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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08. 2020

일단 밀어 계속 파기만 하면되


독일은 이번 주부터 미용실이 다시 문을 연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슈퍼, 병원, 약국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의 문이 닫혔다. 그중에서 미용실을 못 간 것이 독일 사람들에게 제일 불편하고 힘든 것 중에 하나였나 보다.

드디어 미용실 다시 연다는 뉴스와 기사들이 연일 쏟아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마스크 쓰고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래서 지금은 독일에서 미용실 예약 하기가 병원 예약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노라 하는 사람 우리 집에도 하나 있다. 남편은 짧은 머리를 선호한다. 일명 스포츠머리. 마치 운동선수나 군인처럼 뒤와 옆을 짧게 바짝 자르고 앞머리만 조금 남겨 놓은 듯한 그런 머리말이다.

남편은 지금 보다 쪼끔? 더 젊었던 연애 시절에도 그 머리 스타일 만을 고수했었다. 언제가 한결같은 남편의 헤어스타일이 궁금했던 나는 다른 스타일로 머리를 잘라 보고 싶은 적은 없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머리를 자르면 다시 자를 때까지 기왕이면 오래 버틸 수 있는 스타일이 최고라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독일 미용실은 한국에 비해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비용이 비쌌고, 한국 미용실에서 같이 "연예인 누구처럼 머리 해주세요" 하며 그때마다 유행하는 핫한 헤어스타일을 따로 주문한 것도 아닌데 어디를 가나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부여받을 수 있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다음 주 까지는 미용실 예약이 꽉 차서 어려울 것 같다며 두 눈을 깜박이며 애교스레 물었다.

"내가 한번 살짝 봐줄까? 그리고 미용실 가서 좀 더 다듬으면 되잖아?"라고

그랬더니 남편이 마치 짬뽕 국물 마시다 고추기름 목에 걸린 사람처럼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잽싸게 대답했다  "아니야 기다릴 수 있어!"

쳇, 순간... 독일에서 아이 셋 낳고 키우며 숙달된 야매? 미용사 경력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쩌겠는가 남편은 아직 그날 그 사건을 잊지 못하겠다는데.....


남편의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날은 남편이 시내 백화점에서 샐프 헤어컷 용품 풀세트를 사 가지고 온 날이었다.

이벤트 세일 품목이었던지 대박 세일이어서 들고 왔다는 그 풀세트 안에는 셀프로 머리를 자를 수 있는 크기별 헤어용 가위, 빗, 그리고 이발기 일명 바리깡,헤어용 보자기 등 집에서 샐프로 헤어컷을 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가위 하나 값 정도를 들였다고 했다. 그 착한 가격에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뿌듯해하던 남편은 내 손에 은색의 이발기를 마치 학교 운동회에서 릴레이 뛰던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배턴 터치하며 쥐어 주듯 결연한 모습으로 쥐어 주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이 걸로 내 머리를 한번 밀어 봐"


난생처음 이발기를 손에 든 것도 놀라운데 밀어 달라니? 나를 뭘 믿고.....

나는 소리마저 요란하던 이발기를 들고 벌벌 떨며 한 번도 안 해 봐서 못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이던 내게 다정스레 이야기했다.

"괜찮아, 너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편이잖아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야, 기계 켜고 머리 옆이랑 뒤랑 계속 파기만 하면 돼!"

나는 그런 남편의 믿음을 저 벌릴 수 없어 까짓 거 눈 딱 감고 한번 해보기로 했다. "처음이 어려운 거지 뭐 하면 하는 거지, 별거 있겠어!" 하며.... 남편이 시킨 대로 소리도 웅장한 기계 씩씩하게 켜고 냅다 팠다 여기저기 골고루... 그런데... 너무 파이팅이 넘쳤던지.. 남편의 까만 머리칼이 하나둘 바닥에 쌓이며 어느 순간 듬성듬성 하얗게 줄이 보이는 남편의 뒤통수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요란 떨며 붕붕 거리던 기계소리가 멈춰 서자 남편은 기대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다 된 거야?"당황한 나는 잠깐만 하며 거울을 가져오겠다는 핑계로 시간을 벌며 고민했다.

이대로 영구 땡칠이 같은 남편의 뒷모습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야 할까? 아니면 미친 척하고 남편 몰래 검은색 매직으로 구멍 난 머리에 칠을 해서 위장전술을 꾀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나는 어차피 벌어진 일 양심 있게 전자를 택하기로 했다. 농사짓는 시골 파종시기에 밭고랑 파이듯 하얗게 길이 난 본인의 뒤통수를 거울로 확인한 남편은 우와! 이게 뭐야! 하는 충격의 함성을 지르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얼른 가서 이 모 씨 모셔와!" 그랬다... 그 시절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던 우리의 친절한 이웃 이 모 씨는 군대에서 보직이 깍사 출신이라 동네 유학생 들의 머리를 종종 구제해 주고는 했었다.

남편의 엉망이 되어 버린 뒷머리를 보고 당황하던 이 모 씨의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헤헤 이.. 누가 멀쩡한 머리를 이래 확 조져 놓았능교? 이래가 밖에는 나갈 수 있겠나.. 마"


그날 우리의 감사한 지인 이 모 씨가 하던 일도 팽개치고 달려와 그의 말에 의하면 조져진 남편의 머리를 고군분투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남편은 한동안 밖을 못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 남편은 다시는 내게 머리를 맡기지 않는다.

이발기 들고 생쇼?를 하던 그때의 마눌은 이제는 야매 미용 기술이 세월 따라 일취월장해 딸내미 머리 파마도 웬만한 다듬는 컷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내건만 남편에게는 그 어마무시? 했던 마눌 첫 도전이 너무도 선명히 기억에 남았나 보다.


같은 기숙사에 한국 유학생 가정이 여럿 살고 있었던 그 시절, 어느 집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는지 멸치를 볶고 있는지 서로 훤히 다 알고 간장 고추장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있다가도 어느 집에서든 빌려다 쓸 수 있던 우리의 정스럽던 유학생 시절의 일이다.

그때 이 집 저 집 문 열리면 쪼르르 쪼르르 함께 어울려 다니며 놀던 동네 꼬맹 이들은 이제 대학생들이 되었고 더러는 직장인이 되었다.

노느라 집에 올 생각 없는 아이들 데리러 나갔다가 동네 한가운데서 한참 수다 떨고 들어 와서는 만들어 놓은 저녁 반찬 서로 나눠 먹고 했던 기숙사가 문득 그리워진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리운 것은 기숙사가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했던 그때 그 사람들과의 추억이라는 것을...

오래된 정겨운 추억으로 조금 느슨해 진듯 보이는 남편에게 나는 은근히 진심을 담아 다시 물었다.

"울 남편 머리에 핀 꽂아도 되게 생겼는데 이참에 내가 살짝 다듬어 보면 어떨까? 음?" 제법 믿음직스러워진 마눌의 달콤한 제안에도 남편은 일관되고 단단하게 대답했다.

"아냐 어차피 마스크 쓰면 머리가 긴지 짧은 지도 표 안나 2주 더 기다릴 수 있어!"

덴쟝... 안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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