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Jun 07. 2020

나리가 우리에게 온 지 꼭 2년이 되었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 가 우리에게 온 지 꼭 2년이 되었다.

날로 하면 790일, 느낌으로 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듯한데 돌아보니 아직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나리에게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하려고 생각하다가 함께 긴 산책을 가기로 했다.


주말 아침 6시 30분, 아직 밀려오는 잠을 덜어내고 산책 을 나선다.

오늘의 산책 지는 나리가 좋아하는 아우에 공원..

이 아우에 공원은 우리로 하자면 경복궁처럼 옛날 옛적에 독일의 왕가가 살던 궁전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시민들이 운동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또 봄 되면 시에서 키우는 양도 돌아다닌다.

그리고 5년에 한 번은 세계 현대 미술전 야외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아우에 공원은 우리 집에서 길 따라 쭈욱 20분 정도만 걸어 내려가면 바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평일에는 바빠서 나리와 자주 오지 못한다. 그래서 주말 이면 아침 일찍 남편과 나리를 데리고 긴 산책을 이 곳으로 오고는 한다. 평일의 산책은 보통 동네 한 바퀴 다.하루에도 세네번은 산책을 해야 하고 공원 산책을 한번 하려고 나서면 최소한 2시간 이상 잡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리를 위해 기쁘게 긴 산책을 나섰다.


공원으로 가는길은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전차와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 이다. 그러나 가로수 따라 조금만 걷다보면 소리 없이 흘러가는 강물도 아름드리 우거진 나무 숲도 거닐 수 있는 공원을 만나게 된다.

공원 안은 바깥 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이야기하려는 듯이.....

강물 위로 유유히 노니는 백조들도 바삐 마실 이라도 가는 양 종종 거리는 오리들 마저여유롭기만 하다.

가끔, 우리 나리처럼 어린? 강아지들이 당장이라도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 잡기 놀이 라도 해 보고 싶다는 듯 짖어 대며 촐싹거릴 때 외에는 시간은 멈춘 듯 그리 평화 로이 흐른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아무것도 몰라 허둥대며 힘들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은 100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백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그때처럼...

2년 전 16주 된 나리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똥꼬 발랄한 나리를 데리고 산책하다 만난 사람들은 한 살만 지나면 의젓해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한살이 지난지도 두 살이 지난지도 한참 이건만 우리 나리는 아직도 천방지축이다.

이렇게 산책을 나와 숲 속 덤불 안에 숨어 있는 토끼도 쫓고 싶고 물 위에 떠다니는 오리도 잡고 싶고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 도 따라잡고 싶어 안달할 때와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서 놀고 싶어 난리를 칠 때에만 말이다.

그러면 먹을때와 잠잘때 빼고 다인가?


날씨가 좋으니 뛰러 나온 사람들, 노딕워킹 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우리처럼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 모두가 자연을 만끽하며 움직이고 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서로 간의 간격을 유지하느라 걷다가도 뛰다가도 중간중간에 멈춰 서기도 쉬었다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빛 받아 유리알 같은 강물이 건네주는 싱그러운 푸르름은 함께 나눌 수 있다.



궁전으로 가는 길  다리 위로 까만 까마귀가 석상처럼 앉았다. 서양에서 까마귀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길조다. 아무리 깍깍 거리며 울어 대도 뾰족한 부리를 앞으로 하고 푸드덕 거리며 머리 위를 날아다녀도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까마귀들도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니들이야 지나가거나 말거나 나른하게 햇빛 쬐며 앉았다. 일광욕이라도 하려는 듯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날 옛적 궁전 앞 풀밭 에는 까만 까마귀들이 까맣게 앉았다.

한두 마리 라면 몰라도 저렇게 떼로 있으면 나는 왠지 어릴 때 보았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가 떠올라 섬찟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우리 집 나리는 저 푸른 초원 위를 신나게 달려 어찌 한번 저 새 무리들을 날려 볼까 싶어

온몸을 흔들어 댄다.

이대로 놓아주면 쏜살 같이 달려갈 것을 알기에 리드 줄을 다잡으며 나리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때 지난 유행어를 지껄인다.

"나리야 가 까마귀 부리에 한번 지대로 콕 찍혀 봐야...이러면 아프 되는하고 알지?"



궁전의 앞마당을 지나 강가를 따라 걸으며 마주오는 따사로운 햇빛과 상큼한 바람을 뒤로하며

나는 남편에게 "여보야, 옛날 옛적에 내가 여기서 살았다면 말 타고 다녔겠지? "라고 했다. 남편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뛰어다녔겠지.... 말 타고 도망 다니는 왕자나 공주 쫓아다니면서 마마 아니되옵니다. 이리 오시옵소소"하면서

상상 속에서라도 왕비를 꿈꾸는 마눌을 궁녀로 만든 남편을 곱게 흘기는 동안 나리는 양많은?오리 가족을 발견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떻게 하면 물 위에 있는 오리들을 물안 뭍이고 잡아 볼까를 고민하고 있는 나리에게 여덟 마리의 아가 오리 앞을 당당히 막아서며 꽥꽥 거리는 엄마 오리는 마치 이렇게 외쳐 대는 것 같았다.

"야, 집에 먹을게 그렇게 없냐?, 얘들 봐봐 코딱지 만한 거,먹어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갈걸?"


어차피 물이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할 나리 지만 엄마 오리와 아가 오리들이 편안하게 저 오리들의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우리는 나리를 불러들였다.

길게 풀었던 리드 줄을 잡아당겨도 이름을 불러도 못 들은 척하던 나리는 간식 봉지를 깃발처럼 흔들어 대자 바로 꼬리를 흔들며 쫄랑쫄랑 달려온다.


쪼르르 우리에게 달려온 나리는 온몸으로 말했다."나 왔쩌요 간식 주세요 간식!"

햇빛을 받아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닮은 나리의 갈색 눈에 파란 하늘도 우리도 간식 봉지도 그대로 담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강아지의 1년은 인간의 7년과 만멎는다고 한다. 우리는 나리의 시간으로 14년을 함께 한 셈이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서로를 담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매거진의 이전글 에이씨,김 나나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