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Nov 14. 2018

때로 행복은 만져지기도 한다


돌발 상황은 주로 바쁠 때 터진다.

한식 요리 강습을 하며 세운 나름의 원칙 중에 하나가 모든 식재료의 신선도다.

그래서 고추장, 된장, 간장, 참기름 등의 양념류를 제외한 식재료들은 조금 더 바쁘거나 번거롭 더라도 주로 강습 당일 준비한다.

그것도 고기는 저쪽 마트에서 생선류는 이쪽 마트에서 채소류는 또 다른 마트에서 등으로 나누어 놓고 장보기 계획을 세워서 하는데 살다 보면 유난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몰려 있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이래 저래 해야 할 일들 사이에 시장 볼 시간들을 나누어 바둑판에 얹은 바둑알 줄 세워 놓듯 정해 두고 눈썹이 휘날리게 고기 장을 보러 자주 가던 마트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이쪽 마트의 고기 코너에서는 다년간 다니다 보니 직원들이 고기 부위 별로 원하는 두께에 잘 맞추어 손질해 주고 고기의 종류와 질이 다른 마트보다 좋아 주로 한식 강습용 고기를 이곳에서 준비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던 것은 한참 바쁘게 돌아가야 할 마트의 고기 코너에 불이 꺼져 있고 다른 날 에는 항상 진열되어 있던 소시지들과 고기들이 온데간데없고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마트 안에서 직원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불이 꺼진체 텅 비어 있던 마트의 고기코너

우유, 치즈 등의 식품 코너 냉장고 도 저지방 유제품 몇 가지만 빼고 텅텅 비어 있고.....

소시지, 누들 등을 진열해 놓는 냉동칸도 텅텅 비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마트 안에서 음료수 , 밀가루 등의 장을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 에게 물어보아도 이유를 모른다 하고..

평소라면 새로 들어온 물품들을 진열하기 위해서 라도 수시로 왔다 갔다 했을 직원들도 찾아볼 수가 없는 거다... 하... 이것이 무슨 일이라냐?

누가 밤새 냉동식품 들과 고기 들만 털어 갔나?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지?

수많은 질문을 뒤로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평소 누들,요쿠르트,크림,육포,고기 등등 수많은 종류의 식품들이 진열 되어 있던 냉동칸이 텅텅 비어 있었다

정작 사야 할 고기는 못 사고 아이들 간식거리와 과일만 집어 들고 계산대에 올려두며 더 이상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직원에게 도대체 고기 코너와 냉동 칸들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물었다.

씩씩하게 생긴 직원은 뭐 별일 아니라는 듯 차분히

이야기했다.

간밤에 고기 코너를 비롯한 냉장, 냉동칸에 전기가 모두 꺼지는 바람에 식료품들이 모땅 못쓰게 되었고 다시 재정비하려면 며칠이 걸릴 예정이라고...

헐.. 이 사람아 나는 오늘 당장 요리강습에 쓸 불고기감 쇠고기가 필요 하단 말이다....

그 마트 직원의 답은 쌈빡 하리만큼 간단명료했으나 내 머릿속은 그러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

우선 한 군데에서 해결하지 못한 식재료 때문에

다른 곳을 더 들려야 하다 보니 장 보는데 들여야 할 시간 이 생각보다 한참은 더 추가되어야 했고 하는 수 없이 해야 할 일 한 가지 를 다음날로 미뤄 놓고 차선책을 간구했다.


