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현재, 아주 좋은 말이다

by 사랑주니

현재를 잘 산다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를 충실하게."

아주 좋은 말이지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말라는 뜻이니까요.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던 시절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가정에 마음을 다 쏟던 때 역시

나름대로는 온 힘을 다해 충실했고요.


그렇다면 그때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성실히 했는데, 왜 어딘가 어긋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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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어르신들도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우리는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냈는데

왜 그게 잘못이라고 하느냐."

라고요.



여기서부터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치열하게'와 '충실하게'를

얼마나 구분하고 있을까요.


말로는 구별이 쉬워 보이지만,

정작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그 둘을 또렷하게 나누기 어렵더군요.


그때도 나를 위해 살았고,

지금도 나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옳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매일 써라",

"1일 N포스팅",

"팔로워를 늘려라."


블로그를 보다 보면

같은 말들을 접합니다.

매일 쓰라는 조언은 물론 저 역시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유를 충분히 묻지 않은 채

숫자와 속도에 모든 힘을 쏟는 건

과연 내게 맞는 선택일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주겠지요.


오늘의 나를

미래의 내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테니까요.


마치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듯이요.




성실하게 산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 말이 내 삶에 닿아 있기를 바라고요.


다만 요즘은 그 최의 결이 무엇인지,

내게 맞는 리듬과 밀도가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유를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일단 해라.", "일단 쌓아라."

라는 말 앞에서 자꾸 멈칫하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요즘

하루에 다섯 개의 글을 씁니다.


이 역시 나만의 이유와 흐름 속에서

선택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은 맞는 선택이라고 믿지만

내일 돌아보면

다른 판단이 될 수도 있겠지요.



나에게 다시 묻습니다.

오늘 나는 얼마나 나다운 하루였는지.

오늘의 나는, 내게 설렘을 주었는지.


하늘의 흐름은 어땠는지,

오늘의 공기는 어떤 감각이었는지,

아이들의 눈빛,

내 몸이 보내던 신호는 무엇이었는지.


이런 사소한 감각들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해야 할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의 다른 부분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그 지점을

조금 더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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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또 여기까지 왔네요.

아마도 내게 맞는 잘 산다는 감각을

천천히 익혀가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기준은 계속 움직이니까요.


그래서 말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지금에 집중하라,

흔들리지 말라,

결과를 받아들여라.


그 말들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잘 산다는 건

각자가 선택한 방향에서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나는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보다

'이 마음이 정말 내게 맞는가.'

를 더 바라보려 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태도의 충실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그 질문을 안고

오늘을 마무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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