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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07. 2020

독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환자 이름


요즘은 하루하루가 자욱한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을 때가 많다.

언제 이 안개가 걷혀 앞이 보일지 저 안개 너머에는 무엇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막막하기만 한 그런 기분 말이다.

어제 날짜로 독일의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는 21000을 찍었다.

숫자만 보아서도 굉장한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병원에서 매일 만나 지는 환자들 중에 확진받은 분들이 줄을 서고 있다. 예를 들어 오빠의 직장 동료 가 확진되어 검사를 받았는데 오빠도 확진 같이 사는 동생과 엄마 아버지도 확진.. 엄마가 증상이 있어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 아빠와 아이들도 줄줄이 확진 아이의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확진되어 아이를 검사했더니 확진이고 온 가족이 확진 이런 경우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지금은 매일이다.


그래서 코로나 검사소도 폭주하고 있고 이제는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 확진을 받을 경우 나머지 가족이 검사받을 것도 없이 그냥 자가 경리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의 질병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RKI에서 새로운 코로나 검사 기준을 발표했다.그에 따르면 학교 교사, 트레이너, 유치원 교사, 간호사 등 의료인 그리고 영업직 외 서비스직의 직원들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 코로나 확진자와 직접 적인 접촉이 있었거나 호흡곤란등의 코로나 증상이 심각한 사람들 그리고 고령의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고위험군들이 우선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RKI에 따르면 조만간 하루 확진자 4만을 바라본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 외에 확진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거나 증상이 있어도 심각하지 않거나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고 직업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사람들은 검사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가,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감염 속도가 붙어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날 이유 없이 번지는 산불처럼...

아무리 공중에서 헬기로 물을 뿌려도 수많은 소방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을 잡으려 해도

마른 벌판에 번져 가는 산불의 무서움을 우리는 안다.

거기에 바람까지 더한다면......

그렇게 지금의 이 아슬아슬하고 속이 타는 순간들이 마치 그 속절없는 자연재해 현장에 서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안갯속을 뚫고 출근을 해야 하고 학교를 가야 하고 우리의 삶을 살아 내야만 한다.


이렇듯 삶이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의 연속일 때 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감사한 것은 작고 소소한 일상의 것들이다.

금요일의 진료 시간에 딱 두 가지가 나를 웃게 했다.

그 하나는 어느 환자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김, 박, 이 씨 성처럼 독일의 가장 흔한 성들은 뮬러, 마이어, 슈뢰더 등인데 그 외에도

그 조상들의 직업을 엿볼 수 있는 가령... 피셔 (어부), 베커(제빵사), 크라우트 부어스트(정육점)등의 독일 성들이 있다. 또는 지역의 이름을 딴 성들도 있다. 우리 친절한 이웃 발름 씨는 발름 슈타트라는 도시의 이름에서 온 성이다.

그런데 어제 만난 환자의 성은 우리 이웃집의 성인 발름 씨 보다 한수 위였다.


그 이름도 적나라 한 발 씨..

그 이름은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발 이였다. 그냥 글자 그대로 독일식 발음으로 발 이였다.

환자 대기실에 있는  씨 에게 심전도 검사를 받으러 가셔야 해요 라고 환자를 불러야 하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 해서 혼났다.

그분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 이름 또한 아무 죄가 없다 단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의 발칙한 욕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쉬발 씨의 심전도 검사를 끝내고 진료실로 안내하고는 도저히 더 이상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직원 휴게실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웃었다.

마치 누가 볼세라 참고 참으며 조금씩 소리 없이 방출하던 가스를 확실히 내보낼 때의 시원함 이라고나 할까?

아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 쉬발...

오늘부로 쉬발 씨는 독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환자 이름이 되었다.


혼자 머리에 꽃 꽂은 여자처럼 미친 듯이 웃다 우연히 발견한 창문 너머 이웃집 나무 위의 다람쥐..

저도 먹고살겠다고 너무나 진지하게 나무 위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먹고 있는 작고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에 또 웃음이 났다.

말랑해진 마음에 이런 작은 일로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웃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나 보다.

러분의 일상 가운데 서도 작고 소소한 웃음들이

햇빛 받아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쌓여 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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