그래서 원래는 강습 때 사용할 채소는 다른 마트에서 준비하는데 한꺼번에 채소류와 고기류를 준비할 수 있는 제3의 마트로 가기로 했다. 이곳은 시장 보러 다니는 동선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강습 준비로 구태여 들릴 일은 많지 않고 아침 조깅하고 어쩌다 커피 생각나면 잠깐씩 들르던 마트였는데.. 비교적 채소값이나, 기타 식료품 값이 그다지 착하지는 않지만 종류는 빠짐없이 있는 곳이고 고기 코너가 따로 있는 곳이라 시간 없을 때 한 번에 장을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따라 불고기 감으로 사용할 질기지 않고 연한 부위의 쇠고기가 이곳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안 되겠다 싶어 메뉴를 닭갈비로 급 변경하고 식재료들을 챙겨 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강습 메뉴까지 바꾸었으니 요리강습 끝나고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줄 레시피도 다시 출력해서 인쇄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오늘 왜 이러지 하며 살살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거기다 서너 개가 넘는 마트 계산대에서도 물건을 잔뜩 올려놓은 사람 들로 줄지어 있었다.


마트 계산대에서도 줄을
 잘 골라 서야 한다.

독일에서는 어디선 가에 줄을 길게 늘어선 것을 Schlangen 뱀 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말 그대로 뱀처럼 길다고... 마트 계산대에서 줄을 길게 늘어선 것을 Kassenschlangen

이라고도 한다.

그날 뱀뱀이를 연상케 하는 긴 줄들이 계산대마다 인 거다. 이럴 때 어느 계산대 쪽 직원이 좀 더 빠른가?

물품 올려져 있는 양이 어느 쪽이 더 적은가? 카드를 꺼내 들고 있는 사람이 어느 쪽이 더 많은 가?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어느 쪽이 더 많은가?를 빠르게 훑어야 한다.

왜냐하면 계산되어야 하는 물품들이 많으면 당연히 더디게 진행될 것이고, 카드를 쓰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카드 결제에 문제가 생기면 하세월 걸릴 수도 있으며 노인 분들은 천천히 움직이실 뿐만 아니라 기본 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분들이라 급할 게 없기 때문이며 때에 따라 직원이 워낙 천천히 일 하는 타입 이면 아무리 짧은 줄에 가서 서 있어도 헛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마트 계산대에서도 줄을 잘 골라 서야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뭔 날인지 머리 굴려 골라 잡은 짧은 줄이 진척이 없는 거다 바로 내 앞에 두 사람 전인 곳에서부터 아우토반 (독일의 고속도로) 길 막히듯이 움직이지를 않길래 뭔가 싶어 목을 길게 빼고 쳐다보았다.

우선 계산대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이 제법 많았고 게다가 계산하고 있는 뒤태만 보이는 젊은 아가씨 인지 아주머니 인지 가 너무 뜸을 들이는 것이다.

동전 하나하나 세어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놔 오늘 줄 또 잘 못 섰네!" 하며 이마빡에 줄 긋고 쳐다보려니 어째 뭔가 달라 보였다.

마트 직원이 거스름 돈을 잔돈으로 내어 주며 젊은 여성의 손바닥 위에 하나 하나 올려주며 그녀가 만져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인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시간이 없어 동동 거리고 있었다는
상황을 잊어 버리고 마트 직원의 살뜰 함과 줄지어 서서 기다 리면서도 전혀 짜증 스러워 하지 않던 독일 사람들의 배려심에 마음 한구석이 말랑 해 지고 있었다.

때로 행복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이다

계산을 하고 차곡 차곡 시장 본 물건 들을 봉지 봉지에 나누어 어떻게 하면 잘 들고 갈수 있을까 ?를 (독일 마트 에서는 물건을 많이 사도 배달 서비스가 없다.그나마 요즘은 마트 중에 인터넷 으로 주문 한것을 배달료 포함 해서 정해진 날짜에 배달 하는 서비스가 되고 있기는 하다.)궁리 하며 요렇게 담고 조렇게 담고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마트 직원 에게 묻는 소리가 들려 왔다. " 우리 엄마가 지금 스시용 김을 찾으러 다시 마트 안으로 다시 들어 갔는데 아마 찾지 못하나 봐요.김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래요?"  라는 것이 아닌가?

