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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03. 2018

비타민 같은 커피 한잔


독일의 겨울이라 하면....

동이 터도 아직은 주변이 어둑어둑할 때가 많은 겨울 아침 7시 15분 이면 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직장으로 식구대로 각자의 일터?로 출발 한다.

비타민이 많이 필요한 남편은 과일과 치즈 샌드위치, 다이어트 중이신 딸내미는 저지방 요구르트에 건과류 한참 크느라 뭐든 잘 드시는 막내는 소시지 샌드위치와 채소, 과일 이렇게 식구대로 각각의 빵 도시락을 눈썹이 휘날리게 싸서 보내고 나면 나 또한 수업 준비다 문화센터 미팅이다 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러나 오늘은 8시 15분에 산부인과 정기검사 가 예약되어 있어 오전 중의 모든 일정을 다른 날 또는 오후로 미뤄 놓고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독일의 겨울은 한국처럼 살을 에이게 추운 영하의 날씨가 드물지만 머리 위의 회색 하늘이 온몸을 누르는듯한 어둡고 눅눅하고 으슬으슬하게 추운 날씨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햇빛 구경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으니 온도는 그리 낮지 않아도 체감온도는 습하춥다. 바람이 불면 그 찬기가 옷 속을 파고들다 뼛속까지 스며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은 땡잡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부터 햇빛이 쏟아진다.

긴긴 겨울 햇빛 인심이 야박한 동네에서 살다 보니 코끝에 귓가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따사로운 한줄기 햇빛에도 길가다 동전 주은 것 마냥 황재한 기분이 되고는 한다.

이렇게 풍선이 부풀듯 이유 없이 기분이 업 되는 날에는 한참을 걷다가 예쁜 카페 창가에 앉아 햇빛 그대로 받으며 라테 한잔 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진다.


독일의 산부인과 개인 병원 환자 대기실 이에요.

독일 개인 병원 들은 요...

병원까지 트렘(도심 위를 가로지르는 전차)이나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날이 좋아 걷기로 한다.

독일의 개인 병원 들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들이 많은데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주택가 중에서도 예쁜 곳에 위치해서 주변 길이 아기자기하다. 이렇게 씨가 좋고 시간이 넉넉할 때면 골목골목을 누벼며 가는 길이  심심치 않다.


전차가 다니는 큰길과 조롱조롱한 골목길 들을 지나 예전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바로 집 앞에 있던 정아네 슈퍼처럼 요것조것 있을 것 다 있는 작은 유기농 마트를 거쳐 아직 봄이 오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그새 나와 있는 프리멜 들과 수선화를 잔뜩 내어 놓은 꽃집을 지나면 다니는 산부인과 병원이 다 와 간다.

한국에서는 무슨 무슨 의원이라 하고 병원 간판들이 건물에 크게 걸려 있어 멀리서도 개인 병원들을 찾아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독일의 개인 병원들은 간판을 크게 내다 걸지 않는다 건물 앞에 또는 집 앞에(가정집을 개조한 개인 병원들이 많다.) 우편함 크기의 작은 문패들이 걸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잠깐 다른 생각 하다 보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나처럼 갔던 길 뒤집어 가면 새로운 길치들은 더군다나.....


근처 빵집에서 라테 한잔을 사서 들고 병원으로 올라가니 이른 시간이라 환자 대기실 안이 텅 비어 있다.

매번 받는 산부인과 정기검사 지만 그때마다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서 제일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했더니 다른 때에 비해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후딱 하니 끝났다. 여러모로 기분 좋아지는 날이다.


햇살 조아 좋은 날


갱년기 증상에 도움이 된다는 호르몬 제 처방전을 받아 들고 길을 나서니 아까보다 햇살은 더 넓게 퍼지고 있다.

포근함을 등에 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서점...

신선함을 듬뿍 안은 토마토, 오이... 들이 조로 미 나와 있는 채소가게... 그리고 새벽이슬을 머금은 들꽃처럼 물기를 가득 활짝 핀 꽃들이 가는 걸음을 멈춰 서게 하는 꽃집...

그렇게 모퉁이 하나, 둘 돌 때마다 새로운 아침을 선사한다.

분명 아까도 만났던 길들은 구석구석 퍼져 가는 햇살을 받아 다른 모습을 띤다.


환한 햇빛 아래 달라져 보이는 익숙한 길들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려니 마치 낯선 곳으로
나 홀로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이 설레는 마음으로 몽글몽글한 라테 한잔을 마셔 줘야 할 텐데... 어디를 가면 햇빛 가득

받으며 커피 한잔 할 수 있을까?

카셀의 공대 학생 식당 안 카페 테리아 에요.

커피 한잔 하실 래요?

어디 가서 나 홀로 커피 한잔 우아? 하게 마셔주나 궁리하며 떠오르던 동네 카페들....

고풍스러운 팔걸이의자가 마치 궁전을 연상케 하는 카페 틸레는 노란 실내조명은 은은하지만 햇살을 품기에는 창문이 너무 작다.

거기에 비해 마치 뉴요커들이 출근 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거나 신문 칼럼을 펼쳐 들고

커피를 마실 것 같은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 솔라노 는 창가 자리 들의 방향이 서향이라 한낮이 되기 전에는 햇빛 쏟아지는 자리는 없다.

그리고 싸고 맛난 점심 메뉴로 유명한 카페 레스토랑 아인 하이트는 햇빛 받으며 커피 향을 음미 하기에는 주방에서 풍겨져 나오는 음식 냄새로 가득할 시간이다.


머릿속으로 근처에 제법 괜찮은 카페 들을 주르륵 홀터 대다가 빙고하고 떠오른 곳이 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카셀 대학의 학생 식당 카페 테리아...

독일의 대학 건물들은 보통 한국의 대학 캠퍼스처럼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단과대 별로 나뉘어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카셀의 대학도 이곳저곳에서 대학 건물들과 학생 식당, 도서관 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집 바로 근처카셀 공대 건물들이 들어차 있는데 도서관, 학생식당, 카페테리아 모두 편안하게 언제든 동네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종종 우리 아이들 만한 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어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물론 이젠 학생요금이 아니라 방문자 요금으로....

그렇게 푸릇푸릇한 아이들 틈에 끼여 있다 보면 우리도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달려가고 있던 그 언젠가 와 만나 지기도 하고 희끗희끗한 새치들을 브리지 인양 달고 입가에 여유 있는 웃음을 베어 물고 있는 지금의 우리를 마주 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처럼 해가 환하게 비치는 날 학생 식당 카페테리아 창가 자리에 앉으면 한 겹 통유리를 사이로 보이는 야외 의자 위로 아직은 새잎이 돋지 않아 텅 빈 나무들 위로 촘촘히 부서지듯 내려앉는 햇살과 빈 나뭇가지 위에서 일광욕이라도 하듯 한가로이 앉아 지저귀는 작은 새를 볼 수 있다. 그 길을 지나치는 대학생들의 활기차고 싱그러운 모습 들은  이고 말이다.

비싼 햇빛 한가득 말랑 하게 받으며 나는 누구에겐지 모를 혼잣말을 한다.

커피 한잔 하실 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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