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의 판타지
굿바이 카셀 도쿠멘타 14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중부의 카셀 에서는 5년 마다 한번 세계 현대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그것도 100일 동안 이나 .. 5년 마다 이 도쿠멘타 라는 전시회가 인구 20만의 크지 않은 도시 카셀 에서 개최 될 때면 공원도, 박물관도, 도서관도,구 청사들도, 길거리도..도시 전체가 현대 미술의 전시장이 된다.
그때마다 조용하던 카셀은 시내 전시장 들을 중심으로 도쿠멘타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 에서 몰려 드는 사람들로 낮부터 밤까지 술렁 일 때가 많은데 ...
거리 마다 핸드 케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과 도쿠멘타 전시관 안내 지도 하나씩을 손에 들고 마치 예전에 인터넷 없던 아날로그 시절 지도를 들고 베낭여행을 다니듯 다니고 있는 사람들...그리고 타고 다니던 시내버스, 전차 안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들...시내 여기 저기에 관광지에 모여 여행가이드 로 부터 여행지 설명을 듣고 있는 단체 팀 처럼 우르르 모여 있는 들을 무리 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니라 어디 관광지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고는 한다.
오늘로 그 약속된 100일의 시간이 막을 내린다. 마치 신데렐라가 12시를 알리는 시계 바늘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야 했던 것 처럼....
도쿠멘타 전시의 안과 밖
그리고 낮 과 밤
가장 가까이에 있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을 때가 있듯 우리는 카셀에 살고 있으면 서도 이제서야
부랴 부랴 올해로 14번째인 도쿠멘타를 보러 갔다.
물론 밖에 설치 되어 있는 설치 예술품 들은 오며 가며 시간대 별로 보며 지나 다녔지만
마음 먹고 전시장을 돌아 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리 수술을 했던 딸내미는 많이 걸어 디닐 수가 없었고 남편도 나도 일정이 많아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막차 탄 기분으로 끝나 가는 도쿠멘타를 관람 했다.
이번 도쿠멘타의 상징적 설치 작품인 책의 파르테논 은 금서 들을 가져다 그리스 신전 모양의 설치물에 걸어 전시를 한 것인데 ...중간 중간에 듬성 듬성 빈자리 들이 많았고 금서들을 기부 받고 있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작가가 마지막 책을 다 끼우고 ....(독일 친구들 중에서 히틀러 때 금서 였던 책 들을 집에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기부 한 친구들이 꽤 된다.)
이제는 관람객 들이 걸려 있던 책을 하나씩 뜯어다 가져 갈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얼마나 줄이 길던지..
무슨 성지 순례 라도 하듯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책 하나씩 떼어 내는 이 행위들 자체 로도 전시 포퍼 먼스 중에 하나이다 보니 책 하나씩 들고 모두들 상장 받은 아이 같은 얼굴로 내려 오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책과 함께 도쿠멘타 14 전시회의 한부분을 함께 했노라는 뿌듯함을 안고 내려 오는듯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신전은 전시공간 으로 도쿠멘타 14 전시회가 진행 되는 전시 시간 뿐만 아니라 밤에도 불을 밝히며 그 앞 비어카르텐 과 바 에 마실 나오듯 나와 앉아 연주 되는 라이브 공연 등을 즐기던 많은 도쿠멘타 관람객 들과 카셀 시민 들 에게 사랑방 같은 분위기도 얹어 주었다.
도쿠멘타 전시를 관람 한 사람이던 그 앞을 지나쳐만 다니던 사람이던 그 앞에 나와 앉아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본전 생각에 부지런히 돌아 다닌 도쿠멘타 전시관 안에는
설치 조형물 들을
비롯한 그림, 사진,비디오 등등 현대 미술의 수많은 쟝르 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도쿠멘타 홀 안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쟝르의 작품들을 만나 볼수 있었는데...입구로 들어 가자 마자 만나 지는 이 하얀 종이 들은
다양한 두께의 종이 들로 이루어진 전시물로 종이별로 각각의 바람이 통과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얇은 창호지 느낌의 종이가 내는 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우리의 한옥집 문풍지 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어릴적에 한옥 에서 살았던 나는 이 하얀 종이가 내는 소리의 자연스러움에 익숙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 특별히 더 좋았다
이번 도쿠멘타 전시회 에서는 정치적인 테마인 작품들이 대거 전시 되었는데 ..
