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과 나
1판 1쇄 발행 2017년 5월 25일
1판 2쇄 발행 2017년 6월 20일
지은이 | 오토나쿨
펴낸이 | 정은숙
펴낸곳 | 마음산책(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3안길 20 우 04043)
편집 | 이승학, 최해경, 김예지, 류기일
디자인 | 이혜진, 이수연
마케팅 | 권혁준, 김종민
경영지원 | 박지혜
- 나중에야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부엌과 살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요리법만 파고 들다가 결국 '기본'이라는 가장 중요한 벽에 부딪힌 겁니다. [서문]
- 살림은 어떻게 보면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부지런함으로 가장한 지겨움과 노동의 끝에 찾아오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문]
- 집의 모든 곳이 그렇겠지만 특히 부엌은 '닦아야 하는' 공간 입니다. 집 안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곳이고, 아주 다양한 성질을 가진 재료들이 뒤섞이는 곳입니다. 상극 중의 상극인 불과 물과 기름, 마른 재료와 젖은 재료가 함께 있고 요리의 대부분은 불과 물과 기름과 마른 재료와 젖은 재료가 섞여서 만드는 동안 부엌은 물과 기름과 재료의 부스러기로 더러워지고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까지 남습니다
부엌에 들어서서 뭔가르 ㄹ하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내면에 잠자고 있는 부지런함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 부지런함의 중심에 '닦는다'는 동사가 있고 거들어주는 명사 '행주'가 있습니다. [22p]
- 냉장고 채우기는 아주 쉽습니다. 사실 비우기가 어렵죠. 가장 힘든 건 어떤 것으로 어떻게 채우느냐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55p]
- 처음에는 이런 걸 만들어 먹는다는 기분에 취해 힘든 줄도 몰랐죠. 어느 날 6시 정시 퇴근을 해서 집에와 저녁을 먹고 전날 사둔 닭 뼈로 육수를 만들었습니다. 네 시간 가스 불을 쓰고, 쓰레기가 된 적잖은 양의 닭 뼈들, 기름 다 걸러내고 만든 육수는 1리터도 안 되었고 부엌 정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그때 든 생각이 내가 과연 무엇 때문에 이 난리를 치는 것인가였습니다. 건강을 위해 '조미료는 내 손으로 다 만들어 쓴다'는 기준에 탄력적이지 못한 나머지 건강과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닭 육수를 만든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30~131p]
- 고수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듣고는 늘 의문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도구를 가장 가려 쓰는 사람이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다 커서야 속뜻을 알게 되었지만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65~166p]
- 나의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면서 만들어가는 나의 살림, 나의 부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독립하고, 살림이 생기고, 세간을 늘려가면서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바라보던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는 살림살이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그렇게 지쳐 있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것이었던 세간을 가지고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유일함과 소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