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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19. 2020

왜 깻잎이 아닌 콩잎이었을까?

외할머니의 콩잎 장아찌

아닌 밤중에 깻잎?


우리 집에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는 어느 날 깜짝 선물처럼 우리에게 왔다.

그 당시 우리는 두 살짜리 큰아이를 데리고 둘이 공부하느라 쩔쩔매고 있던 젊은 유학생 부부였다.

당연히 둘째는 생각도 못하던 때다. 급할 때 도움받을 가족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서툰 육아와 남의 나라 말로 해야 하는 빡신 공부에 치여 하루하루가 새롭게 버거운 그런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잘 자다가 남편이 갑자기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놀라서 깼다. 남편은 자다만 사람 치고 꽤나 또렷한 말투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체 내게 이야기했다.

"내가, 꿈에 어디를 가는데 길가 전체에 깻잎이 천지인 거야 그래서 이렇게 귀한 게 여기 널렸네 하며 한참 주어 담아 왔어 나 아무래도 이번에 엄청난 게 나올 것 같아, 이러다 노벨상 가면 어떡하지?" 하는 게 아닌가? 나름 얼마나 진지 하던지..., 그 표정에 차마, '이게 무슨 자다 깨서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원샷하는 소리래? '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남편은 한참 몰두하고 있던 연구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고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꿈에 독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깻잎 이 나왔다지 않은가?


지금 이야 깻잎 나는 철이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먹을 수도 있고 봄이면 우리 집 정원에 씨 뿌려 여름 내내 따 먹고 해서 깻잎 귀한 것을 잊고 살지만, 그 당시에는 나이 있으신 교민 아주머니 댁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던 것이 깻잎이었다.

그런데..... 그 깻잎 꿈은....


작년 여름 우리 집 정원의 깻잎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맛이라니?

남편에게 노벨상을 가져다주는 대신 엄청스레 이쁜 딸내미를 선사해 주었다.

그렇다 그 꿈은 울 딸내미 태몽이었다. 그 당시 함께 유학생활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은 과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채소 그것도 잎 이 등장하는 태몽은 처음 들어 본다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깻잎 태몽으로 우리에게 온 우리 집 깻잎 이는 입덧도 유별 났다. 그런 게 있었나도 모르게

특별히 먹고 싶던 것도 없이 무던히 지나갔던 큰아들 때와는 달리 유난히도 먹고 싶은 것이 스페셜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콩잎 장아찌였다.

임신 중에 엄마가 먹고 싶은 것은 사실은 아기가 먹고 싶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떡볶이, 순대, 김밥, 닭강정, 만둣국, 갈비찜, 불고기, 잡채, 등의 익숙한 한식이 아니라 몇 번 먹어본 적 없는 콩잎 이라니 참 별스럽다 싶었다.


그런데, 그 십수 년도 더 전에 먹어 보았던 콩잎 장아찌의 맛이 그리도 또렷하게 기억날 수가 없는 거다. 자려고 누워 있으면, 마치 어제 먹었던 것처럼 맛이 선명하게 떠오르고는 했다.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름기 촐촐 히 흐르는 하얀 쌀 밥에 콩잎 한 장을 척 얹어서 싸 먹으면 깻잎 같은 특유의 향도 없이 마치 얇디얇은 종이를 머금은 것 같은 덤덤한 부드러움 이 혀에 감 킨다. 심심하던 첫맛에 비해 삼킨 후의 끝 맛은 오래도록 구수하게 달큼하다.

그 콩잎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때 부산 외할머니네 에서였다.

두종류의 콩잎 장아찌

자갈치 외할머니네

 

우리는 부산 외갓집을 자갈치 외할머니네 라고 불렀다.

지금처럼 KTX 도 없고 도로 사정도 좋지 못하던 우리 어린 시절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서도 고속버스를 타고서도 몇 시간씩 한참을 가야만 하는 먼 곳이었다.

길고 긴 시간을 지나 기차에서 내리면 바람에 싣려 오던 비릿한 바다내음이 아 외갓집에 왔구나 하는 걸 저절로 알게 해 주던 그 시절 외할머니는 자갈치 시장 건너편에 살고 계셨다.


외할머니네는 드르륵 하고 밀면 열리는 미닫이 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가면 되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툇마루 같은 곳을 넘어 방이 나오지만 앞쪽에는 널찍한 시멘트 바닥에 고무 대야 그리고 수도가 연결되어 있어 들어오고 나가는 생선들을 씻고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로 여기저기 나가는 생선 박스들이 오가는 곳이어서 장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집이라기보다는 가게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외할머니는 식사도 하시고 잠도 주무시고 일도 시며 혼자 칠 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기름 발라 빗어 올린 머리를 쪽 지어 비녀를 꽂고 다니시던 친할머니와는 다르게 대충 틀어 올린 머리에 몸빼 바지를 입고 검고 긴 장화를 신고 잠시도 앉아 계시지 않고 바삐 움직이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차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자주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던 외할머니는 그렇게 거칠어 보일 만큼 씩씩한 분이셨다.

