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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27. 2018

가끔은 뜻하지 않게....


요즘은...

어찌나 정신없이 살고 있는지 언제나 꼼꼼히 적어오던 다이어리도 종종 글을 올리던 브런치도 거의 파업?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오십이 다되어 다시 학생이 되어 안 돌아가는 머리와 딱딱한 의자에 한시간만 앉아 있어도 아우성치는 어깨,허리를 부여잡고 학교 다니는 것도 버거운데 늦둥이? 나리(우리 집 반려견) 까지 집에 들여 할 일이 배가 되고 나니 차분히 앉아 뭔가를 적고 있을 시간이 좀처럼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새벽 5시 30분 에 깨어

6시에 남편 출근시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 6시 30분부터 차례대로 깨워 빵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나니 식구들이 나갈 때마다 정원으로 뛰어 나가  직장으로 학교로 향하는 식구들 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손대신 꼬리 흔들고 있던 우리 집 나리가 예쁜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저도 밖에 나가고 싶다고...

밖은 회색빛 하늘에 바람도 불고 빗방울도 하나둘 떨어져 내리지만 따뜻한 털옷? 입은 나리에게는

산책 하기 그만인 날씨다.


얇게 입고도 더워서 헉헉대던 여름이 언제 있었나 싶게 모자 달린 티셔츠에 비옷까지 걸쳐 입고 발걸음도 가쁜해진 나리와 함께 바람에 굴러가는 나뭇잎 따라 뛰기도 하고 지나가던 동네 고양이와 한동안 서서 째려보며 서로 기싸움도 하고 이 풀밭 저 풀밭 사이에 떨구어 놓고 간 다른 친구들의 흔적을 좇아 수색대 저리 가라로 코를 벌름 대며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니 8시가 넘었다.


머리 묶을 시간도 없이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한 체 나리 마실 물 이랑 맘마 챙겨 놓고 금방 온다고 쓰담쓰담 한번 해주고 집을 나서니 벌써 시간은 8시 30분이 다 되어갔다.


9시에는 집 근처 산부인과 정기 검진 예약이 되어 있어 머릿속으로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나 둘 점검해 가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의료보험카드를 꺼내 들며 예약 확인을 하던 병원 접수처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늘 예약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내 핸디 알림에도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캘린더에도 8월 27일 월요일 9시 산부인과라고 적혀 있는데 말이다.


덕분에 뚝 떨어진 시간

병원 컴퓨터로 확인을 해 보니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진료 예약은 9월 20일 10시 15분이었다.

어이없고 허무한 순간이었다.

"전화로 확인 한번 하고 움직이는 건데.."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산발한 머리 제대로 묶고 나오는 건데...로 시작되는 수많은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그 짧은 시간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종종 적어 놓지 않은 일정 중에 요일이나 시간 이 헷갈렸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생뚱맞고 엉뚱하게 다른 날 엄한 곳에 가기는 처음이다.

정말이지 날짜, 요일, 시간.. 뭐 하나 다른것과 헷갈릴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난 뭘 적어 놓은 걸까?

아직도 그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았으나 아무렴 어떠한가 어쨌거나 그 덕분에 귀한 아침 시간이 뚝 하고 떨어졌다.


평소 가끔 장을 보러 가고는 하는 유기농 마트에

통유리로 되어 밖이 잘 내다 보이는 작은 카페가 산부인과 병원 근처에 있다.

오가며 언젠가 한번 저창가 자리에 앉아 햇빛 받으며 커피 한잔 해야지 했었는데 지금 기꺼이 그 언젠가가 되어 보기로 했다.

 가끔은 뜻하지 않게...


몽글몽글 부드럽고 쌉싸름한 라테 한잔과 달콤한 쵸코 빵 하나 받아 들고 앉은 카페 안 창가는

이른 아침 마트 풍경 그대로 한적 했고 창 밖의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간혹 비춰 주는 햇살이 묻어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처럼 반짝였다.  


습관처럼 가방에서 꺼내어 펼쳐 놓은 다이어리 안에는 날이 아직 쌀쌀하다고 적힌 4월까
감기, 갱년기 증상 등의 건강에 관한 걱정 들과 식구들의 소소한 고민거리들로 까맣게 채워져 있었고,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적혀있는 5월부터는 띄엄띄엄 그러다가 더워서 오늘인지 내일인지 정신이 없던 7월부터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치 다이어리에  새하얗게 첫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그 텅 비어 있음이 어쩌면 틈만 나면 들고 다니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거리들을 나리와 바쁜 일정들 덕분에 잠시 내려놓고 살았던 시간 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 어느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린다.

어쩌면...
오늘의 이 뜻하지 않은 시간 언젠가 같은 일상 가운데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면서...

한 모금 넘긴 쌉싸름한 커피 위에 달달한 쵸코 빵 한입 만나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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