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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의 엄마 Jun 15. 2023

책 많이 읽어주면 뭐가 좋아요?

'이 책은 아이랑 백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라고 하면 책을 읽어주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아이 책을 추천해 주면서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의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할 때가 있다.


그럼 난 이런 맥락에서 말해주곤 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될 수 있었어요. 아이한테도 엄마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 말을 좀 빨리 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아무래도 말이 빠르면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고 하니까요. 저는 아이가 말이 좀 빨랐으면 했거든요. 근데 아이가 엄마랑 책 읽고, 놀이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잠시도 여유가 없었어요. 후회는 없고, 아이한테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이렇게 책 많이 읽어주라고 마냥 추천하기가 어렵기도 해요." 


요즘에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 "제가 아이 키울 때는 코로나 시기라 집에만 있어야 했고, 그 시간을 잘 보내려고 하다 보니, 책을 많이 읽어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많이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아이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사실 꼭 책을 읽어줄 필요는 없기는 하다. 아이랑 TV를 함께 보고, 그 내용을 토대로 놀이를 해줄 수 있어도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될 수 있다. 잘 놀아주는 어른이 되는 것의 핵심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지 없는지, 좋아하는 컨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컨텐츠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TV를 보면 금방 어른은 다른 일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TV를 집중해서 보는 만큼 어른이 집중해서 아이의 컨텐츠를 보기가 어렵다. 책도 영혼 없이 읽어주다 보면 활자를 소리 내서 읽어줬는데도 책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안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또 읽어줘! 이거 또 읽자!" 하는 책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 내용이 기억에 남고, 책에 적혀있던 표현을 아이랑 놀 때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책 내용을 기반으로 놀이를 하면 아이와 부모 사이의 거리는 금방 가까워진다. 




여기서 굳이 엄마, 아빠가 아이랑 잘 놀아줄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기 전까지는 부모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경험적으로 세 돌, 네 돌 정도까지는 엄마가 잘 놀아주면 좋지 않나 싶다. 아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로 살아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이렇게 보내면 다른 사람에게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도 없는 아이와의 추억이 백만 개쯤 쌓인다는 것이다.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여전히 아이랑 잘 노는 엄마이지만,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이런 노력을 서서히 게을리할 필요도 있다. 이제 아이를 키운 지 5년이 되어가는 나도 이제는 전보다 아이와의 책 읽는 시간, 아이와의 놀이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또래와의 놀이뿐만 아니라, 게임, 미디어가 육아의 많은 부분에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책을 읽어주면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릴 때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더 후회가 없다. 당분간 책 좀 안 봐도 될 정도로 많이 봤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를 진하게 사랑해 줄 수 있는 시기는 길어야 10년이다. 아이가 글씨는 거의 다 읽지만, 읽기 독립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때까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계속해서 책을 읽어줄 예정이다. 




말을 좀 빨리 하는 것. 이 부분은 내가 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조금은 노렸던 부분이다. 언젠가 기관에 보내게 되면 아이가 기관에서 있었던 일을 잘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한테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하면 최소한 그것을 엄마에게는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려면 무조건 내가 최대한 많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문이 터지기 전 아이에게 엄마가 지속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것도 책이 있으면 가능하다. 일단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가 모두 언어 자극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면 평소에도 아이랑 책 내용에 기반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와! 이거 책에서 봤던 당근이네. 당근은 어떻게 한다고 했지? 뽑아! 뽑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려운 것은 아닌데, 이런 식의 이야기를 거의 하루종일 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책 내용과 나의 지식 기반으로 거의 종알댄 덕분에 남자아이 중에서는 정말 빨리 말을 한 편이다. 우리 아이의 타고난 유전자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타고난 유전자가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게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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