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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25. 2020

한국 엄마나 독일 엄마나....


햇빛이 구석구석 퍼지기 위해 기지개 라도 켜려는 듯 군데군데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이른 아침.

이 고요함을 깨우려 작은 새들은 부지런히 나무 사이를 오간다. 초록을 감고 있는 나무 들에서 연두색 물감이 흘러내려올 것만 같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수박 냄새를 닮은 풀내음이 달고 시원하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남편과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섰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문득, 남편이 며칠 전 브런치에 올린 글을 자기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남편은 내 글을 제일 먼저 접하는 넘버원 구독자이자 제목이 확 당기지 않는데, 이문장은 무슨 소리 인지 이해가 잘 안 되네.. 등의 코멘트를 즐겨하는 집구석 평론가 송곳 김 선생 이시다.

그러나 아직 브런치 로그인이 안되어 있어 직접 글을 공유할 수는 없다.


보통 남편이 카톡으로 글을 공유해주기를 원할 때면 누군가 에게 글을 보내고 싶을 때 다.

그래서 "누구 보내 주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음 어머니 보내 드리게." 한다.


시어머니 께라......

우리가 독일에서 지내는 일상의 모습 또는 요리 강습, 병원 이야기 등을 생생 하게 보시라고 종종 내 글을 어머니 카톡으로 보내 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글은 왠지 어머니가 읽어 보시고 그리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그래서 "여보야 이번 글은 안 보내 드려도 될 것 같은데"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니 왜? 내가 하루 종일 요리한 내용 나오는데 아들 이야기 나오면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는 거다.

나는 "그러니까 안 보내 드리는 게 났겠다는 거지, 자 생각해봐 울 큰아들이 공휴일에 지여친 생일이라고 하루 종일 요리만 했다 하면 난 그렇게 재밌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아들의 여자 친구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아들의 여친을 만났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때의 일이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서로 간에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해서 말은 그리 잘 통하지 않았지만 인상이 선했다. 거기다가 한식을 좋아해서 김치찌개는 국물채 들고 마시는 수준이고 불고기 나 비빔밥을 해주면 사진 찍어 대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한 며칠 같이 지내고 보니 우리 아들이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아들에게는 우리 집이고 그 아이 에게는 처음 오는 남자 친구의 집이니 편한 정도가 같을 수야 없을 것이다. 아들이 이래 저래 챙겨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격이 어찌나 느긋 하신지... 우리 아들도 그렇게 빠리 빠리한 스타일은 아닌데  태평한 울 아들 쩜쩌먹고 있었다.

아들이, 12시 1시까지 깨지 않고 있는 여자 친구 기다리느라 아침도 안 먹고 쫄쫄 굶고 있어도 지가 좋아서 저러는 거니 그러려니 했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면....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다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간다기에 빨래할 것 있으면 미리 하라고 했다.

빨래를 하지 않고 있길래 할 게 없나 보다 했다. 그런데, 여행 간다는 전날 가방 싸고 준비해야 할 시간에 영화 인지 미니시리즈 인지를 보기 시작하더니 그거마저 보고 빨래한다고 버티다 결국 오밤중 돼서 아들이 대신 빨래해줬다.

겨울이라 금세 마르지 않을 것 같다고 벽난로 앞에 의자들 쭈 루미 가져다 여기저기 빨래를 펴서 널었다가 다시 빨래 걸이에 가져다 너는 것도 아들이 했다.

뭐,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거고 좋아하는데 그깟 빨래 너는 게 무에 대수라고 해줄 수 있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미뤄 둔 체  고이고 앉아 영화 보고 있는 여자 친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그리 속이 편치 만은 않더라는 거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천하태평 늘어져 있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답답한 사람이 줄곧 움직이게 되어 있다.

물론, 해야 될 일이 생기면 누구든 빠른 사람이 하고 차분하고 천천히 인 사람은 또 그 나름의 장점으로 다른 것을 하면 되지 않겠나 라고 남의 집 아들 에게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내 아들 일이 되고 나면 보는 내내 이런 모지리, 저런 쪼다 낳으려고 내가 진통 올 때 미역국 손수 끓여 놓고 병원 같었지... 소리를 참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한국 엄마나 독일 엄마나...


아들이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처음 여자 친구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이번 여자 친구는 이대로 쭉 만나다 보면 혹시 결혼한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들이 그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딸내미도 그랬다 "오빠가 여자 친구 되게 좋아하나 봐"라고....


