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06. 2017

007 작전 같은 우편배달

독일 우체부 크리스토퍼 아저씨의 기발한 배달


독일은 우편물의 종류에 따라
배달 오는 시간도 다르고
우체부 아저씨 들도 각각이다.

동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동네 같은 경우 각종 편지 또는 얇은 잡지, 작은 책 같은 우편함 속에 쏙 하고 들어가는 우편물 들은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우체부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또는 저렇게 (바로 아래 왼쪽 사진..) 바퀴 달린 가방을 밀고 다니며 집집마다 달려 있는 우체통 안에 넣어 주시고 간다.

우리 지역 담당인 나이가 지긋하신 베너 아저씨는 바퀴 달린 우체국 가방을 밀고 다니 시는데 우리 동네처럼 언덕도 많고 집도 많은 동네를 돌고 나면 운동이 따로 필요 없으시다고 진담 섞인 우스개 소리를 하시고는 한다.


그리고 크고 작은 포 들은 이렇게 노란 우체국 차로 하루에 두 번 독일 내에서 들어오는 우편물 또는 빠른 우편물 들은 오전 11시부터 2시 사이에 배달되고 국제 우편물 들은 2시부터 4시 사이에 배달이 되고는 한다.


앞 시간에 배달되는 우편물 들은 우체부 아저씨도 늘 같은 분 들이고 배달 시간도 그날 그날 우편물의 양과 날씨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어도 대략 비슷한 시간이며 서로 잘 알고 지내서 우편물 받기도 참 수월 한데...(가령 주소지의 번호 또는 받는 사람 이름이 살짝 틀려도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뻔히 아시는 그 지역 담당 우체부 아저씨 들은 알아서 배달해 주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2시부터 4시 사이에 국제우편을 배달하시는 분들은 수시로 사람들도 바뀌고 그렇다 보니 우편물 받는 것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

(그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독일은 가정집 현관 또는 울타리 앞에 저렇게 우체통 이 하나씩 달려 있어요. 물론 각자 달아 놓은 것이지요.

그 옆에 노란색 테두리가 되어 있는 우체국 종이가 소포가 다녀 갔다는 쪽지 에요)

어쨌거나 매번 우리 집 소포들을 배달해 주시는
크리스토퍼 아저씨는 집에 사람이 없으면
우편물을 이웃에 맡기기도 하는데
(우리 집 우편물은 주로 이웃집 크루거 아저씨 네 서
도맡아 받아 주시고는 한다.)

한 번은 이웃집 크루거 아저씨 네도 아무도 안 계셔서 저렇게 우편물이 왔다 갔다는 종이(아래 오른쪽 사진)를 받고 그다음 날 우체국까지 직접 찾으러 가야 했다.


지난번에 국제 소포 가 난리가 난 후에 (위쪽에 그 관련 글 링크 걸어 놓았읍니당) 우리 친정 엄니 께서 "어째 그 동네 우체부 아저씨들은 전화 도 한번 안 주고 소포를 획 하고 다시 싣고 간다냐.." 라며 한국은 소포에 핸디 번호 적혀 있으면 전화해 주신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는 독일 이 아닌가? 그런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우편물이 작고 가벼운 것이라면 뭐 우체국까지 다녀오는 것이 그리 번거로운 것은 아닌데 그때 받아 와야 했던 것이 꽤 묵직한 책 이여서 차 없이 다니는 뚜벅이인 내가 들고 오느라 끙끙거렸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시간에 소포를 항상 배달해 주시는 크리스토퍼 아저씨에게 작은 소포를 받으며 지난번에 이번 것 보다 훨씬 무거운 소포 찾으러 다녀오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재미난 일이 생겼다.

저 하얀 종이가 크리스토퍼 아저씨가 암호 처럼 적어 놓은 쪽지 에요.


며칠 전
강습 때마다 들고 다니던 비머가
더 이상 켜지지가 않는 거다.
 아마도 그 안에 램프가 수명을 다 한 듯했다.

3년 넘게 썼으니 오래 쓰긴 했고 당장 강습 이론 시간에 써야 해서 급히 인터넷으로 비머를 주문했다.

요즘은 독일도 인터넷으로 쇼핑할 수 있는 사이트들이 잘 되어 있어서 언제쯤 주문한 물건을 받게 될지에 대한 메시지도 받고는 하는데 문제는 그 소포가 도착한다는 예정 시간에 우리 집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 시간에 크루거 아저씨 네도 안 계시면 이번에도 꼼짝없이 우체국까지 가야 하겠구나.. 할 수 없지.. 하면서 볼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우체통을 열었다.

그런데...

한참 위쪽에 올려져 있는 사진처럼 우편물이 다녀갔다는 표시가 되어 있는 노란색의 우체국 쪽지가 들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은행에서 온 편지와 남편이 매달 보는 잡지 그리고 햄버거집 광고 전단지 위에 우체국 표시가 되어 있긴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글씨와 그림 이 써져 있는 하얀 종이를 보고 한참을 갸우뚱했다.

크리스토퍼 아저씨가 소포를 산타의 선물 처럼 숨겨 놓고 가신 우리집 작은 오두막 이에요.

오잉 이 거이 뭐여? 뭐지? 보통 몇 시쯤에 어떤 우편물이 다녀 갔다는 간단한 쪽지 가 남겨져 있기

마련인데 무슨 암호 같은 것이 써져 있는 종이를 들고 한참이나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리 집 정원으로 나갔다가 그 자리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다, 우리의 우체부 아저씨 께서는
"소포 하나를 그릴기 옆에 두고 갑니다.
잘했죠? "하는 뜻을 함축적으로
암호처럼 1pk grill이라 쓰고
그아래 스마일을 그려 놓았던 것이다.

독일의 가정집 들은 담장이 따로 없고 나지막한 울타리들이 대부분 이여서 정원 쪽은 오며 가며 사람들이 다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고 거의 오픈되어 있다시피 해서 살짝 들어왔다 나가는 것 또한 가능하게 되어 있다.

우리 집은 정원 귀퉁이에 그릴 휴테라고 부르는 그릴기, 정원 용 삽이나 흙 또는 아이들 장난감, 자전거 등도 세워 두는 지붕 달린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는데 크리스토퍼 아저씨가 산타 할아버지처럼 그릴 휴테 에 소포를 숨겨 놓고 만약 에라도 우편함에 꽂아져 있는 종이쪽지를 남들이 보고 알 새라 작은 쪽지에 암호처럼 써 놓고 가신 거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소포를 전달해 보겠다고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발한 방법을 고심했을 크리스토퍼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정스런 시골 동네 같은 작은 곳이어서 서로 잘 알고 지내다 보니 이런 재미난 일도 생기지 않나 싶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던 날이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암호 같던 쪽지를 보여 주었더니 남편이 빵 터지며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낸 아저씨도 재밌지만 그걸 알아채고 찾아낸 네가 더 웃겨.."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주부들의 숙제 봄맞이 대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