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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23. 2020

남편의 눈물겨운 삼시세끼


높고 맑게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창문 가득 들어찬 따사로운 햇살이 마냥 포근한 공휴일 아침이다.

그 온기가 좋아 침대에서 꼼지락 거리기가 몇 분, 누군가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이다. 식구들 마다 특유의 발소리가 있다. 마치 같은 종류의 춤을 추어도 각기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듯 생김새 다른 각자의 발소리. 집안에 계단이 많은 편이다. 하루에도 식구들이 오르내리는 일이 많다 보니 발소리를 듣기만 해도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된다. 남편의 발소리는 묵직하고 빠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방문을 빼꼼히 열고 "여보야 아침 먹어" 한다. 자신감에 버터를 바른듯한 목소리로 보아하니 우리 집 멍뭉이 데리고 아침 산책 다녀오는 길에 오랜만에 빵가게에 들렸나 보다.

'그래, 내 가서 갗구워낸 고소하고 따끈한 빵을 먹어 주겠어.'.. 하는 미소를 흘리며 나는 얼른 발에 슬리퍼를 끼워 신었다.


아침 식사 Frühstück
 

평소처럼 빵 봉지 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커피 한잔 내려둔 채 늦잠 자는 사치를 누리고 있을 마누라를 깨우러 오지 않았을까 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인터넷으로 영화 보고 새벽 에야 자는 딸내미까지 식탁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큼한 미소를 머금은 딸내미와 '나 잘했지 빨리 감동 해!' 하는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쓰여있는 남편은  연습이라도 한 듯 동시에 " 생일 축하해요"를 외친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딸내미와 아빠는 생일 맞은 엄마를 위해 몰래 아침상을 차렸다.

엄마가 깰세라 소리 줄여 가며 말이다.

갗구워 낸 크로와상과 독일의 곡식이 붙은 여러 가지 작은 빵 들 그리고 빵에 바를 크림치즈, 땅콩버터, 쨈, 그 안에 넣어 먹을 햄, 치즈.. 오이, 토마토 들은 아빠가 사 오고 자르고 차려 냈다.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프렌치토스트와 에그 스크램블을 하고 과일을 올려 낸 것은 딸내미가 했다 아빠와 딸내미가 공조 해 만든 아침 상.

집에 있는 예쁜 빵 바구니도 짝 맞는 접시와 커피잔 들도 모두 놔둔 체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아냈지만 내 눈에는 호텔 조식 보다 더 근사 해 보인다. 그위에 밀려오는 잠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생일의 아침을 놀라며 기뻐 맞이 하기를 기대했을 두 사람의 사랑이 온전히 얹어져 있으니...



점심 식사 Mittagessen

그렇게 아침을 먹으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마누라의 특별한 생일이니 삼시세끼 모두 차려 주겠노라고. 그것도 점심, 저녁은 국이 있는 한식으로.

속으로 에이 진짜?... 했다. 결혼 전에 자취생활을 오래 했던 남편은 사실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직 요리가 서툴던 마눌이 먹기 거시기 한 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대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먹으며 자기는 요리하는 법을 모두 잊었다고 끝까지 버티던 사람이다. 그때 자기가 도와준답시고 부엌에 서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요리는 평생 자기 몫이었을 것이라며 말이다.

아이들 키우면서도 닦이고 치우고 많은 부분을 함께 해 주었지만 요리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한 세월 동안 남편이 사 준 것이 아닌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 본 것이 손으로 꼽는다.

그런 남편이 기꺼이 삼시 세 끼를 해주겠노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던 독일의 레스토랑들이 다시 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서로 조심스 럽 다. 그리고 여기저기 띄엄띄엄 앉아 마스크 쓰고 서빙해 주는 음식을 기다리며 화기애애보다는 불안 불안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피자나 케밥 또는 중국음식을 테이크 아웃해다 줄 수도 있건만 굳이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주려고 결심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생일 맞은 마눌 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 이유일 거다.


해외에서 한식으로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 처럼 매번 다양한 제철 식재료 들을 손쉽게 구할 수도 없고 밑반찬을 골고루 만들어 두고 살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야 하기에 시간도 많이 들고 계획한 메뉴와 달리 엉뚱한 요리를 하게 되기도 한다. 이건 마치 외딴섬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만 삼시 세 끼를 챙겨 내는 그 방송과 많이 닮은 듯하다.


호기 있게 삼시 세 끼를 외치던 남편은 점심으로 된장국과 계란말이 그리고 깍두기를 하겠다고 했다.

어제 김치찌개 끓이느라 배추김치가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오랜만에 요리를 하다 보니 계획은 많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보인다.

볕이 좋아 베란다에 빨래 널고 와서 보니 깍두기가 되어야 할 무가 된장국에 떠 있다.

썰고 보니 무가 깍두기를 하기에는 양이 작았단다.

그리고 저녁에 끓여준다는 미역국에 넣을 참기름과 국간장에 볶은 쇠고기도 들어가 있다.

