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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날고 있어!" 땅에서...

<F1 더 무비> 2번 본 감상기

두 번째가 더 좋았던 영화


최근 새로 생긴 영화관인 메가박스 구의 이스트폴에서 <F1 더 무비>를 두 번째 봤습니다.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제가 이미 본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더 좋았던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두 번째가 더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일단 극장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리클라이너관이었는데 발받침이 없어서 좀 불편했습니다. 스크린은 작으면서 조금 어두웠고 음향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 메가박스 구의 이스트폴의 돌비비전+돌비앳모스 관은 스크린도 그보다 크고 선명하면서 무엇보다 돌비 앳모스의 압도적 음향이 F1 트랙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줄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 빠른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느라 놓쳤던 장면들과 대사, 감독의 의도를 두 번째 보면서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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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를 너무 잘 만들었다


사실 F1 더 무비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고 결말은 예측 가능합니다. F1 판 탑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설정이 비슷합니다. 한때 최고였고 규칙을 따르지 않던 천재였지만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던 베테랑이 꼴찌팀에 합류해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숙하고 오만한 루키를 이끄는 이상적인 선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섹시한 남자 주인공에, 전투기와 F1 머신이라는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힘과 스피드까지. 중년 남성들의 로망 그 자체입니다. 감독조차 <탑건: 매버릭>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었으니 뻔한 이야기라는 말이 나올만합니다. 하지만 코신스키 감독은 이렇게 클리세 가득한 이야기와 예측 가능한 결말을 가지고 너무나 몰입감 있으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때 최고로 촉망받던 젊은 F1 드라이버였던 소니 헤이스는 한순간의 욕심으로 사고를 당하고 한동안 운전대를 놓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드라이버지만 임시 드라이버로 대회마다 옮겨 다니며 낡은 밴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동료였던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이 찾아와 다시 F1에 복귀하기를 권합니다. 루벤은 현재 승점 한점 못 따서 팀이 매각될 풍전등화의 운명에 몰린 APX GP 팀의 수장으로 한자리가 비어있는 드라이버 자리를 제안한 겁니다. 나머지 한 명도 신인이라 이번 시즌에서 우승을 못하면 팀이 매각될 위기죠.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인 소니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팀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바꿔 나갑니다. 자신을 경계하고 꼰대 취급하던 천둥벌거숭이 루키 드라이버도 점차 성숙해지고 선배로서 존중하게 되면서 성숙해집니다.

경주 장면이 당연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인물들의 갈등과 해소 과정 역시 균형 있게 잘 배치했습니다. 이 과정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감각적으로 연출하면서도 인물들의 내면도 잘 표현해 냈습니다.


20250627154528_2191660_1200_633.jpeg 루키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와 베테랑이지만 임시 드라이버인 소니 세이스는 초반에 사사건건 부딪칩니다.


F1을 잘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사실 저는 F1을 잘 모릅니다. F1은 자동차라고 안 하고 머신이라고 한다는 것과 최고 300km/h를 넘는 최고의 자동차 경주라는 것, 루이스 해밀턴 등 유명한 드라이버 이름 정도만 아는 정도입니다. 규칙은 더더욱 모르고요.

이 영화는 저 같은 사람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중간 사고가 나거나 페널티를 받을만한 상황이 되면 중계 캐스터의 중계 멘트나 팀원들의 대사를 통해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예를 들어 차량이 부서져서 도로에 파편이 나돌 때 어떤 깃발을 올라가고 그러면 모든 머신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 식으로 해설하듯이, 때론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알려줍니다. 그래서 복잡한 규칙과 고도의 전략을 이해 못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상대성이론을 몰라도 이론의 개념 정도는 알게 해주는 <인터스텔라>처럼 말이죠.

드라이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미캐닉과 엔지니어, 전략회의 등도 소홀하지 않아 F1이 팀 스포츠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대한 돈이 움직이는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의 화려함과 이사회의 흑막도 빼놓지 않아 흥미로운 요소가 많습니다.


영화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인 베테랑과 루키 사이의 기싸움과, 선배를 싫어하다가 서서히 닮아가며 성장하는 루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그려냅니다. 매각 위기의 레이싱팀과 매각을 둘러싼 음모도 나오고 주인공의 로맨스도 적당히 버무려집니다. 그렇다고 당연히 핵심인 레이싱 장면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벌어지는 여러 나라의 풍광과 화려한 경기장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의 화려함 등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저는 F1을 잘 모르지만 F1 전문가와 팬들까지 모두 최고로 찬사를 보내는 영화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 F1 팬이 될만한 영화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를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야말로 복잡하지 않아서 따라가기 좋은 이야기에 풍부한 볼거리를 가진 올해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빵형은 환갑이 넘어도 여전히 멋지다


이 영화는 탑건의 톰 크루즈처럼 브래드 피트의 매력으로 끌고 가는 영화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특유의 미소를 띤 남성미에 반항기가 있는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는 브래드 피트의 매력을 잘 살렸습니다.

