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불안은 어디쯤일까

by 사랑주니

<리치아빠 님의 글>

https://blog.naver.com/krotc38/224139387981




리치아빠님 글에서

우리가 한때 동경했던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들이 나왔다.

인디아나 존스, 그리고 맥가이버.


어릴 적, 정해진 시간만 되면

나를 TV 앞에 붙들어 놓던 맥가이버.

현실과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고,

괜히 배가 간질거릴 만큼

흥분되던 모험의 세계, 인디아나 존스.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땐 그저 재미였다.

숨도 안 쉬고 따라가던 이야기,

손바닥에 땀이 고이던 장면들.


지금 떠올려 보니

그 주인공들은 언제나 벼랑 앞에 서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그 장면이 그려진다.

채찍 하나, 모자 하나,

그리고 끝을 모르는 호기심.


그는 모험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모험을 끌고 가는 사람이었다.

고고학자였지만

책상 앞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유적지 한가운데서, 위험 한복판에서

몸으로 답을 찾았다.


주먹보다 기지.

무기보다 순간의 판단.

완벽함 대신 어설픈 인간미.


늘 능숙해 보였지만

사실은 매번 간당간당했다.


넘어지고, 당황하고, 실수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서투름이 이상하게 신뢰를 만들었다.



맥가이버는 또 다른 결이었다.

총 대신 클립,

폭탄 대신 껌.

폭력을 최소로 남긴 채

상황을 빠져나오는 방식.


싸우기보다 생각하기.

부수기보다 엮어내기.

힘보다 지식.


'있는 걸로 해내는 사람.'


이 말이 맥가이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 같다.


그래서 보고 나면

왠지 주변 물건을 한 번 더 훑어보게 된다.

이걸로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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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질 때마다

"이번엔 끝인가?" 싶다가도

어찌어찌 빠져나오는 그 과정.

그게 이 이야기들의 진짜 맛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장면들이

단순한 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항상

여기까지인가? 싶은 지점에 서 있었다.


그 한계는 언제였을까.

그때였을까,

지금일까,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떤 순간일까.

그걸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위기와 불안, 이 복잡함을

멈춰야 할 신호로 보기보다

지금 내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장면으로 다시 바라본다.


힘들었다가 괜찮아진 것 같다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감당이 벅차지기도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잔잔할 때조차

위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가

이상하게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엔 단순했던 날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겹겹이 복잡해진다.

아는 게 늘수록 모르는 세계는 넓어진다.


불안해지기도 하고,

배울 게 많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다시 꿈틀거리기도 한다.


이 두 마음이 계속 함께 있다.

정말로 존스와 맥가이버에게도

그 순간들은 한계였을까.


우리에게 이미 지나간 시련들 역시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까.


지금의 이 복잡함도,

나를 멈추게 하는 한계라기보다

어디론가 통과하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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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공통점을 떠올려 본다.

머리를 쓰는 영웅.

완벽하지 않아서 더 믿게 되는 인물.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태도.


이 이야기들이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불려오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유적지 한복판도 아니고

극적인 사건 속은 아니어도,

매일 크고 작은 문제 앞에 서 있으니까.


어쩌면 한계라고 불렀던 순간들은

그 자리에 있을 땐 정체를 알 수 없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나를 지나가게 만든 장면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리치아빠님 글 덕분에

잠시,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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