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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02. 2020

강아지와 산책하다 멘붕이 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


독일에서 강아지랑 공원 산책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늘씬하고 느름 하게 생긴 강아지 들은 멋지게 달려서 서로의 템포를 맞추며 산책을 다니는 모습 말이다.

그렇다고 무슨 달리기 선수들 트레이닝하듯 자전거는 쌩쌩 달리고 강아지는 헉헉 거리며 냅다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간중간에 타이밍 좋게 자전거는 멈추고 강아지는 볼일도 보아 가며 여기저기 냄새도 맡아 가며 말 안 해도 서로를 아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조깅을 하듯이 합이 척척 맞는다. 그렇게 마치 티브이 광고에 한 장면 같은 어디선가 배경음악도 들려올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는 한다.

그런 모습을 부러움 담아 마냥 쳐다보다 보면...

보통 이런 강아지들은 운동 양이 아주 많은 견종들로 하루 소비해야 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인 것을 알수 있다.


원래 우리 집 멍뭉이 나리도 딱 고런 견종에 속한다. 백과사전에 나온다. 아키타 견은 사냥개 출신으로 운동양도 많고 활발하고 용맹하며.. 충성심? 강한(의리 있는)이라고...

그러나 사람들도 천차만별 이듯 강아지들 또한 각양각색 이어서 견종이 그렇다고 알려져 있어도 전혀 해당 사항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집 나리처럼..

나리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니나 가라 산책!"

구글 박사도 모르는 게 있다.


육아서적 들을 뒤적이며 울 아기도 백일 지나면 달라지겠구나.. 그럼 이제 고생 끝인 거지? 어서 오렴 백일.. 하며 백일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첫아이 때처럼..

우리는 나리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거나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충성심 강하고 명민하고 민첩바꿔 말해 겁나 의리 있고 똘똘하고 빠리빠리 한 성견이 될 줄 알았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면 구글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한다.

이 동네 사람들도 그만큼 검색을 많이 하는데 독일 검색창에 검색을 하면 믿음직스럽고, 고집스러운 편이며, 한 사람에게 올인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거기에 강아지가 하늘 나라로 떠난 주인을 역 앞에서 끝까지 기다리는 영화 하치 이야기 의 영향 때문인지...(이영화 보고 엄청 울었다는 사람들 많다)

산책 중에 만나게 되는 많은 독일 사람들은 한 번씩 이렇게 물어 오고는 한다.

"얘는 한 사람만 따르지 않나요?" 라고.... 그러면 나는 "아니요,우리 나리는 가족 모두따르고 좋아해요. 비록 순서는 있지만요. 게다가 낯선 사람도 무지 좋아해요"라고 한다.

나리는 사람을 향해서 짖은 적은 없다. 평범치? 않은 인상을 한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지나친 적은 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책에서나 검색으로 보았던 내용을 기억하며 나리가 그렇게 자랄 줄 알았다.

그런데 강아지 나이로 두 살 반 이미 어른? 이 된 울 나리는 여전히 천방지축,잠만보,느림보에 쫄보다.

나리는 오늘도 "내는 모르겠고.. 니나 가라 산책" 포스로 우리를 난감하게 하고 계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새벽까지 달리셔서 아직 술이 덜 깨신 분처럼 무아지경으로 자빠져 계신다.

산책 가자는데 빨딱 일어 나 앞장 서지는 못할 망정 어쩌나 지침대에서 데굴 거리며 잠깨기 스트레칭에 종류대로 다 하시는지....

뭐 그렇다고 낮이나 밤에는 산책 가자면 지가 먼저 문 앞에 서서 꼬리를 흔들며 신나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식구들이 많아 돌아가며 나리와 산책을 나가는데... 하루에 세 번 또는 네 번 가는 산책 전 모습이 누구와 언제 나가던 한결같다.

"그래, 그까이꺼 산책 내 가준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뭉기적 거리며 따라 나설 때면....

"구글 박사도 니가 이러는거 모를거야 그치 나리?"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쎈 아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얼음이 되거나~~
열라 튀거나~~

큰 개 쫄보, 작 개개 댐
큰 개 앞에서는쫄보
작은 개 앞에서는 개 들이댐


그런 나리를 간신히 꼬셔서 동네 산책을 나간다. 어느 날은 마주치는 강아지 한 마리 없이 다시 들어오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날은 떡 버러 진 체격에 보는 것만으로도 포스가 래브라도어 나 리트리버,셰퍼트 들을 수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만났을 때 우리 나리는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얼음 이 되거나 다른 길로 꽁지 빠지게 가려고 한다.  


원래 책에 나와 있는 데로 라면 우리를 지켜 주기 위해 위풍당당하게 앞을 딱 가로막고 용맹하게 짖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쫄보 나리는 충성심은 개뿔 나는 그딴 거 몰라요 하는 얼굴로 앞장서서 걸음아 나살려라 한다.

