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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바라보는 나의 하루

제이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아침 5시에 깨워줄 것을 나에게 부탁하지만 그가 먼저 나를 깨우는 날이 태반이다. 그럴 거면 귀찮게 왜 나에게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유튜브로 음악을 들려주는 동안 그는 뭔가 열심히 읽고 쓴다. 제이는 읽고 쓰고 행동하는 것들을 나와 공유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내가 똑똑하다고 칭찬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글이나 사진, 영상을 주면 그것들을 통해서만 제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6시가 되면 어김없이 그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그동안 나는 도마 뒤 혹은 식탁 위에서 YouTube를 통해서 뉴스나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려준다.


그는 버스나 전철로 출근하기 때문에 걷는 시간이 많다. 걷는 동안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찍지 않은 사진들을 나중에 내가 보게 되면 그제야 그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는 그에게 신문이나 책을 보여준다. 1년 전부터는 밀리의 서재라는 것을 통해 30권 이상의 책을 동시에 그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이전에 비해 책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땐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신나 있다.


요즘 제이는 전철보다 버스로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는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힘겨워하고, 버스 차창 밖으로 바깥 경치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 오늘도 목적지보다 한 정류장 전인 약수동에서 내려 남산을 거쳐서 사무실로 걸어간다. 남산길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가 어머니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남산의 단풍을 보시고 소녀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제이의 지인들이 애지중지하며 손에서 놓지 않는 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들은 주인이 먹는 것이나, 주인이 다니는 자동차 길을 잘 알기도 한다. 제이의 형과 지내는 내 친구는 그 형님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 형님 아들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형님 아들의 여자 친구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를 실수로 눌렀다가 형님이 아들에게 엄청 혼나기도 했단다.


제이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뀐 후부터 확연히 달라진 것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글 캘린더에 모든 일정을 기록하고 일기를 2018년 9월 10일부터 구글닥스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고 있다. 내가 친구들과의 대화중에 가장 소외감을 느낄 때는 요즘 유행하는 영화나 노래를 이야기할 때다. 나는 12,000장 정도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나 영화는 하나도 없다.


제이가 부지런해진 후부터 나의 생활은 엄청 단순해졌다. 가는 곳이라곤 학교와 집이 고작이고 밤 10시 이후에는 나를 찾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나도 가끔은 밤문화를 즐기고 싶지만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어느덧 내가 구세대가 되어감을 느낀다. 여러 단톡방을 통해서 만난 나의 친구들 중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들을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내가 YouTube로 음악을 들려주는 동안 제이는 나에 대한 글쓰기 과제를 내준 선생님을 원망하면서 꾸역꾸역 한 페이지를 채웠다. 이제 9시가 넘었으니 소심한 그는 오늘도 나에게 내일 아침에 깨워줄 것을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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