고 독일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도 다른 독일 부모들처럼 망설임 없이 시험 전날 놀아라 가 잘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맥락 인지도 모르겠다.



잘 놀아 본 부모가 아이도
잘 놀게 할 줄 안다.


지금 아이들과 신바람 나게 눈 위에서 썰매를 타고 놀고 있을 안네테와 안드레아스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과 함께 눈이 쌓인 겨울 주말 에는 그 다음날 시험이던 말던 썰매를 챙겨 들고 눈밭으로 갔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놀 수 있는 지를 궁리 해 내는 것이 연구의 시작이며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잘 놀 수 있는 아이들이 커서 사회성 있는 아이들로 자라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라는 교육철학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전반의 교육지침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는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간접적으로 접한 교육철학과 방법 만으로는 자유로이 내 아이들 에게 그것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시험 전날까지 맘 편히 자유로이 놀아 본 적이 없으니 내 아이 들을 시험 전날 놀게 하는 것 또한 자연스레 되지 않는다.


우리도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가? 놀아본 놈이 놀 줄 안다고 나는 독일 엄마 아빠들을 보며 잘 놀아 본 부모 들이니 아이들도 잘 놀게 해 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 그래도 될까? 하는 물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막내를 썰매 타러 보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되 눈 오는 날 망설임 없이 신나게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러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다음 날에 수학 시험을 본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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