톰 크루즈처럼 직접 머신을 모는 노익장을 발휘했는데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영화 촬영은 F2 머신을 F1처럼 개조해서 찍었다고 하지만 까딱 브레이크를 늦게 밟으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실제로도 F1 머신도 몰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전에 너무나 재밌게 본 레이싱 영화인 <포드 V 페라리>의 주인공으로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를 추진하다가 촬영이 미뤄지면서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했는데요. 만약 F1 머 무비의 주인공을 다시 골랐다면 톰 크루즈보다 브래드 피트가 더 어울렸겠다 싶을 정도로 브래드 피트 아니면 맞는 주인공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딱 맞는 역할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탑건: 매버릭>의 톰 크루즈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점이 있습니다. 톰 크루즈는 이미 전설적이면서 너무나 완벽한 조종사로 나오는 반면 브래드 피트는 완벽한 드라이버가 아닙니다.

실력은 최고지만 젊은 시절 사고로 드라이버를 그만두고 한때 프로 도박사로 살고 택시기사 생활도 했으며 지금은 떠돌이 드라이버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만 여전히 반항기 있어 보이고 경쟁심도 대단합니다. 경주를 앞두고 불안해하며 카드를 뽑아 보지도 않고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든가 우승 트로피를 절대 만지지 않는 징크스도 있습니다. 툭하면 사고 장면의 악몽을 꾸다 깨어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젊은 시절 겪은 사고로 인해 드라이버에 적합한 몸도 아닙니다. 하지만 뭔가 결핍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는 주인공은 오직 운전을 하다 죽어도 좋다는 자세로 모든 트라우마를 감춘 채 매력적인 웃음과 실력으로 하나 둘 주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커다란 돈의 유혹도 뿌리치고 의리를 지키는 멋진 남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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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짐머의 음악은 위대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영화를 두 번째 본 이유 중 제일 중요했던 건 바로 음악과 음향이었습니다. F1 머신에 타고 있거나 트랙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생생한 음향과 가슴을 뛰게 하는 저음의 비트는 정말 좋은 음향의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스 짐머의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합니다. 탑건의 항공모함에서 함재기가 이륙할 때 나오던 Danger Zone이나 기타 연주가 너무나 멋진 Top Gun Antheme처럼 주제곡 'F1'은 심장박동을 2배는 올려줍니다.


https://youtu.be/YhX_Woa3kVA?si=cwej74RuOxJBOXh3

한스 짐머의 주제곡 'F1'


애플의 욕심은 진심이다


이 영화는 애플이 투자하고 제작했습니다. 원래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을 때부터 그래픽에 진심이었고 픽사를 인수하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이팟과 iTunes는 애플이 음악에도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 수 있죠. 상업적으로 잘되고 있지는 않지만 애플TV+에는 작품성이 뛰어나고 화질도 뛰어난 오리지널 영화와 드라마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영화에 대한 진심이 걸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플라워 킬링 문(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도 애플이 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와의 차이라면 애플은 이런 대작 영화들은 극장개봉을 전제로 만든 뒤 시간이 지나서야 애플TV+에 올립니다. 넷플릭스 때문에 극장이 망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에 애플은 극장이란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TV가 아무리 좋아져도 극장에서 보는 정도의 몰입과 음향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애플의 이런 자세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엔 소니와 공동으로 아이폰 부품을 이용해 만든 카메라를 머신에 부착해서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선 관객이 조종간을 잡고 직접 운전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F1 드라이버들의 놀라운 실력과 반사신경, 집중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현역 최고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이 적극 참여했고 지금까지 레이싱 영화와는 달리 실제 레이싱의 느낌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https://ebadak.news/2025/06/13/f1-apple-movie-strategy-tim-cook-lewis-hamilton/


https://youtu.be/UaklCDha5-I?si=jjsj9FWJSnI-RMKP

Making of F1: the Movie - 촬영 비하인드 영상입니다. 차량에 카메라를 부착해 역동적인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 네 번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다시 보고 싶고, 2번 보고 더 좋았던 영화는 얼마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두 번째가 훨씬 좋았고 세 번, 네 번 보고 싶어 졌고 나중에 애플TV+에 공개되면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더 나아가 넷플릭스 시리즈 <F1: 본능의 질주>도 정주행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탑건> 시리즈와 <포드 vs 페라리>처럼 보고 나서 계속 여운이 남는 영화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가능하면 큰 화면과 좋은 음향을 갖춘 극장에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남자라면 재미없을 수가 없는 영화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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