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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1. 2020

그녀는 예뻤다.

그녀를 만났던 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봄이었다.
바짝 마른 앙상한 가지보다 더 메마르게 여위어 간신히 걷고 있던 그녀는....
표정이 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녀는......
지금 막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색색의 꽃봉오리들이 꽃을 피워 내는 봄이어서 더 그랬던지 그녀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듯했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매일 다양한 병을 가진 아픈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 들과 마주 하게 된다.

크게는 암이나 난치병 또는 불치병 들부터 작게는 감기나 알레르기 배탈 등등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어딘가 아픈 환자 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심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간 내가 만나본 환자 중에 상황이 가장 힘든 사람 중에 하나였다.

몇 년간 암 투병 중이던 환자인데 예후가 아주 좋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일 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필요한 검사를 위해 종종 병원에 왔다.

우리 병원에 오기 전부터 그녀는 아픈 상태 여서 우리는 그 이전 그녀의 모습은 알지 못한다.

그녀의 부서 질듯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과 텅 비어 버린 눈빛은 늘 단정한 모습으로 함께 오시는 그녀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고 힘없어 보이게 했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도 채혈을 할 때도 진료실에서도 허공을 응시한 체 거의 말이 없었다.

언제나 환자의 상태를 알기 위한 필요한 질문에는 마치 통역사처럼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대신해서 이야기해 주었고 우리는 그녀 어머니의 표정과 말씀에서 그녀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홀로 긴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던 그녀의 하얀 얼굴보다 더 하얗게 비어 버린 눈동자를 마주 할 때면 젊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 어머니는 또 얼마나...라는 생각들로 마음 한구석이 늘 무거워 지고는 했다.


희망이 놓는 건 맨 마지막에


그러던 작년 가을 그녀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그해 겨울 그녀는 종합병원 암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그렇게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언제나 단정 하시던 그녀의 어머니도 밝고 씩씩하던 그녀의 남편도 흐트러지고 불안한 모습으로

병원을 오갔다.

모두가 어쩌면 그 겨울이 그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는 듯했다.

단 한 사람, 그녀의 가정의 이자 주치의 인 남편은 그럼 에도 희망을 놓는 것은 맨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는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고 했다.


남편이 병원에서 자주 사용하는 독일 속담이 있다. "Die Hoffnung stirbt zuletzt!"

직역하자면 희망이 (죽는 것은 또는 ) 사라지는 건 맨 마지막에... 나는 그것을 의역해서 이렇게 부른다 희망을 놓는 것은 맨 마지막에...

그런 남편의 환자를 살리 고자 하는 의지와 정성이 통했던지 그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올봄 코로나라는 역병이 세상의 모든 문을 닫고 있던 때에 그녀는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 나듯 차츰차츰 회복되고 있었고 어느 따뜻한 봄날 창가로 민들레 홀씨가 날아들듯 병원 문을 열고 들어 왔다.

함께 걸어 들어오던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잘 걷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발끝에 힘을 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낯빛이 확연히 달라져 마치 다른 사람인양 보였다.


그녀는 예뻤다.


그때까지는 마스크 의무화가 아니어서 의료진들만 마스크를 쓰고 환자들에게는 권유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병원에서는 그녀 같이 오랜 투병으로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는 환자 들은 다른 환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예약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환자 대기 실이 아닌 바로 진료실로 보내 는 방법을 선택했다.

혈압을 재며 마주한 그녀는 마른 낙엽 같던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살이 오른듯한 뺨에 발그레 색을 띠고 있었고 하얗다 못해 텅 비어 버린 듯했던 눈빛에는 생기가 돌았다.

우리는 그날 알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푸른빛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이제는 스스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그렇게 생기로 반짝이던 그녀는 뻤다.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병마와 싸워야 할지, 그녀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이야기 할수 있는 것이 있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리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무엇보다 이번 여름이 그녀에게는 그간의 다른 여름과는 비교할수 없이 특별했을 것이라것을 말이다.


우리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정원에서 따다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달콤 새콤 한 맛의 체리를 먹으며... 그 정원에서 그녀가 더 이상 휠체어가 아닌 정원 의자에 앉아 가족과 함께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볼수 있었다.

내년 여름에도 그 후년 여름에도... 이 체리를 얻어먹으며 그녀의 행복한 시간을 나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작게 읊조려 본다.

희망을 놓는 것은 맨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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