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오락실 뒷골목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때는 바야흐로 IMF 이슈도 오기 전. 그러니까 HOT 가 막 데뷔했을 때 즈음일까?
지금이야 서울에 당산동이 2호선과 9호선이 교차하고 한강도 가깝고 선유도도 있고 너도 나도 살고 싶어 하는 동네지만 그때만 해도 공장이 있고 좀 뭐랄까 거친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근처에 살던 우리는 왕왕 당산역을 가고는 했지만 어린 중학생이 늘 친구들을 만나던 거주지역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 그곳으로 가면 약간의 설레는 모험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을 주는 동네였는데.
( 90년대 영등포구)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던 곳이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 간 스포츠 시합이 있었고 전교생은 며칠간 응원을 연습하고 시합에 동원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연고전(고연전)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중, 남고끼리의 시합이니 그 얼마나 지루 했겠나? 게다가 잠실의 스타디움을 빌려서 양 학교의 수많은 남학생들끼리 모이면 언제 서로 봤다고 서로 날을 세우고 그리 긴장감을 만드는지.
아무튼 나와 내 친구는 그런 시합에 1도 흥미가 없었던 지라 어느 순간 슬쩍 자리를 피해서 나와 도망을 친 거라. 무려 두 학교가 일 년에 한 번 하는 행사를 도망쳐서 간 곳이 고작 당산역에 있는 오락실!!!
뭐 순진한 중학생 둘이서 갈 곳이 뭐 그리 많았겠느냐. 그냥 살짝 일탈해본 거지.
각자의 선호하는 게임기 앞에서 조이스틱 옆에 100원짜리 동전을 쌓아놓고 게임 삼매경에 빠졌는데,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고 옆에 대전게임의 상대방은 왜 자리를 뜨지 않는 거지 하고 눈치를 채는 순간, 갑자기 상대방 왈 ' 가만히 앉아 있어라 끌려가서 맞기 싫으면.'
'아 이런.... 잘못 걸렸다... 몇 명이야? 5? 아 그냥 얌전히 학교 행사나 잘 참여할걸 왜 도망은 가서? 그냥 집에나 갈걸 관심도 없던 오락실은 왜 와가지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그분(상대방)의 나지막한 한마디
'얼마 있냐?'
머릿속에는 주머니에 있던 체크카드가 생각나고 그 속에 무려 5만 원 (당시 5만 원!!. 내가 피땀 흘려 모은 5만 원!!!)이나 있다는 게 생각이 났는데 그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 저기 저 쪽에 제 친구가 있는대요? 저는 돈이 없고....... ㅡㅡ;'
세상에 가장 비겁했던 순간이며 잊지 못할 기억.
그렇게 그분과 그분의 지인들은 내 친구 쪽으로 갔고 나는 그사이 카드를 꺼내 양말에 넣었다. 그리고 그분들을 따라가며 나를 바라보던 친구의 두려움에 찬 눈빛....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미안하고 나 스스로가 창피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이랄까.
그렇고 나는 일어서려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잡더니
'너도 나와'.......
골목길에는 남녀 학생 여럿이 있고 내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친구의 시계는 다른 사람 손목에 옮겨져 있고, 뭐 당연히 나도 센타까이고 체크카드도 뺏기고 그리고 웃으면서 우리를 지나가는 그분들.
친구와 나는 몹시 분개하고 자책하며 이런 불공정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내가 그 친구의 존재를 그분(?)들께 알려줬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친구야.... 20년이 흘러서 다시 사과한다.
그때 내가 너를 일러바쳤었다.
비겁했던 나를 용서하렴.
그래도 우리 상처도 없이 큰 금전 피해 없이 그 기억을 서로 곱씹으며 지나서는 웃으며 지냈잖아.
그래서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짐이 커지더라.
친구야... 미안해.
우리 이제 다 큰 어른이니까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