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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7. 2017

독일 주유소에서 생긴 황당한 사건

살다 보면 어제 와 다름없는 평범한
오늘이 가장 특별한 날이 되어 줄 때가 있다.


별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금요일 아침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은 연수 차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다.

평소 습관처럼 남편은 현관 앞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확인하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은 미리

챙기고 은행 광고 같은 우편물은 따로 분리해 놓고 한 장의 편지를 들고 서서 고개를 갸우뚱 대며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궁금해진 나는 "그게 뭔데? 어디서 온 건데?"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덤덤하게 동네 친구 이름 부르듯 "어 경찰서" 한다.


요즘 우리 동네 거리마다 잘 숨겨져 있는 카메라가 늘어나 종종 카메라 위치가 파악이 안 된 길에서( 60으로 가야 할 길에서 70으로 가다) 곱게? 사진이 찍혀 속도위반 벌금을 적금 붓듯 하는 남편 이기에 나는 "또 벌금 이야?  "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런 이야기 없이 편지를 뚫어져라 보고 서 있었다.

 


독일 경찰서에서 날아온 출석요구서

남편은 침묵을 깬 차분한 목소리로 일단 연수 다녀와서 해결하겠다는 말을 남긴 체 집을 나섰고 

두고 간 편지 안에는 누구누구 씨는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000 주유소에서 주유 사기 가 의심되어

몇 월 며칠 몇 시 000 경찰서로 출두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경찰서에서 날아온 출석요구서였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그 순간 내 눈에는

독일 형법 263조 에 의거해 주유 사기 가 의심되어 라는 문구 만이 클로즈업되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말인가?

주유 사기 라니? 간혹 속도위반으로 또는 주차 위반으로 벌금 용지를 받았던 적은 있으나 자기 것이 아닌 것은 길 지나가다 떨어진 동전 하나 주운적 없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고자 앞장선 적은 없어도 남에게 피해 준 적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주유 사기를 당했을지 모른다 가 아니고 주유 사기를 쳤을지 모른다고?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 아니던가?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검색으로 독일 형법 263조라는 법 조항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 형법 263조 에 의거 주유 사기는 기름 절도에 해당되며 3년 이상 징역 최고 5년 징역 또는 벌금 형에 처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나는 써져 있는 죄목과 처벌 내용만 읽어도 죄진것 없이 가슴이 갑갑 해 오기 시작했다.

대체 남편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본 그날의 주유소


나는 출석요구서에 적혀 있던 날짜와 시간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독일의 주유소는 모두 샐프로 주유를 하는 샐프 주유소 다.

주유소 안마당 에는 종류별 모아 놓은 주유 코너들이 번호로 나뉘어 세워져 있고 각자 차를 세워 놓고 알아서 주유를  한다.


그러니 앞에서 "손님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라고 묻는 주유소 직원도 볼 수 없고 각자 알아서

번호가 붙어 있는 코너에서 자기 차에 맞는 기름을 찾아 주유구 에 맞추어 주유를 한다.


그 후에는  커피부터 필요한 일상용품까지 갖추어져 있어 얼핏 보면 작은 슈퍼 같이 생긴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예를 들어) 2번 주유 코너에서 디젤을 주유했노라 이야기하고

컴퓨터로 주유 액수를 확인한 직원에게 주유비용을 내고 나오면 된다.


그날은....... 가만있어 보자 분명 그날 그 시간에 우리 부부는 막내를 데리고 다른 도시를 가야 할 일이 있어 아우토반으로 나가기 바로 전에 그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었다.

그때 처 주유 코너에서 기름이 나오지 않아 남편은 한 바퀴 돌아 다른 코너로 가서 주유를 하고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주유비를 내고 바로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아우토반을 달리다 중간에 들린 주유소에서는 화장실을 가기도 하고 막내가 아이스크림이나 간식거리를 사달라고 하기도 해서 셋이 함께 작은 슈퍼처럼 생긴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문제의 그시간 그곳에서는 얼른 다른 도시로 출발해야 해서 남편 혼자만 주유소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계산만 하고 나왔었다.


독일 전역에서 한해 신고 접수되는
주유 사기가
8000 건이 넘는다 고 한다
그러나 그중.....


뭐지? 뭘까? 처음에 주유가 되지 않았던 코너에서 다른 코너로 가기 위해 주유소 안마당을 벗어나 한 바퀴 돌고 들어간 것이 의심을 산 걸까? 아니 다음에 바로 다른 코너에서 주유를 한 것을 직원도 알고 CCTV에도 기록이 남았을 텐데...

