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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해쉬브라운

눈앞에 있는 것 바라보기


미국에서 살던 시절,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던 카페가 있었다. 집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카페였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스(booth) 형태로 되어있던 낡은 좌석, 웨이트리스가 두 개(레귤라, 디케프)의 커피포트를 들고 다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소박한 옷차림의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곳을 자주 찾았던 이유는 편안한 분위기와 기본에 충실한 음식 때문이었다. 나는 주로 평범한 미국식 조식을 주문했다. 커피, 계란 두 개(주로 스크램블드에그), 해쉬브라운(hash brown), 소시지, 토스트 두 쪽에 과일 잼 등이 전부였다. 


주문을 마치면 넉넉한 체형의 웨이트리스 수잔(Susan)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갈색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준다. 나의 영어 수준에 맞추어 간단한 농담과 인사말을 건네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구수한 향이 테이블 전체를 감싼다. 머그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면서 여유 있는 주말임을 실감한다. 잠시 후 투박한 접시에 음식이 그득히 담겨 나온다. 철판에서 방금 건져낸 듯한 해쉬브라운의 위는 부드럽고 포근한 식감이었고, 바닥은 옅은 갈색이며 바삭거림이 느껴졌다. 바삭거림과 부드러운 식감의 해쉬브라운은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었다. 소시지는 간 고기(ground beef)를 뭉쳐놓은 듯한 모양이었고 씹을 때마다 짭짤한 육즙이 나와 해쉬브라운과 잘 어울렸다. 버터를 발라 노릇노릇하게 구워 나온 토스트에 딸기잼을 발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마시면 행복이 느껴졌다.


한국에 귀국한 후(2001년), 그 카페의 음식 맛을 잊지 못해서 이태원, 강남 등의 브런치 식당을 열 군데 이상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때 그 맛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의 미국식 조식은 브런치란 이름으로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었지만, 그 허름한 카페의 간단한 토스트, 해쉬브라운, 소시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형 인간인 내가 대부분의 브런치 식당이 문을 여는 아침 10시 이후까지 기다리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침 7시부터 미국식 조식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20년 전 그 카페에서의 맛과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바삭한 식빵 안에 토마토, 양상추, 베이컨, 닭고기 등이 들어있는 클럽 샌드위치와 양송이 수프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덧 지금의 카페가 나와 아내의 주말 아침을 따뜻한 커피와 이야기로 채워주고 있다.


나는 매일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일상을 기록한다. 저녁이 되면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이리저리 보정해 본다. 그렇게 완성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에 젖어든다. 내가 그 카페에 가지고 있는 추억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 중 그 카페를 골라 틈틈이 그 해쉬브라운의 맛을 상상력으로 더 멋지게 포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것을 현재에서 찾으려고 하는 순간 눈앞의 귀중한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나에게는 갈색 해쉬브라운을 만들어준 그 카페가 그랬다. 대기업 임원, 대학교수를 지낸 사람들이 은퇴 후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본다. 예전에 누리던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것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오늘도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눈앞에 있는 것을 잘 보려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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