작은 체구와는 달리 쩌렁쩌렁 울리는 쉰듯한 목소리로 덩치 큰 아저씨 들과 싸우듯이 대화를 하던 할머니는 그렇게 한참이나 커 보였다.

어쩌면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억양이 한몫했을는지 모른다.

"아나, 서울 촌놈들 이런 거 무을 줄 모리나? 팍팍 무어라 팍팍, 아 들은 뭘 좋아 하노?"라는 언뜻 들으면 외국어 같기도 하고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와는 다르게 할머니는 손으로 꼼꼼이 생선 잔가시 들을 발라낸 통통하고 하얀 생선살 들을 골라 밥 위에 얹어 주시고는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빠르고 높은 억양의 외할머니의 말투가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다 할머니는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계셨던 것이라는 것을....

아부지와 부산에서 엄마와 서울에서..

외할머니의 노란 콩잎 장아찌


그 투박하지만 시원시원한 할머니의 말투만큼이나 특색 있고 색깔 강한 맛을 품고 있던 할머니의 음식들은 맛깔스러웠다.

특히나 입맛 까다로운 편이고 식사 양도 늘 드시던 양 외에는 더 드시는 법이 별로 없던 친정아버지도 외할머니가 뚝딱 차려 내신 밥상에서는 말없이 더 드시고는 했다.

그러나 그때의 친정아버지 보다도 나이가 더 들고 나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일하시느라 바빠 당신 식사 한 끼는 그릇 들고 다니며 대강 하셨을 할머니가 서울에서 딸내미와 사위 손자, 손녀들이 온다고 새벽부터 음식 준비를 하셨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을 아는 친정아버지는 무뚝뚝한 성격 탓에 할머니께 살가운 감사인사를 전하지는 못했어도 더 드셔 주시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외할머니의 밥상에 올라와 있던 싱싱한 굴도, 해삼과 전복도, 미더덕이 들어간 된장국도 젓 국 진하게 들어간 김치와 장아찌 들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던 생선들도 서울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음식 들이였다. 그중에서도 콩잎 장아찌 라 불리던 노란 잎은 처음 먹어 본 것이었다.

경상도 식의 양념 맛이 강한 다른 음식들에 비해 콩잎은 낯설지만 부드럽고 특별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잘 삭힌 콩잎 장아찌의 맛은 까다로운 서울 토박이 울 아버지 입맛에도 어린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 후로 종종 보내주신 외할머니의 택배 속에는 말린 가자미와 노란 콩잎 장아찌가 들어 있었다.

서울 촌놈들이 잘 먹던 것을 눈여겨 보신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장아찌를 담으며 담긴 마음


딸내미를 가졌던 그때 뜬금없이 떠올랐던 콩잎 장아찌의 맛은 우연이 아녔을지도 모른다.

직접 메주 띄어 잘 담아 놓은 익은 집 된장 안에 시기 적절 하게 딴 여린 콩잎들켜켜이 잘 재어 삭힌 콩잎 장아찌.그 장아찌 에는 입에 딱 맞는 농도 가 될때 까지 수시로 들여다 보며 딸내미와 손녀,손자가 보고 싶은 마음을 익담은 할머니의 그리움과 맛나게 잘 먹을 모습 만을 기대 하며 정성 들였을 할머니의 사랑이 한켜 한켜 꼭꼭 눌러 노랗게 담기어 있었을 것이다.


그 노란 콩잎 장아찌 양념이 뭍은 손가락 쪽쪽 빨아 먹으며 베시시 웃던 꼬맹이가 어느덧 그때의 엄마 만큼 나이가 들어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있다.그때 딸내미던 엄마는 그날의 외할머니 처럼 딸내미네를 머나먼 타지에 보내 놓고 그리움을 삭히고 있다.콩잎 장아찌를 담던 외할머니 처럼...

이제는 알것 같다 우리 딸내미를 가졌을때 왜 깻잎이 아닌 콩잎 장아찌가 먹고 싶었는지 말이다.

 타지에서 아이 들을 낳아 키우며 의지 할곳 없이막막하고 두려웠던 순간들에 잘 숙성된 장아찌 처럼 깊이도 맛도 흔들림 없는 엄마의 그리고 외할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그때 한국 에서 택배로 보내온 콩잎 장아찌를 먹고 태어난 우리 딸내미가 올해 스무살이 된다.

그딸내미를 언젠가는 나도 우리 엄마 처럼 그리고 우리 외할머니 처럼 시집 보내는 날이 오게 될것이다.

그전에 꼭 한번 친정엄마와 딸내미 함께 부산 자갈치에 가고 싶다.이제는 그곳에서 "서울 촌놈들 왔나"하고 드르륵 문을 열어 주실 외할머니도 많이 먹었다며 수저를 놓지 못하고 계실 친정 아부지도 만날수 없겠지만....

그옛날 외할머니네서 먹던 콩잎 장아찌를 너를 가졌을때 할머니가 보내 주셔서 먹었노라며 그 특별한 맛과 사랑에 대해 3대가 함께 나란히 앉아 이야기 하게 될 날을 빨리  만날수 있으면 좋겠다.



갓태어난 딸내미와 아이를 받아준 독일 전문 출산 도우미 헤바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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