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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0. 2018

 프롤로그



태어나 자란 땅 한국을 떠나 나를 향해 눈물지으며 손 흔들던 부모, 형제, 친구 들을 김포 공항에 나란히 세워 두고 12시간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독일에서 살아온 지 어느덧 햇수로 25년이 되었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개인적 오르던 국가 적으로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옛날 말도 문화도 음식도 다른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그 날에 비해 세상은 여러 면에서 달라져 있다.

그것은 비단 첨단 과학의 발전, 건물과 시스템의 변모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와 생각, 가치관 등이 세대와 시대가 바뀐 것만큼이나 변해 있다.


그리움을 담아 눌러쓴 손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는 독일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한국을 아는 사람들은 남쪽? 북쪽?을 먼저 물었고 그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은 베트남이나 또는 태국 옆에 어디쯤 에 있는 나라 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서 왔어요?"라는 질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가 그럼 한국에는 눈이 오나요? 아니면 더운 나라인 가요? 등의 질문이었다.

그만큼 그 당시 독일 사람들 에게 한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시아의 어디쯤에 있는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은 놀랄 만큼 높아졌고 독일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졌다.

독일의 전자상가에 가면 한국의 핸디, 노트북, Tv 등의 전자 제품들이 메인 코너에 설치되어 있고

동네를 오가다 보면 한국 자동차 들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 부터 프랑크푸르트나 베를린처럼 큰 도시에는 한국식당뿐만 아니라 한국 식재료들을 파는 한국식품점 들 이 있었지만 작은 도시들에는 한 달에 한두 번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는 기숙사 앞으로 한국 먹거리 들을 싣고 오는 트럭이 있었다.

하얀 입김으로 얼은 두 손 호호 불며 추운 겨울날 두부 한모 콩나물 한 봉지를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도 안 담아본 김장을 해서 기숙사 앞마당에 묻어 두고 겨우내 먹었던 그때는 그렇게 한국에서는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살 수 있던 두부, 콩나물 도 독일에서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독일의 웬만한 도시에서는 한국 사람이 하는 한국 식품점이 아닌 중국 사람이 하는 아시아 식품점에서도 요즘 한국에 새로 나온 라면, 등 수많은 한국식품 들을 만날 수 있고 독일의 대형 마트에서도 간장, 고추장, 김 등의  한국 식품을 구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다양한 한국식품을 집에 앉아 택배로 받을 수도 있먹고살기 좋아진 세상이 되었다.


그뿐인가? 인터넷 덕분에 케이팝, 케이 드라마, 케이 영화를 꿰고 있는 독일의 젊은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 사람인 나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엑소... 의 멤버들 이름도 모두 외우고 있는 청소년 들도 많다.


그 한국문화를 접한 독일의 젊은이들 중에는 우리의 떡볶이나 김밥 요리법 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직접 만들어 보고 오리지널 맛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왔노라 한국요리강습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독일 사람들과 함께 한국요리를 만든 지 10년이 넘어간다.

강습 안에서 독일 사람들은 한국음식의 깊은 맛과 당양한 조리법을 경험하고 한국의 정을 나누는 밥상 문화를 체험하며 그를 통해 한국을 만난다.

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한 한국음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고는 한다.

한국 음식 세계화 가능할까?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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