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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5. 2020

독일 법정 에서 생긴일

구글 별은 중요 한가 보죠?


재판 에필로그


며칠 전 글을 하나 올렸다 내 인생 처음으로 독일 법정에 갔다.(이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글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독일에서 겪은 법정 소송 이야기인데 왜 그 소송을 하게 되었는지 발단부터 자세히 적다 보니 글이 그만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재판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빠져 버렸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재판 중에 흥미롭게 느꼈던 몇 가지, 꼭 덫붙이고 싶었던 이야기 들이다. 이번회는 다 끝난 줄 알았던 드라마 끝부분에 다시 나오는 에필로그처럼...


재판은 단 30분 만에 뚝딱 하고 끝이 났다. 그런데 왠지 내가 알고 있는 재판 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판사가 커다란 옷 봉투를 어깨에 둘러 매고 법정 복도에 나타났을 때부터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주섬주섬 꺼내 가게 문 따듯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에서 법복만 둘러 입은 체 녹음기 하나 들고 가운데 앉을 때부터 말이다.

재판이라 하면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판결봉을 간간이 두들겨 대지는 않더라도 뭔가 그와 비슷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그래서 그전날 남편의 양복 윗도리를 손질하며 나는 한복을 입고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어수선하게 가운데 자리로 올라가 앉은 판사는 얼핏 보면 전기면도기 만한 작은 녹음기를 손에 든 체 재판 중간중간에 그 녹음기에 대고 남편이 한 이야기와 그 업체의 변호사 가 한 이야기를 '누가 어쩌고 저쩌고 말했다' 이러면서 중얼중얼 열심히 녹음을 했다. 마치 시험 전날 공부한 것을 외우느라 허공에 대고 중얼 대는 학생처럼..


재판의 시작과 동시에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며 진행하는 판사의 이런 모습은 딱 요런 장면을 연상케 했다.

메뉴판을 들고 와서는 "뭐 드실래요?" 하며 주문을 받으시던 중국집 사장님이 주문 떨어지자마자 하얀색 조리복 급하게 들러 입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한 손에 짜장면 다른 손에 짬뽕 들고 나와서 직접 서빙도 해주시고 따르릉 울려 대는 전화통을 슬라이딩하듯 받아 들고 배달 주문까지 받는... 그 모습에 마침 한테이블 밖에 없던 손님들은 띠용 하고 놀라는 시트콤 같은 장면 말이다.


어쨌든 그 재판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엄숙이니, 숙연이니 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명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에 나오던 발랄한 대사 "전우애는 또 뉘 집 애니?"를  패러니 하자면 숙연이는 뉘 집 딸이니? 쯤 되려나? 그렇게 진행되는 재판 모습에 놀람이 체 가시기도 전에 판사는 남편이 그 업체가 보낸 청구서 와는 큰차이가 나는 다른 회사에 의뢰해서 받은 견적서 등의 증거 자료 또는 참고 자료 들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더니 남편의 다음 말에 태도가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앞서 올린 글에도 나오지만 남편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이런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소송을 재기했다는 것 외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누군가는 정직하게 피땀 흘려 일한 한 시간 의 대가를 받습니다. 그것을 위해 몇 년간 밤잠을 설치며 공부하기도 하고 또 하루 종일 다리가 도록 서서 일하기도 하고 땡볕에 나가 땀 흘리며 일하기도 합니다.그 한 시간의 대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무리 기술자의 기술적인 부분을 높이 산다 하나, 세 시간에 950유로 라면 한시간당 300유로가 넘습니다. 그게 과연 정당합니까?"라고..

남편의 그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 건 상대편 그 구라 팥떡 같은 페인트 업체의 대표뿐만 이 아니었다. 옆에 앉은 그의 변호사 그리고 녹음기를 들고 가운데 앉은 판사도 매한가지였다.


순간 이 멈춘듯 재판장이 얼음이 된후 에 판사는 태도를 바꾸어 상대편에게 청구금액을 조종 하자고 했고 그에 당황한 상대편 변호사는 잠시 휴식을 요청했다.

몇 분의 휴식을 허락받은 변호사와 업체 대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복도로 나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들어왔다.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아니, 동네 꼬마들 축구 경기 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웬 타임~!


몇 분의 휴식이라 쓰고 복도에서 작당 모의 라 읽는 것을 하고 들어온 변호사와 업체 대표는

변호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했다.

청구금액을 깎아 주는 대신에 구글의 그 업체 홈피에 남편이 남긴 평가 별 하나를 지워 달라고 말이다. 아 진짜 이 말 듣고 큰소리로 웃음 터질 뻔했다.


그 업체가 말도 안 되는 청구서를 우리에게 보낸 후 어떤 이유로 이런 액수가 나왔는지 알고 싶다고 남편이 그 업체로 보낸 메일도 편지도 생 시고 대표 전화 조차 받지 않아서 그 업체 구글 홈페이지 평가 란에 남편은 본인의 이름과 함께 조용히 별 하나를 박아 주었더랬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남에게 사기 치시는 분이 구글에 평가 별은 뎁따도 중요했던 모양이다.

변호사 왈 아무런 이유도 쓰지 않은체 별 하나만 주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거다.

사기 치는 건 공정하고? 그 순간 그 업체 대표 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사기 치시면서 구글의 별은 중요 한가 보죠?"라고 말이다 그러나 방청객인 내겐 발언권이 없었고 그저 썩소를 날리며 맘속으로 빅엿을 날려줄 수 있을 뿐이었다.


듣던 남편도 그 별 이야기가 기가막혔던 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럼 이 업체가 같은 동네 있는 닥터 김네 병원에 3시간 페인트칠 해주고 950유로 를 요구해서

기꺼이 별 하나를 드립니다 라고 코멘트를 쓸걸 그랬나요?"라고..

남편의 진심 듬뿍 느껴지는 말에 업체 대표는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했고 분위기가 거시기 해 지자 혹시 라도 일을 그르칠까 싶어 판사는 서둘러 양쪽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옛날 시골 이장 아저씨처럼 "자.. 자..이웃끼리 좋은 게 좋은 거지 잘해 보자고" 하는 투로 말이다.


이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재판 가운데 진정한 코미디가 뭔지를 보여 주시던 판사는 혹시라도 남편이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갖고 항소라도 할까 싶어 노심초사 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업체 쪽에서 청구 금액을 내려 주시고 이쪽에서는 별 하나 달은 거 내려 주세요.그렇게 이번 재판으로 잘 마무리 합시다. 항소해도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러면 소송 비용만 올라가요"

판사는 남편에게 항소해도 결국에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하면 손해이니 항소하지 말고 이대로 잘 합의 보라는 것을 누차 이야기 했다.남편은 개그콘서트에 초대된 배우가 혼자서만 진지한 표정으로 정극을 끝까지 소화하듯 차분하게 마지막 말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재판의 결과가 어떻든 항소할 마음은 없습니다.처음부터 돈이 문제가 아니었고 잘못된 것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나왔을 뿐이니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했고 그 말을 전할 사람도 만났으니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날 남편은 본인이 하고 싶은말 다 하고 왔다고 만족해 했고 변호사 선임 안했어도 충분히 혼자 잘 해냈으며 더 없이 멋있었다.

덩달아 법정이라는 곳까지 따라 가게 된 나의 스트레스와 남의 나라에서 부모 형제..가족들의 지지나 응원 없이 달랑 우리끼리만 겪어 내야 해서 더 서러웠던 마음은 재판 후에 아시아 식품점에 들러 들고온 고향의 달콤한 추억의 간식거리 들로 포근하게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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