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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와 구경꾼 사이

대학원 신입생 시절 선배 한 명과 동기 4명이 저녁에 버스 정류장을 향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학생을 남자 고등학생 3, 4명이 희롱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보다 4년 정도 위인 선배는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이거 봐 학생들! 그냥 조용히 지나가지!!


그 고등학생들은 주변으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나무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은 근처에 있던 가로수의 버팀목을 뽑은 것이다.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번개처럼 그 자리를 피했지만 선배는 그들에게 붙들려가서 폭행을 당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어린 분들’의 말씀에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신임교수이었을 때 학과의 가장 원로교수님은 나와 30살 차이가 났다. 그분은 수업시간 시작 5분 전에 강의실에 들어가 계셨고 시작시간이 되면 강의실 문을 잠가서 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학생들이 복도에서 소리치며 뛰어다니면 그 자리에서 손들고 꿇어 앉히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 교수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야단쳐도 웬만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하려고 해도 내가 꼰대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한다. 부드러운 인상의 교수로 정년퇴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이 보인다. 이유는 많지만 결과만 보면 학생들을 야단치지 못하는 교수가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선배들의 자랑 섞인 이야기를 몇 시간씩 참고 들어왔던 세대는 억울함을 느낀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달라져서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가 보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꼰대가 되기도 싫고 그렇다고 그저 웃기만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구경꾼이 되기도 싫다. 젊은 세대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그들에게 롤 모델(role model)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들이 다가오기 쉽도록 외모에 관심을 둔다.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다. 입 꼬리가 내려간 노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혼자 있을 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면 심각한 얼굴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를 위해서 자연을 가까이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옷차림에도 신경 쓴다. 가급적 어두운 색은 피하고 길거나 크게 입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젊은 할아버지들의 패션을 참고한다. 


젊은 세대의 방법으로 낮은 자세를 취한다.


영화 '인턴'에서 70대인 벤 휘태커는 이력서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자기소개를 작성하여 30대 CEO가 경영하는 의류업체의 인턴이 된다. 나도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좋아요‘가 많은 사진은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본다. 사진과 글쓰기 동호회 모임에 오픈 채팅방으로 참여한다. 학생들과 회사 직원들과의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닉네임을 사용한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젊은 세대와 대화했을 때 그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지도학생 상담 때이다. 지도학생 상담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만 온다. 나는 상담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한 후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할 기회를 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한때는 되도록 나의 경험이 아닌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했던 학생을 인용한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라고 생각한다.' 혹은 '~일 수 있다.' 등으로 상대가 생각할 여지를 둔다. 


 종로구 익선동에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변신한 한옥마을이 있다. 한옥의 기본골격은 유지하면서 내부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했다. 옛것에 최신 감각을 더해서 기존 식당이나 카페와 차별화된다. 판매되는 음식과 상품들은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져 있다. 사람도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오래된 사람이 필요하다. 거울에서 자주 마주하는 그 남자 정도면 될 것 같다. 골격만 남기고 평생 지니고 살았던 낡은 생각을 버린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 젊은 생각을 넣는다. 요즘 잘 읽히는 책들을 골라보고, SNS에 사진과 글을 가끔 올린다.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을 배운다.
 

이런 과정이 나와 젊은 세대와의 거리를 얼마나 좁혀 줄지는 모른다. 그런 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과정을 즐기며 꼰대나 구경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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