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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14. 2020

표고버섯의 용도변경과 해물 칼국수

 


점심 메뉴로 국수 요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처럼 더우면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비빔국수나 비벼 먹을까 했는데 때마침 비가 내려 주신다.

그것도 우르릉 우르릉 천둥 번개를 동반 한 체 우리 차 세차 라도 시켜 주려는 듯 쫘악 쫘악 빗줄기도 세차게...

날씨가 이럴 때 뜨끈한 국물요리 가 당긴다. 그중에 점심에 딱 맞는 해물 칼국수가 떠올랐다.

큰 냄비에 물 넉넉히 담고 끓여 멸치 넣고 다시마 우린 육수에 냉동고 안에서 대기 중인 오징어, 홍합, 새우 넣어 해물 칼국수를 만들 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육수를 만들고 국물에 넣을 채소 양파, 당근, 호박을 손질해서 길쭉길쭉 잘라두고 말린 표고버섯 몇 개를 물에 동동 띄워 불리다가 비 오는 날 머리에 꽃 달게 생긴 여자처럼 웃어젖혔다.

비 오는 날 부엌에 서서 요리하다 말고 갑자기 웃어대는 마누라의 괴기 스런 모습에 남편은

궁금증을 한소끔 담아 왜 그러느냐 물었다.

나는 웃음이 멈추지 않아 끅끅 거리며 왜 우리 겨울에 오드리 왔을 때 먹었던 버섯 하며 말했더니

남편도 기억이 나는지 빵 하고 같이 터져 버렸다.

그것이 뭔 일인고 하면....


때는 바야흐로 작년 겨울 우리 집 큰아들이 예쁜 여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 왔을 때의 일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오드리 아마도 어머니가 그 옛날 미인의 대명사 이자 아름다운 여배우의 레젼드 오드리 헵번의 팬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름도 어여쁜 오드리가 남자 친구의 엄마가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랬는지 표고버섯에 마시는 녹차에 센스 있는 선물들을 들고 왔다.

그래서 입으로 땡큐야 백만 번 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겸 그 아이가 없어서 못 먹는다는 비빔밥을 해주기로 했다.

비빔밥에 표고버섯 빠지면 왠지 허전하다. 요리강습 때도 표고버섯은 언제나 단골손님이다.

잡채, 불고기, 비빔밥, 그리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두부 버섯전골 , 등등 표고버섯은 언제나 다양한 한식 요리에 두루두루 쓰임 받는 귀한 식재료다.


나는 그날 오드리에게 받은 표고버섯을 인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레 꺼내 물에 잘 담갔다.

보통 우리가 독일에서 살 수 있는 말린 표고버섯은 중국산으로 비닐 포장에 20개가량이 들어 있고 3, 유로 정도 한다.

그런데 오드리에게 선물 받은 표고버섯은 네모난 통에 낱개로 잘 담기어 포장도 럭셔리하게 따로 되어 있고 반짝반짝한 것이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비싼 자태였다.

그런데 시간 지나면 빳빳하던 마른 버섯이 말랑 하게 송이송이 풀리는 모습이 보여야 하건만
자태도 도도하게 겁나 빳빳하니 물 위를 떠다녔다. 이렇게 저렇게 물을 몇 번 갈아 주며

아니 뭔 표고버섯에 코팅을 했남? 엄청나게 빤짝 거리기도 하네.. 하며 나는, 아이들이 내려와 점심 식사 준비하는 것을 보며 기뻐할 것만을 기대하고는 룰루 랄라 신나게 비빔밥을 준비해 나갔다.


그런데...

차를 마시겠다고 식사 시간보다 일찍 내려온 아이들이 물 위에서 수중 발레 라도 하듯 떠다니는 표고버섯의 우아한 자태를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작은 목소리였지만 오드리가 오 마이 갓 하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때까지도 이유를 몰랐던 나는 그 아이가 지가 선물로 준 표고버섯으로 맛난 것을 해주려는 남자 친구 엄마의 정성에 감격해서 그런가 싶어 미소 지으며 "와이 오 마이 갓?"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잠시 머뭇대더니 영어로 "이거 칩슨데..... 포장에 쓰여있는데..." 하는 것 아닌가

왓? 칩스? 내가 아는 그 칩스?

그렇다 오드리가 선물로 준 표고버섯은 그냥 심심할 때 오며 가며 짚어 먹기 좋으라고 살짝 튀겨 꿀 바른 칩스였던 것이었다.... 이런 쉿뜨...

우린 누구랄 것 없이 함께 웃었다. 나는 몸살 하는 영어로 내가 요리 강습할 때마다 자주 쓰는 표고버섯은 이렇게 물에 불려 사용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물에 넣고 보았노라 설명해 주었다.

사실이 그러했고, 포장이 럭셔리하다고만 생각했지 그것을 읽어볼 생각은 아예 없었다. 뭐  읽어 본다고 한들 프리미엄이라 쓰여있는 포장 맨 끝에 쥐똥 만하게 쓰여있는 칩스 라는 것을 그냥 스쳐 지나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어쨌거나 나는 그날 내 요리인생 첨으로 표고버섯의 용도를 변경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놈의 프리미엄 표고버섯에 코팅되듯 잘 발라져 있던 꿀은 하니스럽게도 착 달라붙어서는

한참을 씻어 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날 결국에는 말랑 해 진 표고버섯을 잘라 비빔밥 용으로 다시 양념하고 볶아 내어 맛나게 먹었다.

시작은 칩스였으나 그 끝은 비빔밥 이리니...

그런 웃픈 해프닝을 겪고 나니 표고버섯을 불리며 그날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오늘따라 해물칼국수 안에 들어간 표고버섯이 제대로 맛나다.

아끼는 그릇 꺼내어 촐촐하게 잘 삶아진 칼국수 한 움큼 넣고 멸치 다시마 육수에 홍합, 오징어, 새우 그리고 호박, 양파, 당근, 표고버섯 들어간 국간장, 소금 후추로 간 맞춘 국물을 담아낸다.

어제 담가 놓은 배추 오이 겉절이가 깔맞춤처럼 잘 어울린다.

(독일에 사시는 분들을 위한 작은 팁! 평소 독일 마트에서 사는 오이는 우리의 연두색과 초록이 섞인 겉면이 우툴두툴하고 맛은 아삭한 오이와는 달리 짙은 초록에 겉면이 매끈하고 매우 물기가 많고 허벌 허벌 합니다. 그런 오이로 배추와 함께 겉절이를 버무리면 물이 너무 많이 나오고 익으면 금세 물러집니다. 해서 요즘 한참 독일 마트에 나오는 피클용 오이를 절이지 않고 잘 씻어 썰어서는 미리 절여둔 배추와 잘 버무리면 간 맞추기도 쉽고 물기도 훨씬 적으며 먹는 내내 아삭 합니다)

비 오는 날 해물 칼국수와 겉절이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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