어쨌든 아들의 여자 친구가 우리 집에 크리스마스 때 와서 연말 같이 보내고 새해 돼서 갔는데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쿨하게 지내려 노력했다. 순간순간 욱 하는 것이 올라와도 참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베리 친절하게.... 물론 오래간만에 하는 영어가 몸살을 하느라 웃음으로 때우는 것 외에 할 말도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열흘간에 쌓인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꽤 컸나 보다.

친구 들과 함께 조깅하던 날.. 나도 모르게 아들과 여자 친구에 관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전자동으로 따다다 늘어놓고 있었다. 뛰는 게 힘들어서 인지 이야기하다 보니 빡쳐서 인지 두 가지 합쳐서였는지 숨을 헐떡 거리 면서 말이다.

서로 집도 오가는 친한 친구들이라 더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독일 친구 들과 폭풍 수다를 떨다 보면 한국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거만큼 즐겁고 시원할 때가 있다.

물론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다르니 말 안 해도 서로 이해해 주고 별것 아닌 것으로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그리운 한국의 친구들 과는 다르다. 그러나 멀리 산지가 오래되다 보니 어느 때는 여기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훨씬 잘 알고 있는 이곳 친구들이 더 편안할 때가 있다.


어쨌거나 신나게 쏟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베로니카가 내게 이야기했다. 독일말로 이야기했지만 우리식으로 의역하자면 딱 요렇게.."나는 뭐 우리 며느리가 처음부터 아주 흡족해서 앗싸 좋아 이런 줄 아냐? 내 아들이 마누라 공부 뒷바라지에 남의 아이들 까지... 쩔쩔매는 거 보면 나도 마음 안 좋아"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베로니카의 며느리는 아이 둘 딸린 돌싱이다 돌싱 이 총각과 결혼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며느리가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고 다니던 직장을 떼려 치웠다. 그리고 그 공부는 사립학교를 다녀야 해서 학비가 비싸다.

그래서 아들이 돈 벌어서 며느리 학비도 대주고 공부하라고 주말에 아이들까지 돌보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한참 며느리 이야기를 하던 베로니카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말이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한 가지만 봐 딱 한 가지, 너네 큰애가 여자 친구와 있을 때 얼굴이 반짝이고 있는지 그거 하나 면 충분해 "라고 말이다.그래,얼굴에서 그냥 광 나더라..데엔쟝...


아이들이 자라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드는 마음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이만큼이나 키웠구나 그작던 아이가 이제 이렇게 컸구나 하는 뿌듯함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이유 모를 서운함. 단지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달라 그 표현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엄마든, 독일 엄마든 엄마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진짜?, 저런, 등의 추임새만 넣고 있던 엘케가 말했다.

"그러게 어쩐지 딸내미하고 며느리는 달라, 피가 달라 그런가?"

엘케는 아이들이 일찍 시집 장가가서 다 따로 살고 있고 사별한 남편과 살던 큰집에 덩그러니 혼자 산다.지난 몇 년간 딸내미네가 와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는 했는데... 이번 에는 딸네가 휴가를 가서 그럴 수 없었다 했다. 해서 며느리가 자기네 집에 크리스마스에 오겠냐고 한번 묻지도 않고 지나간 것이 많이 섭섭했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뛰면서 (남들 눈에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헛갈렸겠지만) 독일 시엄마 2명과 한국 예비 시엄마 1명이 성토 대회라도 열린 듯이 소소한 뒷담화와 서운함을 마주 오는 바람에 날려 보냈다.

아들이 여친을 데려오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


친구들과의 만남과 수다가 그리운 요즘, 예전 생각에 빠져 슬며시 웃음 짓고 있는 마눌에게

"뭐 생각해? 그거 엄마 보내 드리면 재밌어하지 않으실까?"라는 멋모르는 소리를 날리는 송곳 김 선생...

입장 바꿔 생각해봐 라는 말을 우리는 살면서 자주 쓴다. 그런데 딱 그 입장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 하다. 그래서 요즘 예비 시엄니 대열에 끼게 된 나는 우리 시엄니 마음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우리 어머니 살짝 삐지실만했네.. 그래 그때는 섭섭하셨겠다 등등...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도 그 언젠가는 우리 시엄니처럼 며느리를 맞을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아무리 봐도 나는 우리 시어머니처럼 쿨한 시어머니는 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생각보다 밴댕이 소갈딱지에 질투심이 많다는 것을 아들의 여친을 만나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시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해 드리는 며느리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금 걸어온 길이 오르막 길이라 숨을 고르며 그럼 요 글은 어머니께 카톡으로 보내 드릴까? 하는 얄팍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눈으로 묻는다.

"앞쪽에 갈림길 나왔으,워디로 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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