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꽉 찬 엔팍, 그러나 불안한 미래

과연 연고지 이전은 현실성이 있을까?

NC 다이노스를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창원NC파크가 종종 그립습니다.

다시 돌아온 엔팍에서 열린 주말 낮 경기에 오랜만에 관중으로 꽉 찬 모습을 보니…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어제(5월 30일) 있었던 구단 발표를 떠올렸습니다.


https://youtu.be/UqIbErKxDbI?si=bCK4Exjg75T3OLwP

NC 다이노스의 연고지 이전 가능성 발표를 주제로 한 방송입니다.


처음엔 놀랐고, 곧이어 수긍이 됐습니다.

“오죽하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시즌 초 있었던 불행한 사고와, 그 이후 2개월 넘게 이어진 타지 생활. 그 과정에서 구단은 아마도 모든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심했을 겁니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 ‘이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건, 더 이상 엄포만으로 끝낼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놀란 창원시는 부랴부랴 노력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과연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지방 공업도시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경험한 창원시 정치인들은 프로야구가 지역 경제와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공무원들도. ‘케바케’였죠.


당장 떠날 곳은 없지만, 머물 이유도 줄어들고 있다


지금 당장은 NC 다이노스가 떠날 ‘실질적인 대안’이 없습니다. 현재는 시즌 전체를 소화할 수 있는 프로야구 전용 구장이 아무 곳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구단 유치에 성공한 미국 도시들의 사례를 보면,

“오면 지어줄게”가 아니라 “짓겠다고 선언하고 유치에 나서는 도시만이 팀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계획은 실행되지 않으면 허상일 뿐이고, 현실화되지 않는 약속은 구단의 선택을 끌어낼 수 없습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20년 넘게 연고지를 추진하다 결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최신식 경기장을 지어주기로 확정하며 연고지 이전 발표를 했습니다. 아직 경기장을 지으려면 멀었지만 2025 시즌부터 SF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습니다. 오클랜드시의 행태에 넌덜머리가 난 것이지요.

탬파베이 레이스 역시 오랜 기간 최악의 입지에 메이저리그 유일한 폐쇄형 돔구장인 낙후된 트로피카나 필드를 탈출하고 싶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중 레이스는 2024년 10월에 초강력 허리케인 밀턴이 홈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의 막구조 지붕을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올 시즌은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치르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으로 열악한 연고지의 두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상황을 설명한 제 강의 자료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결국 어슬레틱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새야구장을 짓기로 약속하며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했습니다. 반면 레이스는 허리케인에 지붕이 모두 찢어져 마이너 구장에서 경기를 합니다.


https://namu.wiki/w/애슬레틱스/연고지%20이전%20과정


요즘은 단순히 좌석 수만 채운 야구장으론 부족합니다.

사용할 구단의 운영 방식과 팬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설계, 주변 인프라와 교통 조건, 지역 활성화 계획까지 하나의 비전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지금 거론되는 후보지들, 충분하지 않다


현재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몇몇 지자체의 야구장 후보지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하나같이 규모가 작고, 여전히 80~90년대 스타일의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교통 여건이나 생활 인프라가 창원보다도 열악합니다.


그렇다고 창원시가 “어차피 떠날 데도 없잖아”라며 안심하면 곤란합니다.

구단이 실제로 연고지를 옮긴다면, 그 여파는 단지 정치인의 낙선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쇠락하는 도시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 수도권이나 잠재력 있는 도시가, 좋은 입지를 확보하고 최신식 야구장을 지어 유치에 나선다면…

그땐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릅니다.


울산과 성남은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 창원시가 진해 육군대학 부지로 야구장 위치를 발표할 때부터. 유심히 살펴봤던 도시 중 하나가 울산입니다. 10년이 넘었으니 밝히지만 당시 울산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출장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위치의 야구장은 규모도 작고 접근성도 매우 떨어집니다.

울산의 경우, 공장은 동쪽, 주거지는 태화강 남쪽에 몰려 있기 때문에, 야구장을 새로 짓는다면 지금의 외곽이 아니라 삼산운동장을 재개발하거나, 태화강 남쪽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곳과 인접한 부지에 신축을 검토해야 지속적인 흥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야구팬 상당수가 승용차 혹은 통근버스로 움직이는 근로자 가족 단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족이 함께 경기장에 오고, 쉽게 귀가할 수 있는 위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성남시 역시 2028년 개장을 목표로 기존 성남종합운동장을 야구장으로 개보수하는 발표를 했습니다.

NC 다이노스의 모기업인 엔씨소프트의 본사가 성남, 판교에 있기에 팬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기존 육상경기장인 종합운동장의 구조를 유지하며 지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철거하고 신축하기 전엔 프로야구장으로는 부적합해 보입니다.

위치 역시 구도심인 모란역과 수진역 사이에 위치했다 해도 아래 조감도에서도 보이듯 주택가가 바로 옆에 있고 주차장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인구가 많은 분당, 판교, 서울 송파 쪽에서 접근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진짜 성남시가 프로야구팀을 유치하고 싶다면 다른 부지에 신축하는 제안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남시가 발표한 야구장 건립 계획 조감도. 기존 성남종합운동장을 개보수하는 방식으로 한계가 뚜렷합니다.


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니다


이 글을 창원시 관계자들이 직접 보진 않겠지만,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야구장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닙니다.

도시의 정체성이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지역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인프라입니다.

구단을 지키는 일은, 곧 도시의 미래를 지키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P.S.

오늘도 중계 화면 너머로 본 가득 찬 창원NC파크.

선수들의 에너지, 팬들의 함성, 같이 일하던 동료들, 협력업체 직원들, 야구장 주변의 상인들, 구수한 마산 사투리…

지금도 그곳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