일반 마트 에서 독일 사람이 스시용 김 을 찾는 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쳐다 보았는데 아까 계산대 에서 보았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던 그녀가 한손 에는 지팡이 같은 것을 잡고 다른 한손을 들었다 놨다 하며 새로 나온 과자 를 앞에 두고 있는 아이 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어딘지 모를 허공을 응시 하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오늘 저녁 친구들과 처음 으로 스시를 함께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너무 설레요"

순간 나도 모르게 내안의 오지랍이 고개를 들기 시작 했다.


나는 급기야 도를 아세요 처럼 스르륵 그녀에게 다가가 한국 요리 강사 라고 나를 소개 하고 조금 전에 우연히 김을 찾는 것을 들었는데 여기 마트 에는 토마토 캐첩 이랑 겨자 등의 소스들 있는 칸 끝쪽에 따로 진열 되어 있다고 위치를 알려 주었다.
마트 직원 듣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마트에 나와 있는 김들은 찾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서 때때로 오래된 김이 있기도 하고 비싸다, 내가 주로 장을 보는 아시아 식품점 들에 가면 훨씬 저렴 하게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김을 살수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물론 우리 동네 아시아식품점들 위치를 자세히 알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이야기 도중에 스시 먹어 본적 있느냐...스시는 일본 에서 시작 되었지만 한국에도 김밥 이라는 것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김밥과 스시는 생긴것은 비슷하나 밥의 양념이 달라 맛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도 이야기 해 주었다.


마치 공부 잘 하는 학생 처럼 한마디도 놓칠수 없다는 듯 내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에 에너지가 충전 된 나는 장바구니 바리 바리 들고 서서 무거운 줄도 모르고 강습할때 처럼 신바람 나게 설명을 더해 났갔다.


유럽에 모든 나라가 빵을 먹고 겉모습이 비슷한 것도 많지만 우리 입맛에 겉은 딱딱 하고 속은 말랑한독일 빵이 최고 인것 처럼 한국의 김밥은 일본의 스시와 겉모습은 비슷 하지만 우리 입맛 에는 식초와소금 설탕으로 밑간을 해 새콤달콤한 스시 보다 참기름과 소금으로 밑간을한 고소한 김밥이 최고 다 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을때쯤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곁으로 왔고 마치 굉장한 것을 알았다는 듯 그녀는 어머니에게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하기 시작 했다.

"엄마 이분이 한국요리 강사 시래, 스시와 비슷 하게 생겼지만 맛이 다른 김밥 을 알려 주셨어 그리고 마트 보다 훨씬 싸고 좋은 김을 살수 있는 아시아 식품점도 알려 주셨어 ,멋진 분을 알게 되서 너무 운이 좋은날 이야!"


얼떨결에 멋진분이 된 나는 온화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녀와 똑닮은 인상의 어머니가 전하는 고마움이 담긴 포근한 미소와 방금전 마트 보다 훨씬 싸고 좋은.. 이라는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이 확실한 마트 직원의 따땃한 눈총을 받으며...오늘 저녁에 친구들과 김밥 만들어 볼 생각에 설레인다는 그녀의 손을 잡고 김을 펴고 그위에 밥을 얻고 재료 얻어서 이렇게 요렇게 말면 짜잔 하고 김밥이 나온다는 것을 맞잡은 손을 가지고 3D 시물레이션으로 설명해 주었다.

마치 실제 강습 시간에 수강생들 앞에 서서 하나 하나 보여 주며 설명해 주듯 말이다.


그날...예상 하지 않았던 돌발 상황 덕분에 특별한 순간을 만났다.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던 그녀의 설렘과 행복이
때로 행복은 이렇게 만져 지기도 한다 라는 것을..
카푸치노 위에 얹혀진 하얀 우유 거품 처럼 내 마음 한가운데 몽글 몽글 하게 예쁜 그림 담아 얹어졌다.

그날이 친구 지나를 처음 알게 된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법의 주문 같은 커피 한잔의 주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