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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07. 2020

딸을 베를린으로 이사 보내던 날  


달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딸내미 위에 떴지!

울 딸내미 어릴 때 업고 자주 불러 주던 노래다.

아이는 자장자장으로 시작하는 보통의 자장가보다 이 노래를 훨씬 좋아했었다.  

아직 말이 서툴던 아기 때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는 못했어도 언제나 등위에서 엄마가 부르는 노래에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어디 어디 떴나?라는 구절이 나올 때면 고 짧고 작은 팔을 하늘에 닿게 들어 올리고는 고사리 같은 손을 머리 위에 얹었다. 마치 딸내미 위에 떴지 라는 노래 가사의 뜻을 지가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다 조그만 입술을 끊임없이 오물 대며 말을 곧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언제나 "또 한 번!"을 외쳤었다. 그렇게 등 뒤에서 엄마의 노랫소리에 꼼지락대다가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까무룩 하고 잠이 들고는 했었다.


예민하고 입이 짧은 편이었던 큰아들은 잠드는 데 까지도 한참 걸리고 깨기도 자주 깼다. 그에 비해 딸내미는 잘 시간 되면 지가 알아서 침대에 들어가 잠들고는 했었다. 그럼에도 간간히 잠투정을 하고는 했지만 말이다.

그 잠투정의 특효약으로는 언제나 작은 아이를 등에 둘러업고 달달 무슨 달을 불러 주는 것이었다.

쟁반 같이 둥근달이 쪽빛 반달도 되었다가 하얀 초승달이 될 때까지 업고 노래를 부르려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칼칼해 왔다. 그럼에도 등에 딱 달라붙어 서는 포동포동한 두 뺨을 비벼 대던 포근한 촉감과 그 꼬물대며 또 한 번! 외치는 소리가 좋아 무한 반복하고는 했다.

그러면 신통하게도 그렇게 업어 재워도 침대에 내려놓으면 다시 깨지 않고 그대로 깊은 밤잠을 자고는 했다.

그 작고 몽실몽실 하던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지난 주말...

베를린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게 된 딸내미는 핸드 케리어 두 개를 밀고 여행을 가듯 이사를 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주말 우리는 딸내미를 카셀 기차역까지 바래다주었다. 가방 하나는 누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센 막내가 들고 나머지 하나는 남자 친구가 들고....

코로나 만 아니었다면....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여유 있게 챙겨서 자동차에 싣고 베를린까지 이사를 해 주고 기숙사 방도 들여다보고 왔으련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다.

당장 필요한 것 외에는 나중에 와서 들고 가던 베를린에서 새로 사던 하기로 하고 최소한의 짐만을 꾸려 이제 혼자 생활해야 하는 딸내미를... 데려다주러 기차역으로 갔다.


우리는 그렇게 딸내미 혼자 태워 보낼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섰다.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가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새부리처럼 뾰족한 마스크를 쓴 체 눈만 빼꼼히 보이는 얼굴을 들어 같은 곳을 응시하며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아 새삼 서글퍼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웃픈 기분으로 도대체 이 지겨운 코로나가 언제나 끝이 나려나....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코로나가 없었던 그 이전처럼 자유로이 어디론가 떠날 수 있고 이런 마스크 따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하는 수많은 생각 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 마주 선 딸내미와 남자 친구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 다 똑같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꼭 부리를 대고 있는 새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웃겼다. 기차역에서 이별이라 하면 보통의 젊은 연인들은 서로 끌어 안기도 하고 뽀뽀도 하는데..

마스크를 쓴 코로나 시대의 젊은 연인은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쩌냐 너네 마스크 때문에 뽀뽀는 다했다!"



딸내미가 타야 할 기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우리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아닌 이별의 카셀 정거장을 찍으며 딸내미를 보냈다. 딸내미의 남자 친구는 가방을 번쩍 들고 기차 안 까지 바래다주겠다며 지가 먼저 기차에 올랐다.

딸내미의 좌석까지 데려다주고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내린 남자 친구는 그럼에도 아쉬운지 눈물 그렁그렁 한 눈으로 기차에 타고 있는 딸내미를 바라보았다.

기차가 출발 신호를 남기며 움직이자 내 마음도 덜컹대며 울렁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딸내미의 남자 친구가 한 손을 높이 들어 두 개의 손가락을 포개어 하트를 마구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나오려던 눈물도 쏘옥 들어가며 다시 입고리가 올라 갔다.

나는 소띤 얼굴로 "어? 그거 할 줄 아네.. 우리 딸내미가 가르쳐 줬구나!" 했다.

역시나 딸내미가 한국 드라마 같이 보며 알려 줬단다. 아직도 손가락에 불나게 하트를 날리고 있는 누나의 남자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막내가 내게 물었다.

"저게 뭐야?" 나는 막내에게 "어 손가락으로 만든 하트야 사랑한다는 암호 같은 거야 너도 나중에 연습했다가 여자 친구에게 날려"


우리는 딸내미를 태우고 베를린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뒤로하고 터덜 터덜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아직 이별의 여운이 체 가시지 않은 슬퍼 보이는 딸내미의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힘내 시간 금세 간다 몇 주 지나면 또 집에 올 때 될 거야 그래도 맘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 다행이지"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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