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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17. 2018

마법의 주문 같은 커피 한잔의 주문


커피 한잔

내게 커피 한잔은 바쁜 일상 가운데 부릴 수 있는 한잔의 여유 또는 흥얼거리는 콧노래 여도 꼭 챙겨야 하는 작은 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정신없는 날 이어도 한잔의 커피를 편안히 마실수 있는 시간은 늘 필요하다.

어느 날은 커피 향이 감도는 카페에 앉아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자투리 시간에 얼른 커피 투 고우를 해서 따끈한 커피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며 한 모금의 커피를 마셔가며 길을 걷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모처럼.. 집안 청소 끝내 놓고 창가에 앉아 햇빛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나른한 미소 지으며 커피를 홀짝 이기도 한다.

그렇게 한잔의 커피는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마시는지에 따라 때마다 맛과 느낌이 다르다.

커피 위에 초콜릿 가루  

독일 사람들은 라테 마끼아또 또는 카푸치노처럼 우유가 들어가는 커피 위에 얇은 슬라이스 초콜릿을 띄우거나 초콜릿 가루를 뿌려 마시는 것을 즐겨한다.

그래서 라테 또는 카푸치노를 주문하면 "초콜릿 가루 뿌려 드릴까요?"라고 묻는 곳도 있고 또는 잡채 위에 깨 뿌리듯 말도 없이 초콜릿 가루 훅 뿌려 놓고 커피잔을 내미는 곳도 있다.

그런데 내 개인 적인 취향은 초콜릿 가루 나 초콜릿 조각 없이 하얗고 몽글몽글한 우유 거품 그대로 커피와 마시는 것이다.

그냥 보았을 때 뭉게구름 같은 하얀 거품 위에 올라앉은 초콜릿은 이쁘다 그러나 마시다 보면 색과 맛이 오묘하게 섞이어 길에 질척하게 녹은 눈을 연상케 한다.

나는 그 질척이는 느낌이 싫어서 언제나 커피를 주문할 때 초콜릿 가루 없이요 를 외치고는 하는데

자주 가는 카페나 빵가게에서는 이미 직원들 머릿속에 저 쪼그만 아줌마는 라테 마끼아또 초콜릿 없이 가 입력이 되어 있는지 주문하려 있으면 "오늘도 라테 마끼아또에 초콜릿 가루 없이?" 라며 아는 체를 해 온다. 나는 그 아는 체가 언제나 반갑고 달갑다.

별것 아닌 것이지만 나 아닌 누군가 나의 작은 습관 같은 것을 알아준다는 것이 나물 무칠 때 한 방울의 참기름처럼 나를 풍요롭게 한다.

커피 한잔의 주문

얼마 전에 피부과에서 눈가에 있던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왼쪽 눈 가에 여드름 같이 작은 것이 생기더니 어느 날부터 커지기 시작해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염증이 생긴 것이라 잘라 내고 꼬매는 작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금방 끝나는 아주 작은 수술이라 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받고 나니 그것이 꽤나 성가시고 아팠다.

한쪽 눈을 가리고 다니다시피 해야 해서 핸디에 문자가 와도 잘 안 보이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또, 수술 부위가 눈 주위이다 보니 눈을 깜빡 일 때마다 따갑고 욱신거리고 실밥이 당겨 왔다.

게다가 얇은 눈 커플 위로 수술할 때 터졌던 작은 모세혈관들이 시퍼런 둥둥 멍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반창고로도 다 가려지지가 않아 햇빛도 없는데 한동안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했다.


며칠 전 드디어 그 불편함을 뒤로할 수 있는 실밥 뽑는 날이 왔다. 혈관이 터져 여기저기 얼룩 덜룩한 것이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없어질 것이고 우선은 눈을 깜 박일 때마다 아프고 거추장스러웠던 실밥을 뽑고 나면 한결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 앞이 다 되어 갈수록 실밥 뽑을 때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일찍 집을 나선 것이 무색하게 머믓 거려 졌다.


아직 15분이나 예약 시간도 남아 있고 두근 거리는 심장도 진정시킬 겸 병원 건물 안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하나 남은 창가 자리에 외투를 벗어 투척 해 놓고 지갑을 들고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그분도 나를 알아 보고 우리는 동시에 "어?!"했다.

이때의 "어?!"는 누군가 친구나 지인은 아니고 어디서 알기는 아는 사람인데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쳤을 때 바로 튀어나오는 "맞죠?"가 포함된 의성어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주 가는 카페의 직원이었던 그분은 아마도 이곳으로 이직을 했었나 보다.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다른 곳에서 만나니 반가 웠다.

그분도 그랬는지 "여전히 라테 마끼아또에 초콜릿 가루 없이요?" 한다.

한잔의 커피를 주문하며 실밥을 뽑아야 한다는 것에 잔뜩 긴장해 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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