이름은 두부 들어간 된장국인데 무장국과 된장국을 섞은듯한 새로운 국이 탄생했다.

정말이지 시원하니 맛있었다.그런데 왠일인지 남편이 국을 남겼다.음식은 남김 없이 가 우리집 가훈중 하나 인데 국을 남기다니...

무진 딸내미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아빠 왜 국 남겨?" 요기서 오늘 남편의 명언이 나온다.

"아빠 이제 알겠어 엄마가 평소에 왜 밥을 적게 먹는지 간보고 밥 차리고 왔다 갔다 하면 금세 입맛이 없어져,역시 누가 해주는 밥이 맛난 거였어"



생각지도 못한 깜짝 생일 선물

지난주 목요일 밤...

공부 때문에 아르헨티나에 가있던 큰아들이 선물처럼 집에 왔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어 걱정이 많았다. 그중 아르헨티나는 초기 대응도 빨랐고 그 덕분에 확진자 수도 많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9월까지 하늘길이 막혀 버렸다. 그때까지 아들은 집에 올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머나먼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 기숙사에 갇혀 있다시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사진으로 화상통화로 확인시켜 주었지만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돌고 있는 때에 혹시라도 아프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러던 지난주 화요일 자국민을 데리러 온 영국 비행기에 끼여 아르헨티나에서 런던까지 올 수가 있었고 런던 공항에서 24시간을 기다려 다시 독일로 올 수가 있었다.

지금 공항으로 가고 있다는 아들의 전화에도 믿기 어려울 만큼 갑자기 진행된 일이었다.


그렇게 반년만에 만난 아들을 한번 안아 주지도 못하고 마스크 쓰고 멀찍이 떨어져 서서 3층 방으로 올려 보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동제한으로 마트 가는 것 외에는 기숙사 방에서만 지냈던 아들은 길대로 길어진 머리 탓인지 여전히 삐쩍 말라 있었다. 그렇게 마스크 쓰고 눈만 보이는 아들은 신고 온 신발과 가져온 가방의 바퀴까지 구석구석 소독약으로 소독을 한 후에 라푼젤이 갇히듯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이 지났다.


독일은 6월 4일 이전까지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보건당국에 신고를 하고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그 규정이 아녔어도 우리는 개인병원을 하고 있어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 되었을 것이다. 그를 위해 방뿐만 아니라 아예 층을 구별했고, 거의 모든 식기를 일회용 도시락으로 사용 중이며 쓰고 난 일회용 식기들도 모두 그방 쓰레기 통에 분리수거해서 자가격리가 끝나는 날 들고 내려올 예정이다.

아들은 엄마의 생일에 깜짝 선물처럼 집에 와 주었지만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생일 축하 인사도 화상으로 해야 했다.

그런 아이에게 끼니마다 맛난 한식을 해 주고 싶은 마눌의 짠한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남편은 삼시세끼 정성을 다해 요리했다.

남편이 무 깍두기 만들려다 넣었다는 무 넣은 시원한 된장국과 계란말이를 3층 아들방 앞에 가져다 놓고 톡을 보낸다 "아들, 방앞에 점심 가져다 놨다. 네가 좋아하는 된장국이랑 계란말이야, 아빠가 만들었어 " 마음속에 한 자락 따뜻한 바람이 분다.



저녁 Abendessen


남편은 생일 상이니 저녁은 미역국을 끓이고 고구마전을 부치겠다고 했다.

사실 남편은 점심에 맛난 된장국에 계란말이뿐만 아니라 생일 상이라고 잡채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요리강습에 다른 용도로 쓰려고 사다 놓은 굵은 고구마 당면을 왠지 그 맛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사용했다가 잡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실험적인 국수 요리를 만들고 말았다.

그 굵고 시 커머 튀튀 한 당면에 양념이 배게 하려고 볶다가 함께 뭉개진 피망이 버무려진 국수 그 이름은 대따 굵은 잡채.

그래서 남편은 자신이 만든 점심보다 저녁이 하이라이트였으면 했다. 그래서 본인의 필살기 인 단호박 미역국을 끓이려고 했는데 호박은 너무 단단하고 컸으며 홍합은 없었다.

일단 호박을 썰었으니 반은 쇠고기와 함께 미역국 안에 넣고 나머지는 고구마와 함께 전을 부쳤다.

막상 하루에 세끼를 내리 차려 내려니 생각대로 되지 않고 힘은 힘대로 들자 남편은 미역국을 끓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 네가 보는 삼시 끼 라는 방송 말이야, 그거 알고 보니 아주 몹쓸 프로네. 보는 사람은 힐링이지 그거 하는 분들은 정말 극한직업이야"

남편의 너스레를 담은 달달하고 진한 미역국을 한입 떠먹으며 나는 "그러게.. 근데 나는 내일도 생일이었으면 좋겠네" 하며 웃었고 남편은 무슨 그런 무서븐 소리를 하는 얼굴로 따라 웃었다. 이제도 앞으로도 없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생일 선물을 받은 행복한 밤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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