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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21. 2019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


나는 이 주어 빠진 문장의 주인공은 당연히 남편인 줄 알고....

" 자기?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살짝 난감한 듯 콧등을 찡긋 하며 나를  한번 쓰윽 쳐다 보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 나 말고 너.."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대며..

"에이 그럴 리가... 자기도 알다시피 내가 먹는 것 조심 한지 몇 년짼데 갑자기 살이 찔 리가.."라고 대답했다.

(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히스타민, 락토제, 소르비트 세 가지 의 불내성을 가지고 있어 먹지 못하거나 먹지 않는 게 좋은 식품군을 세는 것보다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 세는 쪽이 더 빠르다. 그래서 그 문제의 식품 군들을 가려 먹거나 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십 년 가까이 몸무게 변화가 크게 없었다.)


그러자 남편은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했다.

"체중계에 한번 올라가 봐 못해도 삼사 킬로 이상 찐 거 같다."


나는 별 웃기는 소리를 다 들어 보겠네..라는 듯이

그래, 한번 달아나 보자


라고 큰소리치고는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세상 달관한 자세로 다가 체중계에 올라앉듯.. 담담하고 사뿐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내 동공을 지진케 하는 숫자가 두둥 하고 뜨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나는, " 어? 이거 좀 이상한데? 오래 안 썼더니 고장 난 거 아니야?"

라며 " 자기도 한번 올라가 봐 "라고 남편을 등 떠밀었다.

얼떨결에 올라간 남편과 막둥이까지 차례로 체중계 순례를 끝낸 후에 아직은 멀쩡한 것으로 판명된 체중계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한번 슬그머니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숫자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빛의 속도로 바닥으로 내려와서는 그 와중에도 그 숫자를 누가 볼세라 한쪽 발로 후딱 하니 저울을 가렸다.

그리고는 자다가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말. 도. 안. 돼!"


남편은 내 꼴값 삼단 세트를 지켜보지 않은 척 핸디에 눈을 꽂고는 현실을 받아 드릴수 없어 기막혀하는 마누라 에게 기어코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날렸다.

"거봐... 쪘지?"


그사이에 5킬로?
이거 실화 임?


세상에나... 남편의 눈대중은 정확했다.

저울 속 숫자는 믿을 수 없게도  평소 몸무게보다 5킬로나 늘어나 있었다.


어떻게 이지경이 되도록 그동안 내가 모를 수가  있었지? 나 나름 예민한 여자인데... 라며  한동안 멘붕이던 나는...

옷장 문을 열어 차곡차곡 개켜진 더운 여름날 입을 일이 없던 청바지 들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로, 정말로 내가 그사이에 무려 5킬로 그램이나 체중이 불었다면... 날 더워지기 전에 입었던 몸에 딱 붙는 스키니진이 맞을 리가 없잖아 하면서 말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라고 언젠가 TV 속 여주인공이 온갖 청승 처바른 목소리로 지껄였던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도 딱 맞던 바지가 "언제 그런 적 있었어?"라고 말하듯  다리부터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불과 세 달 전 까지는 잘 만 입던 바지였는데.. 말이다.

찾았다, 범인!


굳이 간신히 들어가던 청바지가 아녀도 남편과 일 끝나고 우리도 운동이라는 것을 좀 해 보자 하며 야밤에 피트니스 갔던 것이 삼 개월 전쯤 되었고

그때 피트니스센터에서 확인했던 내 몸무게는 평소와 다름없었으니 삼 개월 만에 5킬로가 찐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나는, "아냐 그럴 리 없어 삼겹살 5킬로 면 부피가 얼마인데 몸이 예전보다 그렇게 무거운 느낌은 아니잖아" 하며 강한 부정을 하다가 ,

" 혹시... 다른 저울로 재볼까? 5킬로는 아니고 한 3킬로 찐 것이 아닐까?" 하며 애걸복걸 부정하고 싶어 하다가,

"인생 뭐 있어 골골하지 않고 건강한 돼지로 사는 거야" 초긍정 모드로 수동 전환했다 가..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며 기분이 이랬다 저랬다 널을 뛰었다.


세 아이 임신 기간 빼고 내 인생에서 초단기간 급체 중이 늘었다는 당혹스러운 사건이 내게도 현실로 받아 드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다가 "아하 범인은 그거였어! 하며 무릎을 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평소처럼 마트에서 채소, 과일 들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과일맛이 첨가되어 부드럽고 단맛 나는 맛난 독일 달짝 지근 맥주 들과 고구마, 당근, 등을 튀겨 만든 야채 칩스 그리고 단 게 당길 때 하나 둘 입속에 집어넣으면 말랑말랑 쫀득쫀득 달달한 것이 만족스러운 독일 대표 젤리 하리보 들을 너무나 자연스레 주섬주섬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게 뭐 어때서? 나한테는 굉장히 어떤 일이였다.

위에는 석류맛 아래는 자몽맛 도는 달달이 맥주들 내가 빡친날 주로 찾게 되던 아이들....


스트레스는 기호 도 체중도 바꾼다

왜냐하면.. 원래 평소의 나는 맥주 또는 와인, 칵테일 등 알코올 종류는 일 년에 한두 번 생일이나 휴가 또는 기분 낼 때 한두 번 마실까 말까 였고 칲스 종류는 입에 데지도 않았으며 하리보 나 달달한 것들 또한 거의 먹지 않던 사람인데.... 이렇게 장바구니에 마구 담아 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큰 기호의 변화인 셈이다.


생각해 보니...

독일의 마트는 어디를 가나 꼭 입구 에서부터는 과일, 야채 칸으로 시작해서 계산대로 향하는 길 목마다 맥주, 음료수, 과자, 젤리류 등이 지뢰밭처럼 포진되어 있고 계산대 바로 근처 에는 세일 나온 사탕, 초콜릿, 껌 등의 단것들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다.

라는.... 것은 물론 핑계이고...


이제...

남편의 개인 병원 일을 돕기 시작 한지 9개월이 되어 간다. 아마도 그변화의 시작이 이후부터 였던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병원 일은 매시간 나를 신세계로 인도했고 매일 만나게 되는 다양한 환자 들과 보호자들은 그간 강습을 하며 사람 만나는 것에는 이미 단련이 돼 있던 나도 기함하게 했다.

또 그들의 저마다의  다른 사정들과 빽빽한 요구사항 들 그리고 병원 사정 상관없다 나는 내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말리라 하는 일방 통행적 사고방식을 온몸으로 시사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생각 보다 더 진 빠지는 일이 였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서비스직 종사자 들의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절대 공감하게 되었으며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하고 담대 하기란... 판소리 하는 분들이 수련하러 산에 올라가자마자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 는것 보다  훨씬 실현 가능성이 희박 하다는 사실을 알게 다.


그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던 직원 문제들...

그동안 있었던 일들만 이야기 할려 들어도 이밤이 새도록 이다....

그리고 뭐하나 익숙해 질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양식의 서류들이 눈앞에 나타나 나를 당황케 하던 수많은 의료 관련 서류들......

이 모든 것들이 매번 나를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어기에 충분했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이 제일 무식한 방법 이라지만... 할 수 없었다

내게도 뭔가 위로가 필요했던 거다...


그러나 남의 건강 챙겨 주는 일 하다 내 건강을 망칠수는 없다.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5 킬로그램의 살들과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 으로 제대로 다이어트를 결심 했다.


야채칲스 ,올리브유로 튀겼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지만 살찌는데 일등공신!
스트레스 만땅일때 내가 가장 즐겨 먹던 하리보. 보들보들 말랑말랑 달다구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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