그중에서도 많은 작품 들은 정치적 폭력에 관한 내용이라 우리 막내 같은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관람 하기에 잔혹하고 적나라한 느낌의 작품들이( 잘린 손..머리 없는 사람 등....) 더러 있어 전시관을 급히 이동 해서 빠져 나와야 했다.
도쿠멘타 홀 중에서도 이 전시관이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곳 이였는데
초현실주의 그림들 뿐만 아니라 긴 천 위에 병풍 위에 수를 놓듯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만든 작품 부터..
천에 염색할 식물들을 직접 재배 해서 사용한 작가의 작품이 식물과 함께 전시 되어 있었다.
언제나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도쿠멘타 전시장의 일번지 라고 일컫는 프레드리치아눔 미술관 안에서 한국의 보따리를 만났다
멀리 서도 한눈에 알아 볼수 있었던 색색의 보따리
낯선 곳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다른 작품 들과 한데 어울려 멋지게 자리를 빛내고
있는 모습에 감격 스러웠다.
예전에 카셀 미대를 다니던 그때 독일의 미술 잡지 아트 지 에서 김수자 작가님의 보따리를 처음 만났던 그때 처럼...
다만 작가님의 팬으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익숙한 보따리 지만
외국 사람 들 에게는 다소 낯선 것인데 보따리 가 사용 되어지는 예를 들어 6.25때 보따리를 손에든 피난민 사진 이라던가.. 또는 보따리의 사용법에 대한 비디오 라던가....등을 곁다리로 보여 줄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낯선 음식을 대할때 음식 이름과
식재료 들 만으로는 어떤 맛 일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 메뉴판에 올려 져 있는 사진 을 보고 눈 으로 나마 그 맛을 상상 해 볼수 있듯이 말이다.
보고 또 보고 하루 종일 넓고 넓은 도쿠멘타 전시관 을 다섯 군데다 훑고 많고 많은 전시실을 구석구석 누볐더니 나중에는 의자 만 보이면 앉을 상태가 되었고 전시관 옆 벽 에 적힌 낙서도 이건 또 뭔가 ?하고 다시 볼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림형제 박물관을 마지막 탐방지로 정하고 우리의 여섯 번째 도쿠멘타 전시관 으로 향 했다.
1층에 그게 그것 같은 사진들과 스케치들을 대충 빠르게 보고 아직 계단을 많이 오르는 것은 힘든
딸내미를 핑계 삼아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 갔다.
2층 에는 온가족이 재미있어 한 작품 들이 많았다.
예를들어 미로 찾기 같은 숲을 지나 선 길 끝에 마주한 홀로그램 은 현대판 거울아 거울아 이세상 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묻는 백설공주의 계모 마녀와 화상 체팅을 하는 것 같은 작품도 있었고
또 다른 전시실 에는 두가지의 영상이 동시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내용을 이어 가고 있었다.
또 앉아서 앞을 바라 보면 내 모습이 동영상 화면 처럼 앞쪽 화면에 뜨고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가
화면에 나와 말을 건다 마치 내가 영화의 한장면 안으로 빠져 들어간 느낌이 들어 생동감 있었다.
우리는 하루종일 정치적 폭력..,고문,전쟁,여성 폭력,망명, 난민 등등의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비슷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을 보다가 동화 적 이고 개성이 톡톡 튀며 아이디어가 반짝 이는 유머러스한 작품 들을 만나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이곳이 오늘 본 전시실 중 최고 였다고..
그때 였다. 그곳의 직원 으로 보이는 남자 두명이 우리 에게 다가와 힘들게?영어로 물었다.티켓이 있느냐고 말이다.우리는 독일어로 당연하지요 여기있어요 라며 도쿠멘타 가족 티켓을 자랑스레 내밀었다.
직원들은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이런일이 자주 있는데요 여기는 도쿠멘타 전시실이 아니고
그림형제 박물관 자체 전시실 이에요 도쿠멘타는 1층 까지에요" 란다.
한마디로 우리는 도쿠멘타와 무관한 전시 를 보고 크게 감동 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의도치 않은 공짜로...
역시나 한번에 너무 많은 작품을 보러 다닌 후유증 이다.
그와중에도 우리가 착각한 덕분에 다른 전시 관람 티켓을 따로 사지 않아 20유로 굳었다며 남편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세계 현대 미술 전시회 14번째의 도쿠멘타를 문닫기 전에 아슬 아슬 하게 관람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