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쿠키, 미래에 하고 싶은 일"
미래의 적성, 내가 무슨 일을 잘할지 미리 보는 시간. 자, 여기 있는 물건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시오. 실, 판사봉, 오만원권, 마이크, 연필, 청진기 돌잡이 용품
6종 세트. 그때 무엇을 잡았었는지 기억하는가. 난 연필을 잡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 세 가지 중에 있을 것이다.
하나,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도 후보가 몇 없다. 확신이 안 선다. 나한테 딱 맞는 일이
언제 어디서 짠 나타날지 모르니까.
둘,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무슨 일을 할 때 기분이 좋고 만족감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최소한 지금까지 겪어 본 일 중에 없었거나 이미 잊었거나.
셋, 있는데 말하기가 부끄럽다. 내 입으로 하고 싶다고 당당히 밝히기 쑥스럽다.
다시 말해, 고민이 덜 된 거다.
"물러도 되니 걱정 마. 바둑돌, 장기돌 뭐든 간에.“
여기 답을 더 쉽게 찾도록 도와줄 힌트가 있다. 학창 시절 클럽 활동이나 동아리에
가입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선택에 고민은 되었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막
지를 수 있었다. 우선 탈퇴가 자유로웠다. 대학 신입생 때 사진 동아리방 앞을 지나다
당일 가입을 했다. 엉겁결에 한 거라 다음 날 흥미가 떨어졌다. 그냥 안 나가면 그만,
손가락을 자를 필요도 없었다.
엄마가 어디 학원 가고 싶니? 라고 물었을 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 수영 또는 피아노, 미술.. 막상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안 해 봤다면 선택이 어려운 게 당연했다.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할까.
결정 장애처럼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결국 피아노, 미술, 논술 학원을 다녔다.
태권도, 검도, 수영은 성인이 되어서 배웠다.
스무 살 겨울에는 화실도 다녔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처음 가본 도시에 가듯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난로 앞에서 흰 캔버스에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게 전혀 지겹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사연은 덤이었다.
지나는 시간만큼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갔다.
스물세 살 태권도를 배우러 간 첫날, 관장님은 내가 창피할까 봐 흰 띠나 노란 띠가 아닌
파란 띠를 주었다. 난 바로 파란 띠가 된 게 기분 좋아 신나게 발차기를 남발했다.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취미였다. 나한테 잘 맞는 취미인지는 막상 해 봐야 알 수 있었다.
"중간에 막 바꿔치기해도 된다."
엄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 상황을 90도 돌려 새로운 면을 가정해 보자.
한 달 동안 무료 체험 코스로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희한하게 선택이 재밌어진다. 난 한 번씩 다 경험해보고 싶을 것 같다.
뷔페도 괜히 안 먹어 보면 손해 같으니까. 그럼에도 한 두 개 종목은 처음부터
기대도 안 할 것이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유혹을 참을 때처럼 먹을까 말까 갈등되는 종목,
아예 마음속에 두세 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체험 후 우선순위가 확 바뀌는 마법이 일어난다. 특히 신기한 게 다른 종목들과
자꾸 비교가 되면서 흥미를 끌리는 게 있다. 이 과정을 난 수집이라고 명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수집하는 것. 느껴지는 기분, 감정, 웃음 하나하나를 모으는 일이었다.
점차 차곡차곡 쌓여 나의 길을 결정하는데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난 공대와 경영대 전공과 별개로 관심 있는 교양 과목을 수강했었다. 철학, 문학, 가정학,
의류학, 공연예술학, 연극, 미술, 인간관계, 상담, 문화콘텐츠, 매너, 호텔, 언어, 벤처, 정치학..
모두 나의 관심분야였고 알면 알수록 어떤 건 더 깊어지고 다른 어떤 건 옅어졌다.
스스로가 낯설 때도 있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때가 그랬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자꾸 새로운 게 나오니까
백 살을 살아도 이런 상황을 계속 만날 거라는 걸,
그냥 인정하고 또 시작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