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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3. 2020

남편이 끓여준 특제 미역국

단호박 넣은 홍합 미역국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미역국


어느 순간부터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고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은 남편이 끓여 주었던 특제 미역국이다.

미역국 하면 가장 많은 레시피가 미역에 쇠고기를 넣은 국일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특제 미역국은 미역에 홍합과 단호박이 들어간다.

이 특제 미역국은 재료도 심플하고 만드는 방법 도 간단 하지만 홍합의 맑고 깊은 바다 내음과 단호박의 진한 달달함의 풍미가 어우러져 절묘한 맛을 낸다. 그 속에 담긴 사연만큼이나....


해외에 산다는 것은 한국의 식구들에게 경조사가 있을 때에도 바로 달려가지 못할 때가 더 많고

또 반대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식구들이 와 줄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멀리 산다는 것은 그렇게 기쁨도 슬픔도 어려움도 제때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실시간 뉴스 들을 서로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도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이제 며칠 지나면 베를린에서 대학생이 되는 딸내미가 태어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 지금 대학 졸업반인 큰아들은 세 살 베기 유치원 생이였고 남편은 대학 연구소에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한 마무리 실험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분만으로 딸내미를 순산 한 덕분에 삼 박 사일이라는 짧은 입원 기간을 마치고 큰아들과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어느 날이었다..

병원보다 집이 편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난방이 잘 되어 있던 입원실에 비해 집은 허벌나게 추웠다.

먹고 자고 뛰어노는 것이 주요 업무?이던 세 살짜리 아이는 어지르고 노는 것이 일이었고 엄마 손이 한참 필요한 나이였으며 진행되고 있던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있어 휴가도 미룬 체 매일 나가야 하는 남편은 그런 마눌을 도와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밤새 수유하느라 비몽사몽 간이였어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큰아들 유치원 등원 준비해주고 남편 연구소로 출근시키고 나면 어떻게 하루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고는 했다. 틈틈이 딸내미 수유하고 기저귀 갈아 가며 세탁기에 빨래 돌려 널고 큰아이 장난감 주워 치우고 청소기 한번 돌리고 나면 어느새 점심 준비할 때가 되어 가고 있었고 중간중간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딸내미 목욕 한번 시키고 유치원 다녀온 큰아이 간식 먹이고 조금 놀아 주고 나면 저녁 할 때가 되어 가고는 했었다.



특별한 미역국의 탄생 스토리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 다니던 큰아이가 코를 훌쩍 대더니 그만 감기에 걸려 버렸고 이제 백일이 채 되지 않은 딸내미까지 따라 걸리는 바람에 두 아이 보살 피다 아이들이 다 나을 무렵 나도 앓아눕고 말았다.

산간이라는 개념조차 따로 없는 독일에서 독일 엄마들처럼 아이 낳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일상을 시작한 탓이었던지... 감기와 독감이 같이 돌고 있던 겨울이었던 탓이었던지.. 산간은커녕 두 아이 독박 육아까지 해야 했던 상황 때문이었던지..... 한번 무너진 몸상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 며칠을 이웃의 다른 유학생 가정들이 챙겨 다 준 감사한 음식들과 남편이 사다 나른 음식 들로 연명했지만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늑막염으로 앉아 있기도 누워 있기도 쉽지 않던 나는 부엌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세 살짜리 아들이 부엌에서 뭔가를 만지나 싶어 걱정이 되어 서였다.

수저로 씨앗을 파내고 길게 썰어낸 호박을 칼끝을 세워 껍질을 벗겨 내면 빠르고 손쉽게  손질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엌에서는 남편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혼자 자취한 시간이 긴 남편은 곧잘 요리를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결혼 전의 이야기고 솥뚜껑 운전에서 손땐지가 언제인데...

게다가 그 당시 논문 막바지라 큰아이 유치원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것과 시장 보는 것 외에는 도와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남편은 하루라도 빨리 논문을 마무리하고 학위를 받아서 한국으로 귀국한다가 우리의 목표 이자 미래를 위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쓰고 있었다.

그래서 마눌이 아파 누었어도 학생식당, 중국식당 등에서 음식을 사다 주었지 남편이 뭔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참, 지금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그때의 우리는... 오늘날까지 우리가 독일에 살고 있을 것이라 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인생사 앞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맛에 따라 소금, 후추, 파 마늘을 넣어 간을 맞춥니다. 수유 중인 분들은 국간장과 참기름 소금 으로 간을 맞추고 나머지는 생략 해도 무방 합니다.


남편은 도마 위에 오렌지 빛 호박을 얹어 두고 그 둥글고 딱딱한 것을 몇 등 분해 나누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기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붓기가 체 가시기도 전에 늑막염을 앓게 되어 붓기가 몇 배가 될 때였다.

항생제를 복용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수유를 중단해야 했고 이래저래 부은 몸과 얼굴은 푸석푸석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마누라의 얼굴을 보며 남편은 저 붓기를 가시게 해 줄 특별한 산간 미역국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편의 특제 미역국 레시피


어디선가 호박이 붓기를 빼준다는 말을 들었던 남편은 장에서 커다란 늙은 호박이 아닌 작고 야무진 단호박을 사서는 그 딱딱한 껍질을 깔 엄두가 나지 않아 씻고 또 씻어서 몇 등분을 해 놓았다. 그리고는 물에 잘 불려 놓은 미역에 알 굵은 홍합들을 투입? 하고는 참기름과 국간장을 한수저씩 떠 넣어 가며 함께 잘 볶았다. 그다음에 씨앗을 빼고 큼직하게 껍질채 잘라 놓은 호박을 자작자작 홍합과 미역에서 국물을 내던 솥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가며 끓이면서 익어 가는 단호박을 수저로 살살 긁어서는 나중에 국물 위로 떠오르는 껍질만 건져 내었다.


그날 남편이 내게 건넨 뽀얗게  홍합이 우러 나고 그위에 단호박의 오렌지 색이 덧입혀져 색도 이쁘고 국물 맛도 진하던 그 특제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마셨다.

몸도 마음도 노곤 하고 포근해지며 아픈 것도 한시름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가을이 되어 시장에 오렌지빛 단호박과 홍합이 나올 때면 나는 남편의 특제 미역국을 끓인다. 그런데 아무리 남편의 레시피대로 끓여도 그때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날의 그 특제 미역국에는 부엌에 구부정하게 서서 수저 들고 익어 가는 호박을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긁고 있던 남편의 정성과 사랑이 함께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선한 가을 저녁 단호박과 홍합 넣은 남편의 특제 미역국을 끓일 때면 소금 , 후추 , 파, 마늘 조금씩만 넣어도 금세 간이 맞아 그날만큼은 아녀도 정말 맛난 미역국이 되고는 한다.

거기에다 오렌지색 도는 단호박 반은 국에 넣고 반은 잘라 초록의 호박 쥬키니와 자주색 고구마를 비슷한 크기로 잘라 튀김가루, 부침가루 섞어 만든 반죽에 넣고 부쳐 내면 빠른 시간 내에 초간단 삼색전도 만들 수 있다. 호박 하나에 일타쌍피다!

미역국에 배추 겉절이 또는 오이김치 놓고 전 한 접시 놓으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지는 저녁 상차림이 나온다.

쌀쌀한 가을 저녁으로 단호박 홍합 미역국 한 그릇 어떠세요?

단호박 반개는 썰어서 미역국에 넣고 튀김 가루 부침 가루 (1:2)로 섞은 반죽에 자주색 고구마, 초록의 쥬키니 호박을 썰어 넣어 부쳐 내면 초간단 삼색전을 만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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