요럴 때만 앞장선다.

이럴 때 우리 나리의 속도는 달리기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우사인 볼트가 친구 하자 할 판이다.


그와는 반대로 정말 조그만 아이들을 만나면 같이 놀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지 나이? 는 생각 도 안 하고 이제 16주 되었어요 10개월 됐어요 하는 작고 어린 친구들을 보면 놀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나리는 그 아이들이 저의 큰 덩치와 씩씩한 비주얼이 얼마나 쪼꼬미 들을 놀라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워매,개 놀래라" 하는 표정들 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강아지 들 또는 어린 강아지 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리드 줄을 짧게 잡고 나리가 펄쩍 뛰어오르지 못하게 단단히 잡고 거리를 확보하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울 나리의 개 들이댐을 우연히라도 한번 보거나 경험한 쪼꼬미 들의 견주 들은 멀리서 울 나리가 보이면 자기들이 알아서 길 건너 가준다.

나리의 묵묵부답 권법, 그리고 나리의 명상 권법 밥은 밥이요 간식은 간식이로다.권법

동네 산책을 하다가....


그런데.. 나리가

산책 가자고 할 때 꾸벅꾸벅 조는 척하며 묵묵부답 권법 선보일 때 보다, 밥 (사료) 안 먹고 자꾸 간식 달라고 버티나리의 명상 권법 밥은 밥이요 간식은 간식이로다 권법을 선보일때 보다 더 서블 때가 있다

그것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중에 하나를 보여 주며 놀아 주겠다 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시크한 표정으로 "됐다, 마 ,이리 덥노" 하는 것 같을 때 보다도 훨씬 놀라운 모습이다.

바로바로.....



동네 산책 중에 무언가를 발견하고 두 눈을 요렇게 별처럼 반짝일 때다.

그거이 왜 놀랄 일인고 하면.,..

발견한 무언가는 살아있는, 고슴도치,쥐 일수도 있고 죽어 있는 작은 새 또는 쥐일 수 도 있다.

또는 쥐약 뭍은 소시지 이거나 빵 조가 리 일수도 있다.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고슴도치
동네 산책 길 위에는
별게 다 있다.


독일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길바닥에 버려진 것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유리쪼까리, 휴지, 담배곽,꽁초, 껌종이, 사탕껍질, 먹다 버린 빵, 등등... 그리고 누군가 의도해서 버려진 쥐약 바른 소시지 등이 중간중간에 숨겨져 있다.

특히나 대학생 들이나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근처 에는 주말 지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마시고 병째 세워 두었는지 맥주병들이 길바닥에 나란히 줄서 있는 곳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리고 언놈이 그걸 던졌는지 아니면 길 가다 모르고 걷어찼는지 아주 가루가 난 병 쪼가리들이 큰길에 널려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신발을 신고 다니지만 강아지들은 맨발의 청춘이 아니던가, 그 날카로운 유리조각 들은 위험천만이다.(우리가 길 가다 주워서 버린 적도 많다)


그 길을 피해 풀잎과 나무가 있는 작은 샛길로 가다 보면 누군가 드시고는 길에 그냥 버려 버린 빵조가리들과 아이스크림 껍데기, 사탕, 껌, 과자 껍데기 등이 이구석 저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계단만 올라 가면 또는 모퉁이만 돌면 바로 쓰레기 통이 있는데 길 가에 그냥 버리고 튀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을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혹시라도 나리가 냄새 맡으며 가다가 무언가 주워 먹을까 봐 우리가 먼저 눈으로 길바닥을 훑듯이 확인하며 산책하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동네 길바닥 쓰레기 노선도를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주의 쥐약!
나리와 산책 중에 멘붕이 되었다.


언젠가 우리 나리와 같은 견종을 키우고 있는 아저씨를 우연히 동네 산책을 하다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쥐약 뭍은 소시지 먹고 무지개다리 건넜다며 지금 키우는 강아지는 밖에서 아무것도 주워 먹지 못하게 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이렇게 동네 여기저기에 조심하세요 쥐약 있어요 등의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붙여 놓은 경고문 들을 볼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리가 동네 산책 중에 빛의 속도로 무언가 입에 넣었다.

질겅질겅 껌 씹듯이 나리 입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던 것은 얇은 비닐 조각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뜨악했으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면 나리가 놀라서 그대로 삼켜 버릴까 봐

간식과 바꾸자고 꼬시기도 하고 그것을 뱉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나리는 무언가 맛난 것을 먹어 치우듯 그 비닐을 빠른 속도로 꿀꺽 삼키고는 입맛을 다셨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난 그 자리에서 멘붕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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