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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21. 2017

썸은 불은 국수 가락을 타고

우리의 아날로그 연애 이야기

걸어 다니는 시계와 야쿠자의 딸

지금 옆에서 슬며시 웃으며 "우리 연애 때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때?"라고 나를 부추겨 대고 있는 남편은 언제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 가장 먼저 읽어 주는 애독자님 이기도 하다.


가끔은 내 글의 부족한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꼭 집어 이야기해 주어서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남편의 객관적인 감상 평에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하고 가끔가다 글을 읽으며 빵 터져 주는 모습에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런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한국이 아닌, 방 한가득 지도 펴 놓고 탁 찍어 오게 된 괴팅엔이라는 독일의 한 작은 대학 도시에서였다.


남편은 그 당시 독일에서 유학 중 이시던 작은 아버지 댁에 놀러 왔다가 얼떨결에 학업을 시작하게 된 유학생이었고 나는 짧은 유럽 배낭여행 끝에 독일에서 꼭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낯선 도시로 무작정 막 상경 해 알아듣기도 어려운 독일어와 밤낮으로 씨름하고 있던 어학원 생이였다.


남편은 원래도 성실한 성격이지만 그때 공부하며 없는 시간 쪼개어 운동을 하러 다니느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정확히 정해진 곳을 지나다닌다고 해서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리 우고 있었고, 하얀 얼굴에 처진 눈 그리고 뻐드렁니 때문에 일본 사람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던 나는 그 오해가 잘못 와전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야쿠자의 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 우고 있었다. 칼 이라고는 밤 깍을때 쓰시던 작은 과도 외에는 쥐어 본 적 없으시던 우리 아버지가 들으셨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지만 그 당시 말도 안 되는 소문도 기정사실인양 돌아다니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좁은 유학생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썸은 불은 국수가락을 타고


서로 다른 별명만큼이나 눈이 부시게 햇빛이 찬란한 주말엔 다들 놀러 나가느라 텅 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세상 행복하다는 남편과 독일에서 이렇게 햇빛 나 주시는 귀한 날에는 밖에 나가 젊음을 불태우며 놀아 줘야 예의라고 생각하던 나는 처음 에는 서로 에게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도 핸디도 없던 그 시절 유학생들이 모여 자주 했던 만남의 단골 레퍼토리는 한국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그때의 한국음식은 그냥 한 끼 끼니의 의미가 아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달래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덥디 덥던 무더위도 식히고 한국을 향한 그리움도 매콤한 비빔국수로 달래기 위해 몇 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기숙사에 모여 한국식 매운 비빔국수를 해 먹기로 했는데 문제는 그 당시 나는 매번 물 조절에 실패해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먹던 시절이었다.


지금 내가 독일에서 한국요리강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때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흠칫 놀라 고는 한다.

요즘은 간단히 끝내는 간식 비빔국수는 그때의 내게는 굉장한 요리였다. 더군다나 칼질 보다 일이 더 적게 거니 싶어 용감하게 떠맡은 국수 삶기는 나를 멘붕으로 인도했다.


태어나 그렇게 굵은 국수 다발을 물에 넣어 본 적이 없던 나는 도무지 어느 타이밍에 어찌 넣었다 건져야 하는지 알 길이 없는 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빠르게 검색이라도 해 보았으련만  비싼 국제 전화로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은 끓고 있는데 못한다고는 할 수 없어 앳따 모르겠다 그냥 던지듯 국수 다발을 넣었더니 결과는 처참했다.


분명 겉면에 소면이라 적혀 있던 국수는 가락국수 면처럼 굵어져 있었고 한가락에 덜 익거나 탔거나 가 섞여 있던 그 화려한 비주얼에 오묘한 맛은 무어라 설명하기가 어려운 종류였다.

모두가 그 괴상 한 국수의 생김새와 맛에 넌더리를 치며 국수라 부르기 어려운 것의 위에 럭셔리하게 얹어져 있던  오이, 김치, 계란 등의 고명 등만 간신히 건져 먹던 그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을 뚝딱하니 다 비워 냈다.


나는 그 모습에 소스라 치게 놀라며 저 사람은 분명 몇 년간의 유학 생활에 입맛이 바뀌어 우리와는 다른 식감을 가졌거나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 라고 생각 하기 시작했고 며칠이 지나서도 그날 비빔국수라 부르기 미안했던 국수를 함께 먹던 사람들이 오며 가며 만날 때마다 그 국수가 뱃속에서 불어서 몇 끼를 굶어도 배가 꺼지지 않더라며 나를 놀려 댈 때마다 역시나 그 사람은 다르구나 라며 달리 보이던 남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내게 잘 보이려던 남편이 소화제 먹어 가며 각고의 노력이 뒤따른 산물 이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고

그때는 이미 낚인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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