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잘 알아.” “아니야, 넌 널 몰라.”

by 사랑주니


“내가 나를 잘 알아. 그러니 내 병도 내가 잘 알지. 내가 아픈지 병원 가야 하는지 알아서 할게.”


아빠도, 남편도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괜히 하소연하자면, 그래서 남자들에 대한 편견이 살짝 생기기도 했다. 가만히 보면 꼭 남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 역시 나를 잘 안다고 믿으며 살았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쉽게 믿는다.


하물며 부부 싸움 중에도 “내가 당신을 잘 아는데.”라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지 않나. 오래 함께 산 사람을 두고도 “내가 당신을 잘 알지.”라고 말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더 쉽게 그 확신을 준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여기는 것, 특히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 나는 그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정작 내가 나를 가장 모른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꼭 오십 이후의 인생 준비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면 준비가 먼저여야 한다.


그 준비의 출발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흔들리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정할 수 있으니까.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촘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이 왜 오래 남는 명언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평생 나를 다 아는 데 도달하지 못한 채, 계속 나를 알아가는 여정 속에 사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건 어쩌면 나를 다 아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그 시작이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 그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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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인정이 어렵다. 사람 안에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두터운 착각의 벽이 있다. 나는 괜찮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벽 말이다. 그 벽이 한 번 세워지면, 사람은 오히려 더 분명하게 자기 확신을 쌓아 올린다.


그런 모습을 많이 봐왔다. 돌아보면 내 안에도 그런 벽이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여기서부터는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다면, 적어도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차리는 것. 그러면 비로소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있어야 나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려면,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아마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자주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내가 믿어온 나는 진짜였을까.’


그 막힘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건 비로소 겉이 아니라 안쪽을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사람의 본질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니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었으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살았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쉽게 단정하지는 않게 됐다. 그 변화가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나를 안다는 건 완벽한 해답을 갖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계속 묻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 질문이 쌓일수록 삶의 방향도 조금씩 선명해질 것이다. 결국 인생을 준비하는 건 나를 알아가는 일.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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