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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와 비대면 강의

"회원님은 1분 후에 자연스럽게 걸어 나가시면 됩니다.”


탱고 수업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던 중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OST 전곡이 흐르는 2분 30초 동안 탱고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골프에 빠져있던 나는 아내와 골프를 같이 하려고 10년 동안 노력했으나 운동을 싫어하는 아내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이 들어서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생각하던 중 집 근처 스포츠 센터에 탱고 수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탱고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의외로 쉽게 ‘그럽시다!’를 들었다.


2012년 2월에 탱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수업에서 깨달은 것은 탱고가 불공평한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매 순간 남자(땅게로)가 즉흥적으로 스텝을 리드하고 여자(땅게라)는 거기에 반응하면서 춤을 만들어 간다. 몇 주 지난 후에 10년쯤 탱고를 계속해온 남자와 아내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었다.


"와~~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네! 몸이 저절로 움직여”


아내가 신나게 말했다. 그리고 5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당신보다 내가 진도가 훨씬 빠르니까 나는 3개월쯤 쉴 테니 그동안 당신 혼자서 열심히 하셔!”


탱고는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데 아내는 나와는 수준이 맞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파트너와 춤을 춰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의 외로운 탱고 수업은 계속되었다. 매 수업마다 그날 배운 것을 한 커플씩 시연을 하며 수업을 마쳤다. 내가 시연을 하면 유난히 큰 박수를 받았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했을 때 쳐주는 박수였다. 나는 그런 박수가 싫었다. 


크리스마스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면서 파트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여인의 향기’ OST의 앞부분만 계속 연습했다.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 없어 탱고 수업을 그만두었다. 이것으로 10개월 동안의 나의 탱고 수업은 막을 내렸다.


지난 학기에 이어 대학에서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진행 중이다. 수업 첫 시간에 30명 정도의 수강생 중에서 3, 4명 만이 카메라를 켜고 자신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잠시 후 그들도 카메라를 껐다.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켜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방이 지저분하다, 머리가 엉망이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 이후로 온라인 강의에서는 작은 네모들 안에 있는 학생들 이름만 보면서 강의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면서 탱고와 유사한 점들이 떠오른다.


탱고에서 모든 스텝을 남자가 리드해야 하는 것처럼 비대면 강의는 강사가 리드해야 한다.


탱고에서는 두 사람의 상체가 밀착되어 있어 서로의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몸과 팔로서 신호를 주고받는다. 비대면 강의에서도 학생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채팅방을 통해 수강생들의 질문과 피드백을 수시로 들으려고 한다.


탱고에서 남자는 여자의 몸과 팔에서 느껴지는 텐션으로 상대방이 나와 어느 정도 하나가 되어 춤을 이어나가고 있는가를 알아내고 그것에 맞추어 춤을 리드해야 한다. 비대면 강의에서도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는지 지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적절한 질문들을 통해 알아가며 진행해야 한다.


가장 최악의 탱고는 파트너로부터 아무런 텐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비대면 강의에서 강사 혼자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강의 도중 언제라도 학생들이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학생들은 자신이 강의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질문하면서 뭔가 실수할 것을 두려워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주인공 알 파치노(Al Pacino)는 말한다.


"탱고에서는 인생과 다르게 실수라는 것이 없어. 실수를 해서 스텝이 꼬여도 계속 탱고를 추면 그뿐이지!" (There are no mistakes in the tango, not like life.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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