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벼룩시장
몇 주 전 주말의 일이다. 토요일 이면 언제나 늦잠을 즐기는 딸내미가 웬일 인지 아침 일찍부터 이방 저 방을 오가며 분주 해 했다.
뭔 일 인가? 했더니 딸내미가 지난번에 착한 가격의 만족스러운 옷들을 잔뜩 사 들고 오던 "소녀들의 벼룩시장"이 오늘도 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쇼핑을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소녀들의 벼룩시장에서 판매를 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집에 더 이상 입지 않는 그러나 그 또래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옷,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을 골라내어 팔 것 들을 챙겨 짐을 싸느라 일찌감치 바쁘신 중이다.
독일에서는 가구, 그릇, 악기에서부터 보석, 그림, 카메라, 옷, 신발 등등 만물상이라 할 만큼 온갖 종류들이 나와있는 보통의 벼룩시장, 전문서적부터 잡지, 동화책 등등 여러 종류의 책 들이 주로 나오는 책 벼룩시장, 옛날 흑백영화 에서나 봤음직한 조명,테이블,소파,그릋 등등 앤티크 용품 이 주로 인 앤티크 벼룩시장 아기자기하고 예쁜 또는 개성 넘치는 패셔니스타 스런 십 대들의 옷과 액세서리 등이 위주인 소녀들의 벼룩시장, 그리고 유모차부터 옷, 장난감 책 레고 등등 어린이 용품이 가득한 어린이 벼룩시장 등등 종류도 다양한 벼룩시장이 동네마다 시기별로 선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벼룩시장에서 무언가를 사고파는 것에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아이들 작아진 옷, 가지고 놀던 장난감, 읽던 책, 신던 신발 등을 깨끗하게 잘 정리해서 챙겨 두었다가 어린이 벼룩시장에 가져다 아이와 함께 판매하는 경험 또한 자주 있는 일이다.
벼룩시장의 장소로는 학교인 경우도 많고, 교회 또는 시민 회관, 마트의 야외 주차장, 공원 등에서 하기도 하는데 보통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그위에 상품들을 진열해서 판매하도록 하고 어디서 벼룩시장을 주관하는지에 따라 일명 자릿세?를 내지 않는 곳도 많고 10유로 정도의 이용료를 내는 곳도 있다.
독일 사람들은 어린이 벼룩시장에서 아이들 것을 판매 해 생긴 수익금은 아이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수익금을 용돈 통장에 저금하기도 하고 필요했던 새로운 장난감을 사기도 한다.
그렇게 어린이 벼룩시장에서의 경험들은 독일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기 것을 소중히 하고 경제감을 키우는 실생활 교육 중에 하나 인 셈이다.
독일에서 클럽 이란...
요것조것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을 챙겨서 통에 차곡차곡 담아 넣고 옷들 구겨지지 않게 촥촥 펴서 옷걸이에 걸어 커리어에 넣고 벼룩시장에 세워둘 조립형 헹거 도 챙겨 들고... 이삿짐을 방불케 챙겨 대던 딸내미가 혼자 서는 갈 수가 없을 것 같다며 벼룩시장이 서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보통 벼룩시장이 자주 진행되는 학교 , 교회, 마트의 야외 주차장 등을 생각하던 우리는 딸내미가 어느 클럽이라고 주소를 이야기하는 바람에 다시 물었다 클럽? 춤추고 노는데?
딸내미는 바쁜데 뭘 그런 걸 다시 묻나 싶은 표정으로 시크하게 "응, 클럽"하는 거다.
나는 이김에 십 대들의 클럽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싶어 두 눈을 반짝이며 딸내미에게 다시 물었다.
"너네 또래들 놀러 오는 클럽?" 딸내미는 짐만 적었으면 혼자 가고 말겠는데 하는 귀찮음이 잔뜩 얹어진 표정으로 " 응" 한다.
독일의 클럽 들은 나이 제한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알코올을 마실수 있는 법적 나이만 16세부터 출입할 수 있는 클럽과 독일에서 법적으로 성인 이 되는 나이 만 18세부터 출입이 가능한 클럽 등으로 나뉜다.
벼룩시장이 선다는 클럽도 만 16세부터 출입이 가능한 틴에이저들이 많이 온다는 클럽이다.
