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상사란 희귀자원인가요?
15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니
(이리 오래 회사를 다닐 줄은 취준생 땐 생각도 못 했는데)
다양한 매니저들이 있었는데
꽤나 멋지고 부러울만한 리더십도 있었지만
오늘은 나의 8할을 키운 Bad Bosses가 생각난다.
1. 일주일도 안되는 신입교육을 마치고 회사 회의실에 신입사원 30여 명이 검은 정장을 입고 대기 중이다. 모두 남자였고 이들은 지금 각자의 부서로 배속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마치 유치원생처럼 혹은 군대에서 신병이 노란 마크 달고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마냥 부서 선배 중 막내가 와서 하나씩 데리고 간다.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돈다. 설렘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게 어렵다던 취업의 문을 뚫고 4대문 정 가운데에 있는 대한민국 무역의 역사와 상징과도 같은 회사에 취업한 사람들의 얼굴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나도 그렇게 따라서 다른 층으로 이동한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끝에서 고성이 들린다. 칠판을 긁는듯한 날카로운 음성에 욕과 손가락질.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분 앞에 서있다. 그 뒤에 다른 분들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이 컴퓨터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 제발 저 팀만 아니어라.. .
불안한 짐작은 틀린 적이 없지. 바로 그 팀 앞에서 선배는 걸음을 멈추었다.
며칠이 지나자 열중쉬엇을 하고 팀장 앞에서 욕을 먹는 무리에 나도 동참을 했다. 길게는 한 시간 정도 이어지는 혼남에 애초에 불려간 이유는 잊히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머리를 최대한 비워야 한다.
가끔 팀장 자리 뒤편 창문 넘어 하늘을 보아도 좋다.
그렇지만 그게 길어지면 들통이 나니 팀장의 벨트 정도에
시선을 두자. 너무 바닥을 보고 고개를 떨구면 안 듣고 있냐고 욕을 먹을 수가 있다.
이후의 상황은 과.차장급의 중간 관리자들은 떠나거나 관두고 덕분에 신입사원인 나는 막중한 일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실력이 급상승하게 된다.
그분은 지사에 갔다가 본사로 불려와서 부하직원 밑에서 일을 하게 되는 수모(?)를 당하지만 그 또한 묵묵히 버티어 이후 임원이 되는데. 얼마 못가 잘리고 만다.
2. 첫 팀장의 다다음 팀장은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은 절대 피하고 술 좋아하는 그렇지만 비지니스는 없는 고객과의 술자리에 접대비를 모조리 쓴다. 그렇고는 카운터 파트너와 커피라도 하고 싶다 하면 개인 돈 만 원이 그리 아깝냐고 타박한다. 이런 팀원들이 오죽 불쌍하면 을인 우리에게 갑께서 밥을 사주셨겠나. 접대비가 모자라니 물류협력업체의 법카를 빌려 쓰고 다른 수주로 메꿔준다. 배임이다.
월말에는 그달의 영업실적을 정리하고 남은 회계연도 기간의 예상치를 위에 보고해야 한다. 업황이 좋아 우리 팀이 잘 나가던 때는 늘 자신이 보고서를 받아 가서 직접 상무님께 찾아간다. 업황이 안 좋아지니 월말에는 꼭 자기가 외근을 나간다. 어떻게 보고 할까요?라고 물으면 끝까지 답을 주지 않아 팀원들끼리 상의해 보고서를 완성했다.
어는 날은 이슈도 없는데 출장을 간단다. 내게 출장 준비를 맡기는데 비밀스럽다. 애인과 같이 가야 하니까.
회사에서 연애편지 쓰다 내게 들킨 건 애교다.
이후 어찌저찌 좋은 선진국으로 발령 났지만
불법적인 이슈에 연관되어 사직 후 귀국하지 않고 있다 한다.
3. 매출의 천 원단위까지도 관리하던 상사.
내가 다 해 봤다며 하려는 건 모두 포기시키던 상사.
자기자랑만 한 시간 넘게 하는 상사.
성희롱, 성추행하던 상사.
참 재미난 사람들 많이 만났다.
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데
가끔은 나도 그런 모습을 하고선 자각하지 못할까 두렵다.
‘상사’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가 대부분이 저렇다.
언제부터 이 단어는 부정적이었던 걸까?
우리에게 좋은 상사란 그렇게 희소한 자원인가?
‘상사’라고 쓰고 ‘꼰대’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