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아이〔박경리 토지 완독 챌린지〕44일차

by 사랑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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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그만큼 은전이 있다면 첫째로 삼월이한테 주고 싶어. 그러면 삼월이는 애길 데리고 도망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얼굴에 멍도 안 들고 목에 피딱지도 앉지 않을 거야. 왜 어머니는 삼월이를 노상 때릴까? 이젠 아기 낳은 어머니인데 말이야.’

하다가 병수는 무슨 다른 재미나는 생각이 없을까 하고 눈을 멀리 보낸다.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가 새롭고 신기하다. 맑은 자연과 마주하고 있으면 샘처럼 온갖 공상이 솟아나 그를 즐겁게 해준다. 슬픈 일을 생각할 때도 슬프지 않다.

‘내가 어째 서희한테 장가를 든단 말이냐? 나같이 병신 계집 애가 있다면 내 색시 삼아서, 눈물도 닦아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맛난 복숭아도 따다 주고 또오 또오……’

하다가 얼굴을 붉히고 혼자 웃는다. 담장 구멍으로 별당의 뜰을 들여다본 그때의 창피스럽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지 않기로 길상에게 약속을 했으나 그곳에 가고 싶고 몰래 서희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박경리 토지. 4편 5장 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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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5장에서는

조준구의 아들 병수가

어떤 아이인지가 드러난다.


병수는 상처를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 아이처럼 보인다.

맞을 걸 아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정이 먼저가 아니라 몸이 먼저 위축된다.


병수에게 돈은 가치가 아니라 위험물이다.

은전은 ‘쓰는 것’보다 ‘들키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도 병수는 보호를 상상한다.

나에게 은전이 있다면

삼월이에게 주고 싶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


사랑보다 먼저 ‘보호’를 떠올리는

아이의 순서다.


“슬픈 일을 생각할 때도 슬프지 않다”는

말은 무감각에 가깝다.

버티려고 감각을 낮춘 상태다.


병수는 공상으로 숨는다.

자연을 보면 공상이 솟는다는 말은

현실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상상뿐이라는 뜻이다.


서희를 떠올릴 때도 ‘장가’라는 말로

희망을 우스개처럼 포장한다.


자존감도 말에 붙어 있다.

“나같이 병신”이라는

자기 규정이 먼저 나오고

사랑은 그 뒤에 따라온다.


병수의 마음은

늘 한 발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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