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같은 취미생활
주택가 안 광란의 축제
지난주 벨하이데 키어메스가 끝나고 모든 무대의 설치물 들과 이동용 상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자
원래 대로 집 들만이 고스란히 남았다. 마치 언제 그런 축제가 있었나? 싶게....
그러나 아직 여기저기 흘러 있던 흔적들을 치워 주시던 환경 미화원 아저씨 들도...슈발름씨 네를 비롯한 우리의 친절한 이웃들도... 친구 크리스텔을 비롯해 만나는 친구들 마다 내게 이렇게 묻고는 했다.
"이번에도 (커다란 무대 사이에 끼여 굉장 치도 않은 소음 속에서) 잘 살아남았느냐?" 고 말이다.
그렇다 바로 우리 집 거실, 침실과 나란히 선 무대에서 시도 때도 울려 대던 라이브 뮤직으로 인해 우리는 식사 시간에도 드르륵 드럭 드럭 흔들리는 창문과 문짝들의 콜라보 굉음을 친구 삼아 밥을 먹어야 했고..
자려고 누워도 잠들 수 없는 침실에 누워 별 헤는 마음으로 다가 전주가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앗싸... 이거 우리 아는 건데.. 라며 선곡에 대한 탁월함에 박수를 보냈고..
졸다 깨다 하면서도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오호 노래 좀 하는데..라고 잠꼬대인지 감상평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빨래를 털어 널면 서도 전국 노래자랑에 나와 자기 노래에 혼자 삘 받으신 아주머니처럼 온몸으로
박자를 타는 경지에 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이사 3년 만에 우리는 바로 옆에서 쿵쾅 거리는 축제 라이브 무대의 무지막지한 소음? 속에서도 기함하지 않고 유유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내공 이 쌓였다.
더군다나 이번 축제 저녁 라이브 무대를 주름잡았던 이 밴드의 실력은 현란한 기타 소리나 시원스레 뻥뻥 뚫어 주던 드럼 연주 나 막힘 없이 쭉쭉 올라 가던 보컬의 노랫 소리나 ... 음악에 대해 일자무식인 내가 들어도 훌륭했다.
그래서 급기야 우리 부부는 집에서 듣는 것으로도 모자라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독일식 축제용 이동 포장마차에서 맥주까지 한잔씩 마셔 가며 본격 적으로 라이브 콘서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초저녁에는 몇 명 되지 않던 곳에 시간이 지나면서 멋진 라이브에 매료되어 점점 더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고 밴드의 신명 나는 연주와 노랫소리에 춤을 추고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 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이 우리 집 앞이라는 것도 잊고 어디 휴가 라도 온 듯 맥주잔을 들고 함께 흔들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우리와 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던 라이브 실력 출중했던 밴드의 보컬은 원래 직업이 가수가 아니었다는 거다.
한참 신나는 노래 끝에 보컬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느 고등학교의 인기 만빵인 화학 교사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그 보컬은 자기네 학생 들 에게도
좋은 음악이라고 소개한다는 우리는 잘 모르는 독일 사람들 에게는 우리의 "쨍하고 해 뜰 날" 같은
고전 국민가요 중의 한곡을 6주 동안 여름 방학 이여서 연습도 많이 못했다면서 멋드러지게 부르고 있었다.
화학 교사의 취미생활이 축제 때 라이브 무대에 서는 밴드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무대 에서의 자연스러운 동작과 관중들을 쥐락펴락하는 세련되고 프로패셔널 한 라이브 공연의 내용..직접 연주 했던 손이 보이지 않던 기타 연주에 짱짱한 노래 실력까지 본업이 뭔지를 헷갈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 남자의 완벽한 이중생활 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독일 사람들 중에는 취미생활을 직업 처럼 열정적으로하는 사람 들이 많다.
하여간에 멋진 라이브 콘서트 덕분에 내년 축제 기간이 돌아오는 것이 그리 무서버 지지 않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