독일도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자주 모이는 거리, 지역 등이 따로 있지만 한국처럼 홍대 앞 이대 앞 이렇게 대학가만 찾아 가면 옷가게부터 식당, 클럽, 디스코 노래방 등의 유흥 업소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 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대학도 캠퍼스로 모여 있지 않고 분과대 별로 도시 전체에 거쳐 퍼져 있고 클럽, 디스코, 카페 등도 여기 하나 저기 하나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번 기회에 어디에 붙어 있나 모르던 클럽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짐을 날라 주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간 우리 딸내미는 친구들이 모두 만 18세 여서 클럽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한 번은 우리 동네에서 꽤 유명하고 큰 클럽에 친구들이 가는 데 너무 따라가고 싶어서 지딴아는 어른스럽게 옷을 입고 갔는데 입구에서 일일이 나이를 확인하는 직원에게 딱 걸려서 "너는 안돼 부모 동의서 받아 와" 하는 바람에 내게 급히 SoS를 날린 적이 있었다 부모 동의서에 사인해서 신분증 복사본과 함께 보내 달라고 말이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면 문자도 잘 보내지 않던 딸내미가 어떻게든 클럽에 한번 들어가 보겠다고 장문의 문자와 자초지종을 써서 보냈지만 당연히 쌩까 주셨다.
그날 결국 아직 나이가 안돼서 그 클럽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 집 딸내미 덕분에? 모두 야시시 예쁘게 차려 입고 클럽 대신 맥도널드 갔다 집에 와야 했다.
벼룩시장으로 변신 한 클럽
클럽은 예상외로 자주 스쳐 지나가던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늘 지나다니면서도 네온사인도 간판도 화려 하지 않고 클럽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 특이한 벽화 덕에 멕시코 식당인가? 했던 것 같다.
종이로 만든 소녀들의 벼룩시장이라 적혀있는 작은 푯말을 따라 클럽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온
우리 딸내미 또래의 소녀들이 책상 위에 요렇게 조렇게 물건을 진열하느라 바빴다.
조금 어두운 것을 빼고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공간 이였지만 클럽이라 해서 현대 적인 분위기를 상상하고 갔었는데 돌 고된 천장과 벽 들 그리고 사이사이 기둥들이 마치 동굴 같기도 하고 어느 와이너리 같기도 해 뭔가 클래식 한 분위기였다. 지금은 머리 위에서 쉬고 있는 반짝이 조명들 만이 여기가 어디인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평상시 주말 이면 젊은 청춘들이 모여 맥주도 한잔씩 하고 춤도 추고 라이브 음악도 즐기는 클럽이 오늘은 벼룩시장으로 변신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공간을 여러 방면으로 다양하게 이용한 다는 것은 참 기발한 아이디어 구나 싶었다.
그 덕분에 중년부부인 우리도 마음 놓고? 젊은이 들의 클럽 안을 누벼 댈 수도 있었고 말이다.
커다란 책상과 헹거 등에 진열이 끝난 우리 딸내미를 비롯한 소녀들이 손님? 오기 전에 서로의 판매대에서 필요한 것들을 득템 하기도 하고 클럽이라 안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했지만 파는 사람들도 사러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나이만 으로도 풋풋 한 소녀들이다 보니 분위기는 상큼 발랄했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는데... 싶기도 하고 집에서는 아직 어리기만 한 우리 딸내미가 밖에서 보니 제법 의젓해 보여 많이 키웠구나 싶어 입가에 아련한 엄마 미소가 걸렸다
그시간 남편은 커피가 고픈 마눌과 간식이 필요한 딸내미를 위해 미니 매점 앞에 줄을 섰다.
벼룩시장 안에는 몇 가지의 머핀과 팬케이크 등의 간식거리 들과 커피, 음료수 등을 판매했는데.. 아직은 반죽을 퍼담는 손길이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소녀들이 바쁘게 영업? 중이셨다. 처음엔 2유로에 팔던 커피와 1유로 50에 팔던 팬케이크가 생각처럼 불티 나게 팔리지 않자 커피도 팬케이크도 모두 1유로에 반짝 세일에 들어갔고 세일을 애정 하시는 남편은 기쁜 남으로 그들의 고객이 되어 주셨다.
딸내미는 그날... 새것이라면 20유로 에서 30유로 사이를 웃도는 청바지도 4유로에 30유로가 넘는 니트 카디건도 3유로에 아기 자기한 액세서리 들도 1유로 2유로에.... 잘 고르면 충분히 득템인 벼룩시장에서 60유로 판매 수익을 올렸다. 한화로 약 7만 2천 원가량을 벌었으니 한나절 수입이 꽤 짭짤한 편이지 않은가?
차곡차곡 챙겨 담아 갔던 가방도 쑥 하고 줄었고 언제 한번 또 해 보아야겠다며 친구와 배시시 웃고 있는 딸내미의 얼굴 에는 만족스러움이 어렸다.
옆에 나란히 서서 언제 한번 클럽 하는 날 완전 젊게 입고 춤추러 와 봐야겠다며 음흉하게 웃고 있는 군데군데 흰머리가 눈에 띄는 나이를 잊고 싶은 엄마 아빠의 주책 맞은 속마음은 상상도 못 한 체 말이다.
온 가족이 보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