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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말

다름을 만드는 방법

"어서 오세요!"

"저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서울에서 3시간 이상 운전해서 도착한 순천 꼬막집에서 낯익은 장면을 마주했다. 너무나 서울과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식당 종업원들이 대부분 완벽한 표준말을 사용하고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남도 음식처럼 그다지 짜거나 맵지 않았다. 좌석도 세련된 테이블 위주로 되어 있었다. 이 집만 그런가 했다. 저녁이 되어 호텔 부근 유명 횟집을 찾았다. 그곳 종업원들도 표준말을 사용한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종업원에게 서울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서울말은 단답형만 할 줄 안다면서 웃는다.


"오랜만에 전라도 사투리를 듣고 싶었는데 모두 서울말을 하시네요?"


"오메, 진작 말하제 그래싸요. 요새는 촌말하는 거시기가 쪼맨큼도 없당께. 시골에 가믄 있을랑가 모르것소!"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순천, 여수는 먼 지방이다. 지방에 왔는데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낯선 즐거움을 찾아 나선 나에게 낯설지 않은 평범함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3박 4일 동안 아내와 나는 순천, 여수, 벌교, 전주를 여행했다. 맛집도 몇 군데 들려서 남도 음식을 원 없이 즐겼다. 짠맛이 강했던 남도 음식은 순화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표준말을 사용하였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낯선 경험은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것을 찾기 어렵다면 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순천 꼬막을 서울 강남에서, 여수 물회를 동네 일식집에서 맛볼 수 있다면 여행의 묘미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다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별화에 관한 책 디퍼런트(different)의 저자인 하버드 대학의 문영미 교수는 좋게(better), 크게(bigger), 빠르게(faster)만을 추구하면 차별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국내 대학총장들은 대학의 차별화를 말하면서 취업률과 대학 순위가 자신들의 성적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도 취업률이 저조한 철학과, 독문학과가 사라진 지 오래다. 교수 채용 시에도 실험실 구축에 공간과 비용이 드는 이공계 교수들을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서로 닮아간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창업을 말하지만 자식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걱정한다. 창업 후 사업이 실패할 경우 선진국과는 달리 취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자식들이 차별화된 삶보다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한다.
 
 1978년 국진유통이란 회사가 설립되었다. 욕실용품, 청소용품, 어린이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수입해 남대문시장에 판매하는 일을 주로 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해 1985년부터 자체 생산도 시작했다. 이 회사의 김준일 회장은 매출을 올려주던 수 백가지 제품을 포기하고 사각형 밀폐용기를 개발하여 수천 번의 실험 끝에 상용화에 성공하였다. 그 후 회사명을 락앤락이라고 변경하였다. 제품 숫자를 늘려 기업을 크게만 키우려는 마음을 접고 특화된 밀폐용기로 차별화를 이루어 낸 경우이다. 


남도 여행에서 즐거웠고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 낯선 것들이었다. 아직 ‘다름’을 간직하고 있던 것들. 나의 궁금증으로 듣게 된 횟집 종업원의 촌말, 호텔 방에서 지켜본 돌산 앞바다의 환상적인 일몰, 오염된 서울 공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따사로운 햇살,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색색가지 선박들, 벌교의 보성여관방 앞에서 가지런히 놓여있던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 등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1935년에 지어진 보성여관이 나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주었듯이 촌말만 사용하는 식당을 상상해 본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름’으로 사업에도 성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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