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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3. 2020

에이씨,김 나나 봐!..


혹자는 독일을 강아지 들의 천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길 맞은편에서 오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뜰뜨름한 표정으로 우리 집 나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거다.


요즘은 독일 전역을 거쳐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예전의 독일 시골처럼, 난생처음 외국인을 보았네 하는 촌스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길을 지나다닐 때도 지나친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호기심과 경계심을 섞어 담은 눈빛 이라니.....

나리의 리드 줄을 짧게 당겨 서로 간의 거리 유지도 확실이 했건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모르는 사람의 이유 없는 달갑지 않은 눈빛이 반가울 리 없다, 해서 나도 기꺼이 땃땃한 눈빛을 반사? 해 주고는 나리와 함께 가던 길을 재촉했다.


독일 사람들 중에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등에서 길에 떠 돌다 안락사 직전에 쳐해 진 유기견들을 구해 데려다 놓은 Tierheim 티어 하임이라는 곳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경우가 많다.(우리말로 티어 하임을 번역하자면 동물의 집 정도 되겠지만 유기동물 보호소 정도로 이야기하면 되겠다.)

그렇다 보니, 길 가다 가장 자주 만나 지는 견종 다른 나라에서 온 믹스견 들이고 그다음이 라브라 도어, 골든 레트리버, 프랑스 불도그 등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주 만날수 있는 견종 들과는 사뭇 다르게 생긴 나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나리와 산책을 나갔을 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중에는..

"어머,얘는 썰매 끄는 강아지 아니에요?썰매는 어딨니?" 라며 시베리안 허스키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또는 강아지와 함께인 사람들 중에,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네 강아지는 티어 하임에서 입양을 해서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며 아마 몇 살쯤 되었을 것이고 불가리아, 또는 루마니아에서 데려 왔다는 설명을 길게 더하며 독일은 자체적으로 유기견이 거의 없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유기견 들을 다른 나라에서까지 데려와 입양을 한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 까지 내비치고는 한다.

정말 궁금했던 요 질문을 하기 위해... " 강아지 고향에서 데리고 왔나요?"


그러나, 아까 그들의 눈빛은 이런 유의 단순한 호기심 또는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독일 땅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20년도 훌쩍 넘는 그 시절에 종종 마주 하던 눈빛....

자기네들독일 밖에서는 외국인인데..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아직도 저런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조금 씁쓸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리와 동네 길 들을 걷고 또 걸으며 긴 산책을 하고 있는데 나리가 갑자기 화장실 가야겠다는 몸동작을 보였다.

여자 강아지인 나리는 쉬야를 할 때는 저렇게 엉거주춤 앉아서 한다.

한참을 킁킁 거리며 방뇨할 곳을 찾아다니던 나리가 살포시 엉덩이 들고 앉아 볼일을 보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때,누군가 우리를 스쳐지나가다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뭐지? 싶어 쳐다보았더니 아까의 그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보고는 볼일을 끝내고 촐랑대며 뛰어 오고 있는 나리를 한번 쓰윽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치우고 갈 거지요?" 길게 풀었던 리드 줄을 짧게 잡고 있던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네? 치우다니요? 뭘요? "라고 되물었다.


이미 땅속에 스며들었을 소변을 치우라는 말인가?

산책중에 다시 만난 것도 충분히 거시기 한데


이 얼마나 황당한 시츄에이션 이란 말인가?


할아버지는 자기네들이 언가 굉장한 것을 목격했다는 듯이 옆에 서 있던 할머니와 눈빛을 교환한 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저거 방금 이 개가 한 거 아닌가?" 하는 거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풀숲 가운데 분명, 배출된 지 며칠은 족히 되어 보이는 말라비틀어진 들이 태초의 모습으로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누군가 강아지 화장실을 보게 하고 치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소 , 입고 다니는 재킷마다 나리의 똥 봉지를 넣고 다니는 나로서는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리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햄버거 인형.

그래서 나는,'우리 나리는 지금 소변을 보았던 거다. 똥이었다면 당연히 내가 치웠을 것이다',라고 했고 그런 내게 이 할아버지는 도무지 믿어줄 기미를 보이지 않은 체..

"아니  개가 앉았다 일어나는걸 우리가 다 봤는데.. 당신도 봤지,?" 하며 염장질에 할머니를 동참시켰다.

나는 '아니 강아지들이 앉았다고 다 응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 강아지 들은 요렇게 다리를 옆으로 발랑 들고 오줌을 누지만 여자 강아지 들은 앉아서 한다, 만약 응가 라면 엉덩이가 더 올라가야 한다.' 라며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몸 연기도 마다하지 않고 강아지들의 신체 구조학상 용변 상황을 생중계해 주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도무지 믿지 않겠노라는 뜻을 담아 "치워야지.. 쯧쯧쯧.." 하는 거다.

답답하고 어이없던 나는 예전 응답하라 시절 한국에서 유행하던 화장실 시리즈 중 레전드라고 일컫던 시리즈 하고 떠올랐고 급기야 이렇게 외치고야 말았다.

"할아버지, 똥에 김 나나 봐요!" 우리 나리가 방금 쌌다면 이 추운 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났을 거라고요. 이건 누가 봐도 며칠 된 거예요,우리 것이 아니라고요!!"


요상한 노인들 덕분에? 추운 날 길바닥에 서서 전설의 화장실 시리즈 "에이씨 김나나 봐!" 전투적으로 외치던 민망한 오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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