그날 다른 코너의 주유가 되지 않는다고 남편이 이야기도 했다는데 의심받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그날의 그 주유소에서 주유 사기라는 죄목으로 의심을 살 만한 어떤 일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탐정처럼 그날의 일을 추리해 보아도 뭔가를 찾을 수 없던 나는 남편이 연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주유 사기에 대한 관련 사건 내용들을 인터넷을 통해 줄줄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독일의 시사 매거진 슈피겔 지에 의하면 2015년 기준으로 독일 전역의 15000 주유소 중 주유 사기로 신고 접수된 건이 8000건이 넘고 그중 5000건 이 넘는 사건은 진짜 주유 사기가 아닌 차주 들이 주유를 하 실수로 주유비 계산을 잊어 벌어진 사건들이었다고 했다.


주유하며 순간 생각이 많아져 딴생각하다가 또는 휴가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아이들이 보채서 정신이 없었다거나.. 어디를 급하게 가던 길 이여서

등등... 당당히 주유를 하고 계산은 잊은 체 유유히 사라져 버린 5000건의 실수 사유는 다양했다.

그중 75퍼센트가 집으로 가는 도중 또는 어디론가

가는 길에 기억을 하고 다시 돌아와 사과를 하고 계산한 후 사건을 해결했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날 분명히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주유비를 계산하고 나왔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읽어 보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맞추어 보아도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마음만 심란해진 나는 급기야 영화나 드라마 에서나 나옴직한 스토리 들을 상상 하기에 이르렀고 그 상상 속에서 남편은 누군가에 조작된 기획에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되고 있었고 나는 우리를 도와줄 변호사를 찾고 있었다.


독일 경찰서 안에서...

머릿속으로 스릴러 영화 몇 편을 찍고 있을 무렵 연수에서 돌아온 남편은 경찰서로 연락을 했고 우리는

출석요구서에 적힌 날짜보다 이틀 일찍 경찰서로 갈 수 있었다.

지난번에 누가 세워놓은 우리 차를 파손해서 잠시 들렸던 곳이 경찰서 중에 지서쯤 된다면 이곳은 본서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독일 살면서 우리가 경찰서 안을 이렇게 헤집고 다닐 일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담당 경찰의 안내로 중간에 무수히 많은 문들을 지나 1층 복도를 지나고 2층 복도 중간에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독일의 경찰서 관공서 사무실 또는 일반 회사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겨 있었다. 방마다 이름과 번호들이 붙어 있고 경찰 복장을 한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지 않았다면 여기가 경찰서 인지 시청의 어느 부서 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드라마에서 보고 상상하던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시끌벅적 시장통 같은 경찰서 안 풍경 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로 시작하는 미란다 원칙 인가하는 것을 날렵하게 생긴 경찰 아저씨가 읊조린 며 이름부터 모든 인적 사항을 남편에게 물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 하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분명 남편은 아무 이유 없이 불려 온 것이 맞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기 전에 우선 경찰 아저씨가 보여 주신 사진에는 남편의 주유하는 모습이 초간격으로 찍혀 있었고 우리는 마치 뭔가의 사건에 말려든 기분에 휩싸였다.


그 후 우리는 경찰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으로 이 황당무계한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알게 된 사건의 전말
기막힌 3유로 70센트

이 황당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보통 주유소 에는 번호 별로 저렇게 메타기가 달려 있어(위에 사진) 기름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데 우리가 갔던 그 문제의 주유소 에는 가스 주유 코너와 기름 주유 코너가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10번 6번 코너였고 (아래 사진 ) 이 코너에서 사람들이 자주 6번 코너에 있는 벤진 또는 디젤 등을 넣으면서 10번의 가스 주유 코너를 자기도 모르게 보게 된다는 거였다.

정리하자면 주유는 다른 코너에서 하면서 메터 기는 다른 코너 판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 코너가 고장이

났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 이미 주유구 안에 기름은 들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남편은 6번 주유 코너에서 주유를 하며 10번을 쳐다보다 메터기가 안 움직여서 고장 났네 하며 다른 코너로 돌아가서 주유를 하고 다른 코너의 주유비는 계산했는데 잘못 본 사이 들어갔던 기름 값은 지불할 수 없었던 거다. 그게 3유로 70이었고 한화로 약 사천 오백 원가량을 상황을 몰라서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유 사기로 신고 접수되었고 생애 처음 조서도 쓰게 된 것이다.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들처럼 우리는 그 주유소로 찾아가 사건의 현장을 확인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유소 직원은 그 코너에서 자주 그런 일을 생겨 방법을 모색 중인데 아직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해

남편처럼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원래는 우리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3유로 70을 받으면 되는 거였는데

현행법이 바뀌어 주유소에서 CCTV에 찍힌 차주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도 직접 연락을 할 수가 없고 일단 경찰에 신고 접수 가 되어야 연락이 되고 모든 것이 처리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그놈의 사생활 보호 차원이라는 데 저렇게 헷갈리게 주유 코너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 해 놓고도 아직 바꾸지 않고 있는 주유소에도 짜증이 나고 서로의 실수로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복잡스럽게 만든 독일 현행법에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하기는 하지만 재밌는 경험이다 싶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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