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했던 것 과 실제의 맛 은 달랐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였다.
내 기억에 한국에서 가장 자주 마시던 커피는 지하철 역 안에 배치되어 있던 자판기 커피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셨던 것 같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묽고 까만 보리차보다 좀 더 진한 색이 나는 커피...
그때의 나는 커피 맛을 제대로 알고 마셨다기보다 커피의 향이 좋아서 마셨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쩐지 하얗고 몽글몽글한 우유를 얹으면 커피의 냄새가 우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고 입안에 우유맛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아 라테는 입에 대지 않았다.
누가 그렇다고 이야기해 준 것도 마셔본 것도 아닌데 라테를 본 내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언제나 까만 커피를 맛으로 가 아닌 향으로 마시고는 했는데..
독일에 와서 커피를 한입 머금은 순간.... 얼마나 쓰던지 "이 동네는 도대체 커피를 무슨 보약 다리듯 다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강렬한 씁쓸함에 놀라 도저히 그냥은 커피를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였다 내가 라테 마끼아또를 마시게 된 것은....
그런데, 막상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셔보니 하얀 뭉게구름 같은 우유 거품에 담긴 커피는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텁텁하지도 않았고 입에 감도는 몽글몽글한 우유의 감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내 취향에 맞았다.
요샛말로 취향 저격. 그 후로 나는 언제나 라테 마끼아또를 마신다.
어제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라테 한잔 마시러 우리의 아지트 같은 빵가게로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 빵가게 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데 큰길을 건너 돌아가는 길 보다
작은 샛길을 지나 가면 5분 정도 빨리 갈 수가 있다. 말하자면 지름길 인 셈이다.
길을 건너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며...
가는 길에 우체국에서 보내야 할 우편물 들은 잘 챙겼던가? 아까 불은 제대로 끄고 나왔지?
현관문 도 잠그고 열쇠도 챙기고 말이야.. 를 구시렁대며 후다닥 나오느라 일일이 챙기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점검하며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꽤나 커 보이는 남정네가 골목 안에 주차되어 있는 차 들 사이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덩치만큼 커다란 외투 안에 품고 있는 무언가를 꺼낼 듯 말 듯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하는 생각으로 멈춰 서서 그 남자의 동태를 두 눈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그때의 그 혹시는 만약 저 줄지어 서 있는 차 중에 하나가 자기 것이라면 저 남자는 왜 세워진 자기차 앞에서 저렇게 안절부절 몸을 수그렸다 폈다 하며 전방을 주시하는가? 갑자기 쥐라도 났나? 그리고 엉거주춤 서서 품 안에 뭔가를 왜 저렇게 수시로 확인 하나? 도대체 외투 안에는 뭘 감추고 있길래?
나는 생각할수록 수상쩍기 그지없는 모습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지? 5분을 아껴 보자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 조차 없고 앞에 있는 저 남자는 아무래도 수상해 보인다 어쩌지?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아니지, 모습이 좀 이상 해 보인다고 해서 이 벌건 대낮에 무슨 일이야 있겠어? 어 근데 저 남자 수염도 길고 떡대?도 있고 코에 피어싱도 탬버린이네... 저 사람 설마... 저 외투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망치 나 뭐 도끼 이런 거고.. 작전을 하고 있는 거면.?그 짧은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복잡해진 머리는 급기야 얼마 전 우리 옆집 크루거 씨네 가족이 아침부터 모두 길에 나와 서서 망연자실 서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날 길에 세워둔 옆집 차의 창문을 밤새 어느 도둑님?이 가루가 나게 깨 부쉬고 차 안의 물건들을 털어 갔던 그 일련의 사건들을...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런 유사 범죄의 현장에 딱 서 있는 거고 말로만 듣던 목. 격. 자 가 바로 나 라면....
이 길을 마저 지나가다 저 사람 눈에 띄어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실려 가서 묻히는 거 아니야? 식은땀 한줄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나는 확인되지도 않은 가설을 들고.. 그동안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던 세상의 온갖 험한 뉴스와 사건들 그리고 영화 들을 믹스 해서 머릿속으로 빠르게 한편의 막장 스릴러를 써대고 있었다. 오도 가도 않은 체.. 길바닥에 오도카니 서서...
그런...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골목길 어귀에 또각또각 하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의심해 마지않던 남자는 허리를 더 숙이더니 구두 소리를 내며 점점 다가오는 작고 귀여운 여자를 옆에서 낚아채듯 안고 품에서 꽃다발을 내어 놓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 남정네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집 근처에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꽃다발을 품은체 잠복근무하는 형사처럼 (아까는 분명 범죄자로 보고 있었으면서....) 모습을 감추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놀라 지도 않고 그럴줄 알았다는듯 환하게 웃음 짓는 여자 친구와 (어쩌면 골목 어귀에서 숨어 있는 그러나 가려 지지 않는 남자 친구의 옆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멋쩍은 듯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한 웃음은 보는 사람마저 달달 해지는 로맨틱 영화의 엔딩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순간 내 머리를 한 줄기에 차가운 바람처럼 강타하는 것이 있었으니..
아뿔싸...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이였지만 나는 남의 집 멀쩡한 청년을 엉뚱한 데 취업? 시키며 혼자되지도 않는 상상을 해가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서 말이다.
단지 그 청년이 수염과 머리가 덥수룩하고 코와 입근처를 피어싱으로 수놓은 커다란 체격에 제법 사나워 보이는 인상으로 다른 날 골목길에서 스쳐지나가며 늘 만나 볼 수 있던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겉모습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 을..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참 많이 경험했음에도 불구 하고 나는 남의 하트 뿅뿅 흩날리는 이벤트 현장을 라이브로 관람 하며
이런 이런 모습의 사람은 이럴 거야 라고 미리 단정 지어 놓고 사람을 겉모습 으로 판단 하려는 내안의 선입견과 정면 으로 마주 했다.
달콤 쌉싸름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