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두 번째 초고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1년 전 쓴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첫번 째 책을 출간한 직후,
친구가 보내준 긴 메시지를
그대로 옮겨 적었던 글이었어요.
화면을 내리며 읽는데,
그때의 공기까지 같이 올라오더군요.
직장 생활의 고단함,
마음이 흔들리던 시간,
‘내가 잘 가고 있나.’ 확인하던 얼굴.
그걸 알아주고 격려해준 친구의 메시지.
글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울컥했고,
잠깐 멈췄어요.
살다 보면 다독임을 받는 순간이 있습니다.
“괜찮아질 거예요.”
“잘하고 있어요.”
“지나갈 거예요.”
그런 말들은 분명 힘이 됩니다.
어떤 말은 유독 더 깊이 들어옵니다.
그 말이 ‘진실로 아는 사람’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오래 지켜본 사람의 말은 다르게 닿더군요.
제가 힘들었던 시절을 알고,
흔들리던 시간을 알고,
버티던 표정과
무너진 날들을 기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건네는
“많이 달라졌어.”라는 한마디는
듣기 좋은 격려를 넘어섭니다.
그 말은 감상이 아닌, 증언이 됩니다.
1년 전 그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울컥했던 이유도 바로 그거였습니다.
친구는 예전의 저를 잘 알고 있고요.
제가 어떤 방식으로 버텨왔는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의 격려가
예쁘게 포장된 응원이 아니라,
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말로 들어왔어요.
‘괜찮다.’라는 말보다,
‘당신이 걸어온 길을 내가 안다.’라는 말이
깊게 남았습니다.
관계는 그래서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함께 오래 있었다는 건
추억이 많다는 뜻을 넘어
변화의 간극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무엇이 저를 무너뜨렸는지,
어떤 날들을 통과해 왔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의 저를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는 이상하게 과장되지 않지요.
예의상 던지는 칭찬처럼도 들리지 않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달래는 말처럼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괜찮지 않았던 때를 봤고,
그래서 지금의 괜찮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말 앞에서
저는 비로소 제 변화를 믿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혼자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내가 나를 의심할 때,
“제가 그 시간을 지켜봤거든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때 사람은 자기 삶을 한 번 더 붙잡아요.
다독임은 꼭 길고
다정한 문장일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지나온 걸 저는 알아요.”
라는 짧은 말이 더 큽니다.
그 말 안에는 시간도 있고,
기억도 있고, 함께 견뎌낸 마음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지켜본 사람의 한마디는
그래서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과장하지 않고,
함부로 다독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알아봐줍니다.
그 알아봐줌 앞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
관계가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제가 지나온 시간을 진실하게
기억해주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 전 그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초고도,
그런 시간들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요.
오래 지켜본 친구가 건네준 한마디 덕분에,
오늘도 저는 다음 문장을 씁니다.
친구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