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애도의 시간을 갖자

망자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

by 핵추남

참담한 사고에 애도를 표하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분들께도

위로를 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사를 치른 날이었다.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

믿기지 않는 사고 소식을 접했다.


이태원은 집에서도 가깝지만 개인적 추억이 많은 곳이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 여러 추억을 쌓았던 곳.

불과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주말 산책을 하면서

옛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다면, 사람이라면

애도를 먼저 표하는 것이 예의다.

그렇지 못하겠다면 제발 아가리 닥치고 가만있어라.

시간을 갖고 망자에 대한 예의를 먼저 취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도리란 말이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불안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왜 그런 데를 놀러 갔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다.

서울 한복판에 놀러 나간 것이 무슨 잘못인가?

그런 곳에서 마저 안전을 걱정해한다면 대한민국 어디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인파가 많은 놀이동산도, 벚꽃놀이도, 단풍놀이도

그 어느 축제나 행사도 가지 말란 말인가.

그런 곳에서 사고가 난다면 온전히 놀러 가기로 선택한

개인들의 책임일 뿐이란 건가.

사고를 당한 분들은 우리의 친구, 동생, 지인일수 있었다.

지금 편안히 이 글을 본다면 우리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공공장소에서의 안전은 지자체와

국가가 1차적 책임자라 생각한다.

제한된 장소에 수용인원이 얼마인지 데이터는 있었을 것이고 임계치가 오기 전 미리 대응할 시스템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이 없거나 작동하지 않았다면 동네 야시장도 함부로 다닐 수 없는 곳이 이곳인 거다.


사고는 정쟁화가 되고 보상금 이야기에 편이 갈라질 것이고 그런 와중에 사고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뒷전이 될 것이다.


사고를 직접 겪은 사람, 현장에 있던 사람, 실시간으로

모든 것을 지켜본 국민들 모두는 트라우마를 겪을 거다.

이런 사고 후에도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열어야 하는 이태원 상인들. 그 장소에 있었단 이유로 죄책감을 지고 갈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우습게 여기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나올 거다. (사고 인터뷰하는 사람들 복장이나 얼굴 품평하는 댓글러들 극혐)


좋은 예상은 늘 비껴가지만 슬픈 예감은 그렇지가 않다.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저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입에서 현장에 놀러 간 사람들의 탓이라는 말이 나오고 특정 세대를 비난하는 소리를 한다.

너무 안타깝다.

다시 말하지만 아닥하고 가만히 먼저 계시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보상금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사례에 정당한 보험금으로도 ‘시체장사’라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지금 돈이 아니라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


위정자는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한다. ‘가해자’가 없으니 ‘피해자’도 아니고 자발적 참여에서 생긴 우연치 않은 사고란다. 사고가 나면 먼저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하고 재발을 방지하도록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개선을 할지를 말해야 한다. 우린 위정자들에게 적극적 발뺌을 하라고 권한을 주고 세금을 낸 것이 아니다. 사고 후 사회는 한 발 더 나아가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안전한 사회로 발전한 거란 믿음은 다시 무너졌다. 각자생존은 비자발적인 필수 선택이 되어버렸다.



안타깝지만 사고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날 수 있다.

그 아픔을 딛고 이기게 하는 것은

나도 사고의 대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사자들을

애도하고 위로하고 과오를 살피고 개선하는 행동이다.


망자를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품격이다.

그러니 뭘 모르면 그냥 잠시라고 유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이 슬퍼할 시간 동안이라도 아가리 좀 닥치고 있자.


2017년 버락 오바마가 흑인교회 총격 사건 이후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amazing grace를 불러

비극을 승화시킨 감동적 연설을 다시 떠올린다.

(비록 오바마가 집권 시절 서민이나 흑인은 삶을 개선하진 못했다. 그러나 이런 연설이 미국의 품격을 높인고 공동의 애도를 만든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https://youtu.be/S58k3ZXRJJc


너무 감정적인 글이 되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비극이다.

모두 시간을 갖고 긴 호흡으로 충분히 슬퍼하길.

제발 시간 좀 지나 이젠 그만 잊자고 지겹다고 말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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