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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04. 2020

봉다리 들고 잭팟을 외쳤다.

우리 강아지가 비닐을 삼켰어요.



산책하다 나리가...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리가 여기저기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작은 비닐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 거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평소 알맹이 가 들어 있지 않은 껍데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다.

아마도 그래서 방심한 듯싶다.

몇 초 전 나도 분명 저 길 귀퉁이 떨어져 있던 비닐 조각 아니 비닐 껍데기를 보았다.

빈 껍질에서는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리는 오며 가며 냄새만 맡다 지나쳤지 한 번도 입에 넣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최대한 차분하게 나리가 사족을 못쓰게 좋아하는 간식을 꺼내 들고 "나리 이거랑 바꾸자 그거 맛없는 거야 "

라며 나리가 입에 넣고 있던 것을 뱉고 간식을 먹겠다고 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평소 라면 눈 튀어나오게 반겼을 간식을 마다하고 소여물 씹듯 우물거리며

하던 짓? 계속하고 있는 거다.

나는 급한 마음을 달래며 속으로 릴랙스! 를 외치고는 "싫어? 그럼 말고, " 네가 손해일 텐데... 하는 표정으로 간식을 다시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간식에 관심을 보이고 비닐을 뱉어 버리면 바로 다시 주려고...

그런데 나리는 여전히 "됐다, 니나 마이 무으라" 하는 표정으로 귀로는 내 말을 씹고 입으로는 미끄덩 거리는 비닐 질겅질겅 씹으며 돌려 씹기 신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요즘 독일의 동물병원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 보호자는 밖에서 대기하고 동물 환자 들만 병원으로 들어 간다.


비닐을 삼켜 버렸다.


분명 저 비닐 은 아이들 좋아하는 소시지의 껍질인 것 같다. 그래서 소시지 냄새가 비닐에 배어 있었나 보다.

간식도 마다 하며 비닐 쪼가리를 마치 치킨이라도 먹는 듯이 만족해하며 오물 거리는 나리를 보며 이제는 내가 더 다급해졌다.

저 껌 씹듯 쳡춉 츄륵츄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리 입에서 나올라 말랑 하는 얇은 비닐 쪼가리를 딱 꺼내 버릴 수만 있다면...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입을 벌려 볼까? 싶다가도 비닐 빼내려다 나무 잔가지 라도 부러져서 목에 걸리거나 입안에 상처를 낸다면 더 낭패 다.


그래서 타이밍 좋게 부드럽게 나리의 머리를 쓰담쓰담하다 입안에 비닐을 잽싸게 꺼내려 는데...

쓋뜨! 낌새를 챈 나리가 비닐을 꿀꺼덕 삼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땐 눈치가 100단이다.

나는 망연자실 한 체 "나리 !"를 부르며 서서 그야말로 멘탈붕괴 멘붕이였다.

욜라 친절한 우리의 이웃님



그때였다.  위쪽에서 우리의 정다운 이웃 슈발름 씨 네 부부가 우리 쪽으로 걸어 내려 오고 있었다.

마트에 다녀오는 길인지 늘 가지고 다니시는 시장용 가방을 밀며 오는 익숙한 이웃을 보며 나리는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고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 적정 거리를 유지한체 인사를 나누었다.  


뭔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슈발름 씨네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

나는 두 분을 쳐다보며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하는 동안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랬더니 슈발름 씨네 아주머니가 말했다."아유 걱정 말아요. 내일 이면 뒤로 나올 거예요"

"여보 우리 친구 네 강아지 넬리 도 비닐 먹고 똥으로 나왔잖아요 그 뒤에도 건강하게 지냈잖아 그렇죠?."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려는 찰나에 슈발름 씨가 이야기했다.

"그럼 그럼.. 비닐 주워 먹고는 괜찮았지 그러고 몇 년 더 살았지 아마?"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슈발름 씨네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그 후에 병이 났어"

.... 우리의 정다운 이웃 쓔발름 씨네는 욜라 친절했다.그래서 안 하셔도 되는 말 까지 굳이 하시어 불난 집에 선풍기 틀어 놓고는 가던 길로 총총히 사라 지셨다.

내 웬만하면 슈발름 씨네 이름을 부를 때 발음하거나 띄어쓰기 하지 않건만 그날은 속으로 계속  이렇게 불러 재꼈다. 이런 ....쓔발 름 씨~~!



수의사 선생님은 휴가 중..


정신없이 산책을 마무리 하고는 나리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지금 저희 병원은 휴가 중입니다."라는 음성 녹음이 전화를 통해 흘러나왔다.

아, 그렇다 요즘 한창 너나 할 것 없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지... 근데 지난번에 진드기 약 타러 갔을 때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하며 괜시리 휴가 간 수의사 쌤에게 짜증을 부리며....그리고는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했다.

강아지가 비닐을 삼키면.. 우리 강아지가 비닐을 삼켰어요.. 등등..

검색창에 뜬 수많은 댓글 들을 훑어보니.. 어차피 비닐은 초음파에도 잘 보이지 않아 동물 병원에 가도 크게 할 것이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강아지가 비닐을 삼킨 후에 숨을 제대로 못 쉰다거나, 구토한다거나 설사 등을 하지 않는 다면 병원 가는 것보다는 강아지가 배변을 통해 내 보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봉지 들고 잭팟을 외쳤다.


그럼에도... 비닐은 이물질을 아니던가.. 혹시라도 비닐이 나리의 몸속 어딘가 에서 돌아다니다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또 그 비닐에 뭔가 나쁜 것이 묻어 있었던 거라면 어찌하나....

만약 영영 똥으로 나오지 않는 다면 또 어떻게 하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다녔다. 남편도 아이들도 괜찮을 것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눈앞에서 비닐을 삼키던 장면이 자꾸 떠올라 내 맘을 힘들게 했다.

혹시나 비닐 먹어서 병나면 어쩌지? 아니야 괜찮을 거야 분명 똥으로 다시 나올 거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어 가며 나리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나 큰걸 보려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노심초사 하며....

나리가 앉아서 힘줄 때마다 떨어져 나오는 것들 중에 혹시나 비닐이 섞여 나오려나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풀밭에 뚝 하고 떨어진 나리의 것을 봉다리에 담으면서도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에도... 저녁에도... 그다음 날 아침에도 나리가 삼킨 비닐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던 비닐은 그다음 날 오후 늦게 약 하루 만에 변치 않는 그모습 그대로 나리의 누런 것에 섞여 안전히 밖으로 나와 주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나리의 똥 봉지를 손에 들고 잭팟을 외쳤다!

요렇게 애교를 떠는 나리가...

조렇게 천연덕 스레 자빠져서 앵겨 있는 나리가....

이다지도 편안하게 우리 옆에 있는 나리가..없는 것은 이제 상상 할수 없다.

오래오래 우리 나리와 함께 하고 싶다.

나리야 건강하게 지내자! 정말 이지 식겁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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