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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May 03. 2023

같은 책 100번 넘게 읽기

자꾸 볼수록 더 재미있어진다

한 권의 책을 100번 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한테 배웠다.


나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호흡하면서 책을 보기 때문에 매번 새로웠다. 집중해서 읽는 페이지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읽어주는 나도 조금씩 다르게 살을 붙여서 읽어주게 되고, 아이의 반응도 조금씩 다르고.


이렇게 책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여러 번 읽어도 보이지 않던 그림 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일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내가 몰랐던 것을 아이가 알려주기도 했다.


펭귄호텔

펭귄호텔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저녁 파티 장면이 나오는데, 그림이 글보다 더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몇 십 번쯤 읽었을 때 아이와 나는 이 페이지에서 떨어지려는 컵을 발견했다. 아이는 그 이후로 이 페이지를 읽으면 "요 놀이할까?"라고 말하면서 떨어지는 물컵을 가리킨다.



 (빵을 들고 있는 펭귄 역할) : 어! 어! 어! 물컵이 떨어지고 있어! 어떡하지? 난 빵을 들고 있어서... 누가 좀 도와줘요!

아이 (슬라이딩해서 물컵을 잡으려는 펭귄 역할) : 제가 잡아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고마워요!

아이 : 잡았다! 잡았어!

 : 휴. 다행이에요. 괜찮아요?

아이 : 아기 물범아 많이 놀랐지?

 (컵을 떨어뜨린 물범 역할로 전환) : 괜찮아요.


왜 몇 십 번을 읽는 동안은 이 재미있는 장면이 안 보였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아이 100일 즈음 사서 꾸준히 읽던 책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책에 있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조금씩 살만 붙여서 읽다 보니까 내가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는 점차 성장했고, 나도 아이와 함께 똑같은 책을 여러 번 보다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그림책을 많이 보다 보니, 나도 아이도 그림을 읽어내는 힘이 커지는 것 같다.


삐악삐악 크리스마스

이 페이지에서는 어떤 것들이 보이시나요? 아이와 백 번 즈음 봤을 때 아이가 나한테 물었다.



아이 : (뒤돌아 보고 있는 삐악이를 가리키면서) 왜 뒤돌아 보고 있는지 알아?

 : 엄마를 부르는 건가? 그냥 뛰어가다가 뒤 돌아본 건가? 모르겠다.

아이 : (아래쪽 분홍색 아기 돼지를 가리키면서) 여기 돼지 친구랑 인사하는 거야!

 : 아~ 정말 그러네. 우와! 관찰력 진짜 좋다! 와하하하 (백 번을 읽으면서 한 번도 자세히 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한참을 신기해하면서 웃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진심으로 열심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무언가를 반복해서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있다. 아이의 한 번 꽂히면 반복해서 하려고 하는 성향을 잘 활용하면 아이의 발달을 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다. 옆에서 함께 해주는 어른의 인내심이 부족해서 아이가 반복해서 하려는 것을 저지하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나는 이렇게 책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던 탈 것 책들은 실제로 300번 즈음 본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같은 책을 계속 읽어야 해서 짜증이 나거나 귀찮지는 않았다. 아이가 계속 책을 읽자고 해서 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계속 책을 읽어주게 되는 것이 힘들 때는 있었지만.)


아이가 원하면 같은 책이라도 기꺼이 100번 넘게 읽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보자. 이러한 마음으로 아이랑 책을 읽다 보면 책 읽는 것이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그림책이 참 많다. 그리고 아이랑 책을 보다 보면 그냥 글씨만 읽게 되지 않는다. 특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아이도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책 내용이 기억에 남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아이가 좋아하는 책 내용을 기반으로 풍부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와 노는 동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의 말주머니가 풍부해지고, 관찰력도 증가하고, 생각하는 힘도 증가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




얼마 전에 광고 영상에서 아이가 책 한 권을 100번 넘게 읽으려고 하는 것이 천재의 독서법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보면 다 기억해야 천재가 아닐까 싶기도 해서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한 것이다. 사실 그분의 의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것은 아니고, 시작하는 문장만 들은 것이라... 다 들으면 나도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글을 반복해서 읽으면 그 내용이 저절로 외워진다. 반복해서 읽기는 무언가를 학습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 의도,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메시지,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 등.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의 독서법이 아닐까 싶다. 하나에 꽂혀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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