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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26. 2019

남편이 부엌칼을 들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갑자기 목이 잠겨 오기 시작했다.

'흠흠  아아 어? 이거 조짐이 좋지 않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엄마 목소리가 이상해 엄마 어디 아파?" 한다.

에고 이거 또 목감기 오는 거 아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말 내내 기침을 해대며 목소리가 콱 잠겨 버렸다.

일이 년 동안 몸살감기 한번 앓지 않고 넘어간 적도 많았건만...

올해 들어 도대체 몇 번째 감기야 것도 종류 다양하게.. 싶어서 쯧.. 소리가 절로 나고 짜증이 일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나 싶다.


환절기가 되면 길을 지나다니다가도 버스 나 전차를 타도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기침하고 코를 훌쩍이는 감기 환자 들로 넘쳐 난다.

그럴 때마다 바로 옆에서 미친 듯이 기침을 해 대거나 코를 팽팽 풀어 대는 사람이 있으면 슬그머니 자리 이동을 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때마다 유행하고 있는 감기를 종류대로 매일 대놓고 만나지 않은가? 그것도 사전 거리에서...

아무리 병원 진료실과 대기실 접수처 할 것 없이 추운 날 문 활짝 열어젖히고 환기를 시켜도 여기, 저기 심지어 문고리마다 돌아가며 소독을 해대고 있어도 매일 긴 시간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또 별수 없이 감기에 걸리고야 말았다.

감기야 며칠 푹 쉬고 나면 나아지겠지 싶지만 당장 우리 병원은 대체인원이 없어 맘 놓고 며칠 쉴 형편이 못된다 거기다가 내일모레 저녁에 잡혀 있는 한국요리 강습도 나를 기다린다.

진퇴양난이다.



남편과 가정의 병원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요리강습을 줄 일대로 줄였지만 이번 강습은 미루거나 취소할 수가 다.

그도 그럴 것이 일 년 중 독일에서 가장 바쁜 시즌인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두가 스케줄이 빡빡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늦게 강습 신청을 한 부부가 있었는데 정원이 16명인 강습에 16번 17번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는 거다. 그래서 지난주에 문화센터 마케팅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 부부를 나눠서 강습에 오라 하기가 그런데 한 명 더 받아 줄 수 있겠느냐고...

뭐.. 그래,어느 때는 직장 단체팀이라 20명이 넘게도 강습 했었는데 17명이 대수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이래저래 인원은 늘려 놓고 갑자기 서로 바쁜 시즌에 아프다고 다른 날로 강습을 미루자 하면 수강생 17명에 강사인 나까지 18명이 모두 맞는 날짜를 언제 어떻게 다시 잡는다 말인가? 또, 만약 강습을 취소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강습 횟수를 확 줄여서 몇 개월째 한국요리 강습 날만 기다렸 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푹 잠긴 목소리만큼 마음도 무거워지던 저녁이었다.


마치 만화 영화 미키 마우스에 등장하는 오리가 끽끽 거리며 뭐라 뭐라 해대는 것처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끽끽 쥐어짜며 막내에게 핸디 그만 하고 이제 숙제 좀 하라고 막 잔소리를 하려고 하던 때였다.

남편이 부엌을 서성인다. 그것도 부엌칼을 들고...



평소 남편은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 줄 아는 요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혼자 자취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김밥, 떡볶이 등 몇 가지는 쉽게 해낸다. 그마저도 요리하는 마눌을 얻은 덕분에 손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그런 마눌이 아프거나 바쁘다고 남편이 대신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피자, 케밥, 중국식 볶음밥 등을 사서 잘 배달 해 준다."오늘은 점심도 내가저녁도 내가 해결해 줬네!" 요러면서...   

물론 요리 외에 설거지 라던가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라던가 하지 않으면 바로 표가 나버리집안일들을 남편은 말 없이 알아서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처럼 남편이 과일 깎을 용도로 과도를  것도 아니고 요리를 위한 부엌칼을 직접 드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저녁도 먹었구먼 남편은 대체 부엌칼을 들고 하려는 걸까?

궁금해하며 소파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남편을 훔쳐보던 나는 곧이어 솔솔 풍겨 오는 향으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강차... 목이 콱 잠겨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마누라를 위해 남편은 그 유명한 미슐랭 몇 개쯤 달은 듯한 셰프 포스로 심혈을 기울여 생강을 마치 깍두기 썰듯 숭덩숭덩 썰고 있었던 거다 커다란 부엌칼 들고....

거기에 배를 썰어 넣고 레몬을 넣어 차를 끓여서 내게 들고 왔다. 원샷하고 얼른 목감기 나으라며...

뜨겁고 매운걸 어떻게 한 번에 마시냐며 눈을 흘기면 서도 나는 후후 불어서 남편이 끓여준 생강차를 마셨다.

간질간질하던 건 목이었는데 마음에 증상이 따라 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친정 엄마는 늘 생강차를 끓이셨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붇고 생강에 대추 넣고 귤껍질 그리고 파에 하얀 뿌리까지 들어가면 엄마의 감기 차가 끓어오르기 시작 한다.

우리는 감기 예방 차원에서 또는 걸린 감기 빨리 나으라고 엄마의 뜨끈한 생강차를 마셔 야만 했다.

그때 우리의 어린 입맛에는 엄마의 생강차에서 나던 생강의 알싸하고 매운맛과 노란 귤껍질에서 우러난 시큼 털털이 한 맛 거기에 하얀 파뿌리에서 나온 짐짐한 맛 그리고 그 모든 맛을 어우르기에는 부족한 대추의 단맛이 합쳐져 감기약 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동생 들과 서로 조금이라도 작은 잔에 담긴 생강차를 차지하기 위해 엄마 몰래 눈치 작전을 펼치 고는 했는데...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그 생강차를 줄기차게 마신 겨울은 감기 걸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 날이 더 많았고 걸려도 금세 나았다는 거다.

아마도 면역력을 증강시킨 다는 생강에 한 올 한 올 파뿌리에 묻은 추운날 찬물에 씻어내며 담은 엄마의 정성과 우리를 향한 애정이 듬뿍 들어간 생강차를 겨우내 충분히 마셨기 때문 이리라.


남편의 생강차는 엄마의 생강차 보다 훨씬 덜 맵다 독일에 나와 있는 생강은 크기도 한국 생강보다 크고 맛도 덜 맵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타민 C 덩어리라는 레몬을 듬뿍 넣어 중간에 건져 내었다는

아무리 꿀을 넣어도 그 신맛이 막힌 코도 그냥 한방에 뻥 뚫어 주게 시다.

생강 껍질채 마구 썰어 담고 과일 접시에서 그대로 넣은 듯 크게 썰어 넣은 배 와 보기만 해도 눈이 감기게 신맛이 강한 레몬 그 안에 남편의 사랑이 가득 들어간 생강차를 하루 종일 마셨다

아마도 내일쯤이면... 목소리가 편안하게 나올 듯하다.

그 겨울 엄마의 생강차를 마시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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